[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바야흐로 젊은 감독 전성시대다. 2명의 40대 감독이 올 시즌 KBO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다.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과 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은 올해 새 팀에서 지휘봉을 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평소 형님-동생으로 절친하게 지내는 사이이기도 하다. 김태형 감독은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묵은 숙제를 해결했고, 김기태 감독은 KIA 선수단의 체질 개선에 성공하며 희망을 만들었다. 서로 다른 색깔, 같은 목적으로 알차게 1년을 보낸 김태형-김기태의 '맨투맨'을 짚어봤다.
◆ 화끈하지만 섬세한 광주 남자 김기태
① '안될거야 아마' 그랬던 KIA를 바꿔놨다
"솔직히 이 전력을 가지고 고민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래도 선수들이 어려움 속에서 이정도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었던 것 같네요." - 김기태 감독, 2015년 10월 5일 시즌 결산 인터뷰에서
정규 시즌 일정을 가장 늦게 마치게 된 김기태 감독의 머리카락은 시즌 초반보다 흰머리가 훨씬 더 많이 보였다. KIA에서 1년을 보낸 고단함의 흔적이 희끗희끗하게 센 머리에서 느껴졌다. 굉장히 드물게 KIA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음에도 질타보다 격려를 받는 팀이다. 그만큼 약체로 분류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시즌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는 경기를 많이 치러냈다. 뒷심이 부족해 막판 스퍼트를 발휘할 때 고꾸라졌지만 지난 몇년간 무기력하게 일찌감치 시즌을 자체 종료했던 때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마지막까지 이토록 간절하게 순위 싸움을 해본 것도 꽤 오랜만이다.
베테랑부터 막내까지. 선수들은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기회를 스스로 놓친 것에 대해 땅을 치고 아쉬워했다. 고참 선수들은 "우리 때문"이라고 자책했고, 어린 선수들은 "5위 싸움이 끝났다는게 너무 허무해 믿기지가 않았다"며 여전히 슬퍼했다. 그토록 어려웠던 체질 개선. 올해 KIA가, 김기태 감독이 거둔 분명한 성과다.
"모두 고생 많았다. 선수들이 오늘 이 기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김기태 감독, 2015년 10월 4일 5강 탈락 확정 후 인터뷰
② 기행? 이기려는 의지!
지난 봄. KIA는 홈에서 김민우의 끝내기 홈런을 앞세워 연장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승리보다 더 집중 조명 받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역사상 유례 없는 수비 시프트 시도였다.
주자가 3루에 있는 긴장되는 상황에서 투수의 폭투를 방지하기 위해 김기태 감독은 3루수 이범호에게 포수 뒤로 갈 것을 주문했다. kt 더그아웃도, 지켜보던 팬들도, 배터리도 모두 어리둥절한 상황. 쭈뼛쭈뼛 포수 뒤로 갔던 이범호는 이내 "규칙에 어긋난다"는 주심의 제지에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날 KIA가 '러브투게더' 행사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러브투게더 시프트'로 불리는 이날의 전설은,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대대적으로 소개가 되는 등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다음날 김기태 감독은 "내가 규칙을 잘 몰랐다. 죄송하다. 선수들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쿨하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이밖에도 2루 스리피트 라인을 항의하기 위해 그라운드 위에 누워버린 사건으로 '눕동님'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 감독은 한달에 한번꼴로 뉴스의 주인공이 된다하여 '월간 김기태'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수록 김기태 감독에 대한 팬들의 여론은 뜨거운 지지로 바뀌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러브투게더 시프트'의 당사자였던 이범호는 "그만큼 승리하고 싶다는 의지가 선수들에게도 전달됐다"고 돌아봤다.
"김기태 감독님은 내가 삼성에 갓 입단했을 때 선후배로 처음 만났다. 그때 '김기태 선배님'을 보고 '저분 같은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했다. 많이 존경했다. 본 받을 부분이 많은 분이다. 지금도 그때와 조금도 변함이 없으시다." - 김주찬, 2015년 2월 25일 본지 인터뷰에서
③ 아빠와 엄마 사이
"보통 선수들은 그날 그날 한 경기만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오래갈 수가 없어. 감독님도 마찬가지겠지? 다음 10경기, 또 내년 경기까지 생각하는게 감독님이 할 일이야. 선수들도 멀리 10년 후까지 내다보고 스스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감독님도 선수 시절 잘나가던 때가 영원할 줄 알았어. 치면 홈런일 것 같았고, 투수들이 어렵게 상대하니까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3볼-1스트라이크였거든. 정말이라니까? 그게 계속될 줄만 알았는데,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있고 나중에는 어린 투수들이 한가운데에 거침 없이 스트라이크를 팍팍 꽂는 그런 타자로 변해있더라고." - 김기태 감독, 2015년 9월 30일 사직구장에서 어린 투수들에게 조언
엄격할땐 한없이 엄격하고, 자상할땐 한없이 자상하다. 기본과 예의를 중시하는 김기태 감독은 선수들이 그 기준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을땐 얄짤없이 엄한 아버지의 모습을 한다. 반대로 친근하고 자상한 어머니같은 모습은 더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아들뻘인 어린 선수들에게는 농담과 장난으로 긴장감을 풀어주고, 베테랑 고참들에게는 깍듯한 예우로 '야구할 맛이 나게' 만든다.
④ 사색을 즐기는 기러기 아빠
"감독님과 코치님들에 선수들을 배려해준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너는 우리 팀에 필요한 선수다', '너는 이러이러한 역할을 맡고 있으니까 부상 당하지 말고 뛰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모두에게 해주신다. 또 늘 '컨디션 괜찮아? 안좋으면 쉬면서 해'라고 콘트롤을 해주시니까 선수들의 생각 자체도 달라졌다. 고참들도 그렇고, 어린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 이범호, 2015년 3월 23일 본지 인터뷰에서
쌍방울에서 시작된 김기태 감독의 프로 인생은 삼성을 지나 SK에서 마감됐고, 2006년 시작된 지도자 생활은 SK와 요미우리를 거쳐 LG까지. KIA와는 연관이 없는 곳으로 돌고 돌았다. 서림초-충장중-광주일고까지. 광주 학원 야구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유독 타이거즈와는 인연이 없었다.
오랫동안 객지 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구수한 광주 사투리를 쓰는 김기태 감독은 화끈한 이면에 홀로 조용히 사색을 즐기는 내성적인 면도 함께 있다. 김 감독은 종종 원정길을 선수단과 동행하지 않고 혼자 새벽 고속버스를 타거나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틈 타 ktx에 몸을 싣고 이동한다. "연패중일때는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게 그의 설명이나, 혼자 머릿속을 조용히 정리하고 싶을때 선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꼭 한번 KIA팬들에게 박수를 받아보고 싶었습니다. 팬들에게 좋은 야구를 하는 것은 기본이자 의무이고, 그 외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부분에 대해 성심성의껏 하겠습니다. 86년에 광주를 떠날때 '이 사회에서 어떻게든 야구로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직도 그때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았으니까 앞으로도 팬들에게 박수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열심히 살겠습니다." - 김기태 감독, 2014년 11월 30일 KIA 타이거즈 감독 취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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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