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더 이상 촬영은 없습니다". 길고 긴 6개월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조감독의 목소리. 경기도 양수리 세트장에서 '히말라야'의 마지막 촬영을 알리던 이 순간, 배우 황정민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지난 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히말라야' 속 엄홍길 대장으로 누구보다 뜨거운 가슴, 또 무거운 책임감으로 지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황정민이 영화 '히말라야'(감독 이석훈)로 다시 관객을 찾았다.
'히말라야'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황정민은 마지막 촬영 날을 회상하며 "짊어졌던 짐들이 싹 벗겨진, 마음속의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스스로도 울게 그냥 내버려뒀던 것 같다. 울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고 했다.
그만큼 아낌없이 애정을 쏟은 작품. 황정민은 "우리가 처음에 가고자 했던 방향대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것을 관객 분들이 같이 이해해 주시는 일이 남았는데, 그게 소통의 묘미이지 않나 싶다"며 눈을 빛냈다.
▲ 엄홍길 대장 역할의 무게감을 받아들이기까지
'히말라야'는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기록과 명예, 보상도 없는 목숨 건 여정을 떠난 엄홍길 대장과 휴먼 원정대의 도전을 그린 작품. 지난 16일 개봉 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며 꾸준히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극 중 황정민은 원정대의 대장 엄홍길로 등장한다. 잘 알려져 있듯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엄홍길이라는 이름 역시 실존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썼다.
부담이 없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것이 당연했다. 황정민은 "엄홍길 대장님을 똑같이 따라할 수는 없는 것이니, '대체 내가 이걸 어떤 식으로 표현을 해야 될까' 생각이 많았다. 촬영을 진행하면서 한 풀 한 풀 궁금했던 것들이 벗겨지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몰입이 돼 있더라"며 연기에 임했던 과정을 전했다.
작품에 함께 한 출연진들과 실제에 버금가는 산악훈련을 속성으로 받은 것은 물론, 실전 촬영 때는 8000m 고산지대의 생생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소리를 질러 목소리를 쉬게 만들기도 했다.
연기적인 부분 못지않게 촬영을 위해 준비해야 할 체력적인 부분 역시 컸다. '산'이라고 하면 동네 뒷산 정도만 떠올렸던 지금까지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거대한 자연을 눈앞에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 고향(경남 마산시)에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던 기억을 떠올린 황정민은 "서울역에 내렸을 때 눈앞에 서 있는 큰 빌딩을 보면서 '이렇게 큰 건물이 있나' 생각했던 적이 있다. 히말라야를 갔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시야에 산이 다 안 들어온다. 장관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정말 그 자연 앞에서는 인간의 존재가 한 점으로 느껴진다. '내가 아등바등 잘났다고 해봐야…' 진짜 실제로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고 경험을 전했다.
강원도 영월군의 채석장에 만들어놓은 빙벽에서 예정됐던 촬영은 따뜻한 날씨로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네팔로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뒤 프랑스 몽블랑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소화했다.
황정민은 그렇게 촬영 현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조금씩 진짜 엄홍길 대장이 돼 갔다. "늘 제일 앞에 서 있었다"는 그의 말이 이를 대변해줬다.
몽블랑 촬영 일화를 전하던 황정민은 "영월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몽블랑을 간 것인데, 거기도 날씨가 좋은 거다.(웃음) 그러다 촬영 막판에 정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보라가 치던 날이 있었다.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설피를 신고 오르막 눈길을 두 시간동안 걸어가야 한다. 그게 걱정이 되면서도, 정말 신나하면서 찍었었다. 그 촬영 때 진짜 좋은 소스들을 많이 얻었다. 내려올 때는 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배우, 스태프 구분 없이 짐을 들어야 하는데, 여자 스태프들은 맨 몸으로 가게 하고 남자들이 짐을 이고 간다. 제가 딱 큰 짐을 지고 들어가면 그렇게 다 같이 메고 가는 게 시작되는거다"라고 다시 한 번 크게 웃으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이 그대로 체감됐던 일화를 전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고단했을 터. 황정민은 "체력도 물론 힘들지만, 정신력이 더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체력을 이기는 게 정신력이다"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황정민은 "엄홍길 대장, 리더라는 역할을 맡으니 나태해질 수가 없더라. 실제의 저는 솔선수범을 별로 안 좋아하는 스타일이다"라고 너털웃음을 짓더니 "엄홍길 대장의 역할이 내게 주어진 짐이라면 '그래, OK' 기꺼이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가 촬영장 안팎에서 늘, 항상 제일 앞에 서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 '히말라야'로 다시 또 배움을 얻다
실제 휴먼원정대의 여정처럼 '히말라야'를 함께 한 스태프들과 배우들 역시 끈으로 서로를 묶어 의지하며 똘똘 뭉쳤다.
황정민은 "정말 특수한 상황이었던 거다. 팀워크나 동료애가 워낙 좋아서 정말 행복해하면서 찍었다. 누구 하나 정말 대가를 바라는 것 없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장면을 찍을 수 있을까 얘기를 나누고 회의를 했다. 이번 촬영을 통해서 또 얻는 것들이 있고, 공부가 된 게 아닐까 싶다"며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레퍼런스가 될 만한 작품이 없기에 현장에서는 더 좋은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한 끊임없는 이야기가 오고갔다.
황정민은 "영화를 보면 날씨가 추운데도 대원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고글도 벗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영화적 설정인거다. 실제 그것 때문에 정말 고민이 많았다. 실제로는 반사율이 심하기 때문에 고글도 웬만하면 벗지 않고, 마스크도 당연히 착용한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 대사를 할 수는 없는 것이지 않나. 그래서 그것 때문에 슈퍼바이저 친구들에게 '고글을 벗나 안 벗나, 어떨 때 벗나' 이런 부분을 다 체크해 최대한 현실감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얼굴에 붙이는 눈 분장이나 카메라의 위치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레퍼런스가 없다는 얘기는 그런 부분이었다"라며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졌었던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히말라야'가 만들어졌다. 황정민은 "'히말라야'는 실화라는 무게감이 주는 게 있는 것 같다. 마케팅에서 쓴 문구인데, 정말 어느 곳보다 춥지만 뜨겁다는 말이 있다. 전 그게 참 좋더라"며 "이 작품을 보면 오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이 우선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올해 '국제시장', '베테랑'으로 전에 없던 2연속 천만 관객 작품의 주인공이 된 황정민은 '히말라야'의 흥행 여부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에도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특별한 느낌이라기보다는 '어, 잘됐나?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이다. 영화를 찍고 나면 잘 잊어버려서, 약간 내 영화가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시사회 때도 '내 영화를 본다'가 아니라 정말 그냥 영화를 보는 거다. 스크린 속 황정민을 보면서 같이 울고, 그렇게 한 발자국 떨어져 있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황정민은 '히말라야'를 볼 관객들에게 전할 당부의 말이 있냐는 물음에 "당부요? 제가 감히?"라며 눈을 크게 떴다. 영화에 대한 감상과 평가는 온전히 관객 몫이라는 그의 평소 생각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는, 어떤 영화보다 가슴 따뜻한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서면서 옆 사람 얼굴을 한 번 더 자세히 보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그렇게 황정민은 '히말라야'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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