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이지은 기자]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핵이다. 내가 경기의 핵인 것 같다."
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 김현수는 두산의 대표선수로 참석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키 플레이어'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 발언은 사실 '근거 없는 자신감' 쪽에 더 가까웠다. 그동안의 전력으로 볼 때, 김현수는 매번 가을야구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왔다. 07~08년도 별명은 '오푼이'. 포스트시즌을 통틀어 타율은 3할도 되지 않았다. 큰 경기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매번 중요한 승부처를 날려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김현수는 타석에서 자기 자신을 입증해냈다. 지난 1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좌익수 및 4번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이날 기록은 4타수 2안타 1볼넷. 5번 타석에 들어서는 동안 세 번은 출루에 성공했고, 타점까지 추가했다.
이 날 두 번의 안타는 모두 다른 투수에게서 나왔다. 첫 번째 안타는 1회말 선발 양훈을 상대로 한 첫 타석에서 2구째를 때려내 만든 좌중간을 가르는 단타였다. 두 번째 안타는 8회말 불펜 조상우를 상대로 6구째 싸움 끝에 얻어낸 우중간을 가르는 단타였다.
이날 양훈과 조상우는 넥센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책임졌던 투수였다. 그만큼 두산의 타자들이 잘 공략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양훈은 5⅓이닝 5피안타, 조상우는 2이닝 2피안타로 두산의 타선을 묶어냈지만, 그 와중에도 김현수는 이들로부터 멀티히트를 뽑아냈다.
특히 '밀어내기 볼넷'은 달라진 김현수를 증명했다. 팀이 2-3으로 지고 있던 9회말, 잘 던지던 조상우가 3명의 타자에게 내리 몸에 맞는 볼넷-볼넷-볼넷을 내주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2사 만루의 찬스에서 김현수는 타석에 들어섰고, 배트를 휘두르는 대신 공을 골라내는 쪽을 택했다. 1볼의 볼카운트에서 2구째 한 번 파울로 걷어낸 걸 제외하고는, 3구 연속 들어오는 볼을 가만히 지켜봤고 결국 볼넷을 골라냈다.
상대 투수의 제구가 흔들릴 때면, 실투를 공략해 안타를 때려내고 싶은 게 타자의 욕심이다. 만루 상황 안타 한 방이면 역전에도 성공하고 자신도 결승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김현수는 팀을 위해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알았다. 이날 차분히 공을 바라본 끝에 얻어낸 밀어내기 볼넷으로 9회말 극적인 동점이 만들어졌고, 이 때 가져온 승리의 분위기는 결국 역전의 발판이 됐다.
"항상 가을 야구 때 잘 못해서푼 키플레이어로 뽑힐텐데, 이번에는 잘 할 수 있도록 하겠다." 패넌트레이스 때부터 밝혀왔던 김현수의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절치부심한 김현수는 결국 1차전의 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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