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5.07.27 12:23 / 기사수정 2015.07.27 12:30
[엑스포츠뉴스=김현정 기자] 엄마와 딸.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가 아닐까. 누구보다 많은 얘기를 나누고 많은 걸 공유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틀어지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될 수 있는 그런 존재다.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란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소중함을 잊고 산다. 마치 공기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일상 속에 묻어두듯 말이다. 그러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뒤늦게 후회한다.
‘잘자요 엄마’는 그런 ‘가깝고도 먼’ 모녀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미국 작가 마샤 노먼(Marsha Norman)이 쓴 이 연극은 마지막이 돼서야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모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결국 본질은 우리네 모녀의 모습에 맞닿아있다.
오랫동안 간질을 앓고 있는 딸 제씨는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던 델마에게 오늘 밤 자살하겠다는 말을 무심히 내뱉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죽은 아버지가 쓰던 녹슨 권총을 찾으며 하는 제씨의 말을 델만는 믿지 않는다. 제씨는 자신이 죽은 후 혼자 남겨질 엄마를 위해 메모를 써두며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델마는 딸의 자살계획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두 사람은 대화를 해나가며 과거와 현재를 회상하고,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한다. 대화를 통해 남편, 친구, 아들 등 주위 사람의 이야기가 드러나는데,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갈등이 극도로 심화된다.
엄마와 딸만 출연하는 2인극이다. 80분의 러닝타임동안 모녀의 대화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담담하다가도 격해지고, 냉정해지다 어느 순간 감정이 폭발한다. 모든 게 다 자신의 잘못이라는 델마와 엄마와 상관없는 일이며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죽는다는 제씨의 입장이 격돌하면서 서로의 가슴을 후벼 판다. 그러면서 이들은 단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놓고, 서로에게 한 발자국 다가간다. 안타깝게도 생의 마지막 날 밤에 말이다.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은 뒤로하고 극은 예정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제씨가 델마에게 “잘자요 엄마”라고 인사하기까지 빠르게 이어지는 두 사람의 감정의 소용돌이는 가슴 한구석을 파고들며 먹먹함을 남긴다.
“아가 난 니가 내껀 줄 알았어"라는 델마의 대사에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집약돼 있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온 엄마와 그토록 고독했지만 내색하지 않던 딸.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갈등과 무언의 화해 를 그리는 과정은 긴장이 풀어졌다 굳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몰입을 유도한다. 극은 비극으로 치닫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마 혹은 딸과 터놓고 이야기한 적 없는 관객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준다.
배우들의 연기에 몰두하다 보면 80분의 시간이 금세 간다. 김용림은 엄마 델마의 감정변화를 노련하게 잡아낸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달라는 천진난만한 엄마부터 자살하겠다는 제씨를 말리며 애를 태우는 모습, 딸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 과거를 후회하는 모습 등 복합적인 엄마의 마음을 오롯이 전달한다.
염혜란은 삶과 죽음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을 가진 딸 제씨의 섬세한 감정을 물 흐르듯 연기한다. 오랜 시간, 갖가지 일로 지쳐버린 제씨의 슬픔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나가는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다.
8월 15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한다. 80분. 만 15세 이상. 문의: 02-766-6506
khj3330@xportsnews.com / 사진=수현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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