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허종호 감독이 2011년 '카운트다운' 이후 4년 만에 '성난 변호사'를 들고 다시 관객 앞에 섰다.
'성난 변호사'는 용의자만 있을 뿐, 시체도 증거도 없던 신촌 여대생 살인 사건을 맡아 승소 100%를 확신한 변호사 변호성(이선균 분)이 용의자의 발언으로 순간 모든 것이 뒤집히며 자존심이 짓밟힌 뒤 일어나는 통쾌한 반격을 그린 반전 추리극이다.
'성난 변호사' 개봉 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허 감독을 만났다. 지난해 10월 18일 크랭크인 후 올해 10월 8일 개봉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실제 준비했던 시간이 이보다 더 길었음은 당연한 일. 허 감독은 "조마조마하다"는 말로 개봉 후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은 마음을 표현했다.
▲ 감독이기 이전에 영화를 사랑하는 한국 영화의 팬
'성난 변호사'는 허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그는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확실히 다르다"며 "두 번째 연출을 해 보니 이제는 상업영화의 프로세스가 어떻게 되는지 눈에 들어오더라. 제가 해야 될 역할들에 대한 책임감도 좀 더 많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속도감을 중시했다는 허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오프닝부터 강렬하게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물론, 117분의 러닝타임 내내 리듬감 넘치는 흐름을 보여준다.
허 감독은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사건도, 이야기들도 많다. 오프닝에 캐릭터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다. 처음에 관객들에게 캐릭터에 대한 각인을 시킨 후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백팩에 선글라스, 운동화 차림의 개성 넘치는 외모가 돋보이는 변호성 캐릭터는 배우 이선균의 실감나는 연기로 스크린에 고스란히 녹아났다. 캐릭터와 스토리 모두에 골고루 균형을 맞춘 허 감독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허 감독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원래는 좀 어두웠고, 자칫 보면 19세 관람가가 될 수도 있는 시나리오였다. 조금 밝고 경쾌하게 가고, 캐릭터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관객들이 믿고 따라오는 건 배우들이지 않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습을 밖에서 보면 '재밌겠다' 이 정도지만, 거기에 관객들을 같이 태워서 소리도 지르게 하고 다시 원위치에 돌아왔을 때 '재미있다' 고 할 수 있는, 멋진 캐릭터가 관객을 데리고 와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바람을 전했다.
영화의 또 다른 포인트는 국내 최초로 성사된 대법원 촬영 신이다. 이 장면은 변호성이 자신의 초심을 찾으며 극에 새로운 전환점을 전해주게 되는 중요한 포인트다.
허 감독은 "제작진 덕분이다"라고 스태프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리고는 "제작진이 (대법원에) 계속 찾아가서 여기서 꼭 찍어야 우리영화가 신뢰를 더 얻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변호성이 중요한 결심을 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권위는 필요하지 않겠나 싶었다. 이기는 것만이 정의가 아닌, 정말 법과 상식에 대해서 생각하고 처음 법조인이 됐을 때의 마음가짐을 그 공간에서 되새겼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을 이었다.
'성난 변호사'는 표준근로계약을 지켜 촬영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허 감독은 "한국 영화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인재들도 많이 들어와야 하고, 표준근로계약도 지켜져야 스태프들도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감독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여기에는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한국 영화의 팬인 허 감독의 마음이 바탕에 자리하고 있다. 허 감독은 "저 역시 감독이기 이전에 영화를 좋아하고,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팬 중 한 사람이다. 지금도 한국영화 개봉작들은 극장에서 챙겨보려고 하는 편이다"라면서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즐겁다. 시나리오 하나에 수많은 돈이 투입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잘 되게 하기 위한 하나의 목표를 갖고 움직인다는 게 늘 설레게 한다. 힘들기도 하지만, 아마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가 나의 가장 좋은 시기였다고 분명 생각할 것이다"라며 영화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 친구이자 동료, 이선균에게 미처 표현하지 못한 말
영화 속에서 변호성의 캐릭터가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될 수 있던 것은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 온 허 감독과 이선균의 절친한 관계가 한 몫을 보탰다.
변호성이 문지훈(장현성)의 일행들에게 쫓기면서 지하철 어플을 사용해 지하철이 오는 시간을 계산하고, 순발력 있게 이들을 따돌리는 모습은 마치 농구 경기를 보는 것 같은 경쾌함을 자아내며 흥미를 더한다.
허 감독은 "저는 농구를 열심히는 했지만 잘 못했고, 선균이가 굉장히 잘했다"면서 "스마트한 변호사의 특징을 살린 추격신을 만들고 싶었다. 변호사 캐릭터에 맞춰야 관객도 납득할 것이고 통쾌함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만의 색깔을 내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아마 학창시절의 선균이의 모습을 본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장면이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바뀐 부분이 있다. 선균이를 오래 전부터 봐 왔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고 얘기했다.
허 감독은 또 변호성의 수트 의상에 대해서도 "복장은 시나리오에 이미 묘사된 부분이 있었지만, 선균이에게 수트가 잘 어울려서 그걸 더 살리고 싶었다. 요즘 잘 팔지 않는 무릎 밑까지 오는 긴 스타일 코트가 있는데, 선균이는 그것도 멋지게 소화한다"며 칭찬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학창시절은 물론 이선균의 단역, 조연 시절 등 그가 성장하는 모습을 쭉 지켜봐왔기에 영화 속에서도 그가 가진 매력을 적극적으로 펼쳐 보이고 싶었다는 허 감독은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 정말 대단한 배우다"라고 이선균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런 허 감독도 이선균에게 직접 고마움을 표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서로 너무나 잘 아는 사이인데 그런 마음을 얘기한다는 게 쑥스럽다'는 것이 그의 속내였다.
허 감독은 "생각해보면 전작에 함께 했던 정재영, 전도연 선배에게는 문자 메시지로 하트도 날리고, '최고예요' 이런 말도 서슴없이 했었다. 그런데 선균이에게는 그게 안 되더라. 실제 법정신 촬영 때도 선균이가 정말 잘했었다. 그래서 그날 함께 술을 마시고 숙소를 가면서 '정말 잘 했다'고 문자를 보내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선균 최고. 하트뿅뿅'은 보낼 수가 없더라"며 웃었다.
"이상하게 그게 안 된다. 이번에 함께 한 임원희 씨나 김고은 씨에게는 오히려 표현을 더 했는데, 평소에 서로 욕하면서 지내던 친구 사이가 갑자기 하트를 날리고 이런다는 게 쑥스러웠던 것 같다. 막상 그런 마음을 전달 못했던 게 사실 좀 미안하다"며 "아마 이선균에게는 평생 못하지 않을까"라고 다시 한 번 너털웃음을 짓는다.
허 감독에게 '성난 변호사'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십분 발휘했고, 또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해 어느 때보다 즐겁고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허 감독은 "이선균이라는 변호사의 멋진 캐릭터와 같이 롤러코스터를 타보셨으면 좋겠다. 지루함 없이 통쾌하고 재밌을 것이다"라며 작품으로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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