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이지은 기자] '퀄리티스타트(QS)-홀드-세이브'는 투수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선발 투수가 6이닝 3실점 이하로 긴 이닝을 먹어주면, 계투진이 2이닝을 소화하며 실점을 최소화하고, 9회 등판한 마무리 투수가 실점 없이 1이닝을 틀어막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이렇게 물흐르듯 흘러갈 수는 없다. 선발투수가 무너지면 그 부담은 뒤이어 등판하는 투수들이 짊어져야 한다. 한화의 투수진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한화의 선발진에는 확실한 '이닝이터'가 없다. 한화가 총 올시즌 73번 경기를 치르는 동안 선발진이 달성한 QS는 15번 뿐이다. 한화의 5선발이 한 싸이클을 도는 동안, 그 중 대략 1명만이 QS를 기록한 꼴이다. 그나마 원투펀치 외인 투수들의 성적이 조금 더 낫다. 탈보트가 6번, 유먼이 5번, 안영명과 배영수는 각각 2번을 기록했다. 이 다섯의 기록을 모두 합쳐도 현재 방어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기아의 양현종(12번)과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팀 QS 달성 1위 삼성(42번)과 거의 3배 차이, 리그 10위인 kt(18번)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발투수의 평균 소화 이닝도 당연히 적어졌다. 올 시즌 총 21경기에 출전한 안영명과 14경기 출전한 배영수의 한 경기 평균 소화 이닝 수는 3이닝대로, 웬만한 롱릴리프 수준이다. 그나마 유먼이 15경기 평균 5⅔이닝, 탈보트도 15경기 5이닝 정도를 소화해주며 선발진을 이끌어 가고 있다. 하지만 리그 전체로 확장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재(30일) 방어율 기준 리그 1~10위까지의 모든 투수들이 한 경기 당 평균 6이닝 이상, 약 100개가 넘는 공을 던지며 마운드를 오래 지켜주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한화의 경우 그나마 긴 이닝을 끌고가주는 외국인 투수들만 한 경기당 90구 정도의 공을 던졌다. 안영명(58개), 배영수(64개)가 그 뒤를 잇는다.
계투진의 혹사 논란이 등장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선발이 빨리 마운드를 비우니 구원투수들이 많은 이닝을 소화해야 할 수밖에 없다. 필승조 '박정진, 권혁, 윤규진'에 의존도가 높아지는 까닭이다. 올 시즌 박정진과 권혁의 등판 기록은 웬만한 팀의 선발투수 못지 않다. 개인기록으로만 봐도 두 선수가 지난 3시즌동안 소화한 평균 이닝수와 비교했을 때 이번 전반기에만 20이닝 이상을 더 던졌다. 특히 권혁이 소화한 총 이닝은 64⅔이닝. 첫 6경기만 구원 등판한 후 바로 선발 전환한 안영명에 비해 3이닝 덜 던졌고, 배영수(52이닝)보다는 오히려 6⅔이닝을 더 던졌다.
날이 더워질수록 필승조는 점점 더 '출첵조'가 돼가는 모양새다. 지난 19일부터 7경기 연속으로 경기가 지고 있든 이기고 있든 필승조 중 누구 하나는 꼭 마운드에 올랐다. 그동안 권혁이 6경기 연속 등판해 총 215개, 박정진은 6경기 총 65개, 윤규진은 5경기 73개의 공을 던졌다. 지난 SK와의 주말 3연전, 탈보트-안영명-송창식으로 선발투수의 이름이 바뀌는 동안 등판한 불펜 투수는 항상 이 필승조 3명이었다.
결국 필승조 과부하의 근본적 해결책은 선발진이 제 몫을 다해주는 것 뿐이다. 필승조의 짐을 짊어질 만한 다른 믿음직한 불펜투수들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돌아올 투수들도 많지 않다. 토미존 수술로 일찌감치 시즌아웃이 된 이태양,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바꿔야 1군으로 올라온다는 송은범, 즉전감으로 쓰려했으나 트레이드 직후 팔꿈치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임준섭 정도가 전부다. 김성근 감독도 "마운드 추가전력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나마 탈보트와 유먼이 살아나는 게 고무적이지만, 이 둘로 남은 모든 시즌을 이끌어 가기에는 여름이 너무 길다. 가을로 향하기 위해 한화가 넘어야 할 '선발야구'의 벽이다.
이지은 기자 number3togo@xportsnews.com
[사진=탈보트, 유먼, 안영명, 배영수, 송창식 ⓒ엑스포츠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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