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동진 대중문화평론가] ‘위로공단’은 아틀라스(Atlas)라고 불릴만한 영화다. 22명의 인터뷰이가 들려주는 생의 무게를 그저 중력이란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아틀라스가 우리는 볼 수 없는 곳에서 그 무게를 감당했던 것처럼, 그녀들이 거기 그 자리에 있었다. 지구를 짊어진 신화 속의 거인, 혹은 지도 ‧ 도감의 뜻을 지닌 단어. 우연히도 공단(貢緞) ‧ 새틴을 의미하기도 하는 아틀라스.
신화 속의 공순이
‘위로공단’의 인터뷰는 60~70년대의 구로공단을 되짚으며 시작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소녀들이 ‘공순이’로 불리며 일하던 곳. 푸른색 작업복을 입고 풀밭에서 도시락을 먹는 동네 언니가 부러웠던 한 소녀는, 그것이 너무나 평화롭고 멋져 보여 공장에 취업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들어가게 된 공장의 실상은 예상과 전혀 다르다. 거의 매일 이어지는 잔업과 특근, 관리자들의 욕설과 성희롱, 회사는 걸핏하면 잠을 재우지 않고 일을 시켰다.
‘위로공단’은 그녀들에게 ‘일’이란 무엇이었던가를 묻는다. 인터뷰에는 일관되게 일에 대한 ‘예상과 실상 사이의 격차’가 드러난다. 그 격차를 채우는 것은 그녀들의 고통이고, 고통은 현실의 사건들과 연결된다. 1978년 동일방직 오물투척 사건, 1979년 YH무역 사건 등은 세상이 ‘개개인의 고통’을 하나로 뭉뚱그려 기억하는 명칭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의 존재조차도 부정하는 권력자들은 ‘수출의 여인상’이란 허위의 기념비로 ‘경제발전신화’만을 자축한다.
‘위로공단’은 권력이 사건에 덮어씌운 천을 걷어내고, 잊혀져간 그녀들의 진짜 이름을 불러준다. 신순애, 이총각, 이기복, 김영미, 강명자. 이들이 말해주는 것은 ‘사건의 발단과 경과’가 아니다. 하나의 ‘일’이 그녀들의 마음에 품게 했던 기대, 그리고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만 했던 순간의 마음풍경이다.
지도 ‧ 도감
‘위로공단’의 인터뷰는 시간 선상으로는 60년대의 구로공단에서 현재에 이르고, 공간적으로는 구로, 가리봉 등 대표적인 공단지역을 시작으로 ‘대형마트’, ‘콜센터’, ‘항공기’에 이르는 구체적인 그녀들의 현장으로 들어간다. 마치 지도를 그려나가는 것처럼 인터뷰는 점차로 시공간을 확대해 나가며, 2014년 캄보디아 약진통상 노동자들의 시위 현장까지 도달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시대와 장소에 있지만, 노동현장의 가혹한 상황은 변함없이 반복된다. 동일방직 - YH무역 - 효성물산 - 홈에버 등으로 이어지는 고통의 등고선.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산업이 전환되면서 고통도 질적 변화를 한다. 다산콜센터의 상담원은 ‘콜순이’라는 자조적인 명칭으로 ‘감정노동’의 고통을 전달한다. 상담원들은 수시로 벌어지는 욕설과 성희롱 때문에, 콜을 받으라는 사인이 켜질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노동현장에서 겪는 고통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자존감을 공격한다는 점에서 똑같다.
캄보디아 의류공장에서의 인터뷰는 더 싼 노동력을 찾아 나선 한국기업의 잔인함을 확인시켜준다. 이들은 60~70년대 구로공단 여공들에게 가했던 비인간적 처우를 21세기의 캄보디아 노동자에게 반복한다. 심지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캄보디아 군대를 불러 진압하기까지 한다. 마치 질량보존의 법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업가들은 국경을 넘어서도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강요한다.
공단(貢緞) ‧ 새틴
‘위로공단’은 영화와 미술의 경계에 서 있는 작품이다. 퍼포먼스에 가까운 장면들은 인터뷰에서 파생된 감정들을 형상화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천으로 얼굴이 덮인 두 사람’의 이미지다. 포스터로도 쓰이는 이 장면은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들’을 차용하고 있는데, 보는 순간 ‘맹목’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른다. 마그리트에게 ‘얼굴에 덮인 천’은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 어머니의 얼굴을 덮고 있던 잠옷과 연관돼 있었다. 맹목과 죽음.
‘위로공단’의 퍼포먼스들에는 이런 ‘맹목과 죽음’이 다양한 변조를 통해 등장한다. ‘맹목’은 손으로 눈을 가리거나, 눈가리개를 한 채 옥상에 서 있는 소녀의 이미지로 반복된다. 현실의 역사에서 여공들이 눈이 가려진 채 고문실로 끌려갔듯이. 하지만 오히려 ‘맹목’은 그런 그녀들을 보지 않았던 우리의 외면일 수도 있다.
거대한 새의 무리가 하늘에 그려내는 카오스모스. 비와 눈. 연이어 늘어선 개미들의 행렬. 무한에 가깝게 세상을 채우는 이런 요소들을 카메라는 집요하게 잡아낸다. 세상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에 대한 연상 작용. 때로 한데 모여 힘을 발휘하지만 다시 흩어지기도 한다. 모임과 흩어짐. 흩뿌려진 ‘위로공단’ 속의 퍼포먼스와 이미지들은 천조각이 꿰매어지는 것처럼 하나의 직물을 완성한다. 이 직물들은 공단이 되어 부드럽게 그녀들을 감싸 안아준다.
‘위로공단’은 진실한 인터뷰와 실험적인 퍼포먼스가 결합된 뜻밖의 영화다. 또한 우리가 입고 있는 옷, 신발, 바지들이 어디로부터 기원했는가를 알게 해주는 지극히 현실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의 맥락에서 지난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위로공단’은 영화가 가진 힘을 재확인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nivriti@naver.com/ 사진 = 엣나인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