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9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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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모두들 잘 버티고 계십니까…장그래와 동갑내기 인턴기자의 '미생' 감상

기사입력 2014.12.21 08:12 / 기사수정 2014.12.21 08:12

박소현 기자
드라마 미생 ⓒ 미생 공식 페이스북
드라마 미생 ⓒ 미생 공식 페이스북


[엑스포츠뉴스=박소현 기자] 고백컨대, 나는 임시완의 ‘팬’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엔 드라마 ‘미생’을 보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미생’을 보는 대신, 취업사이트들을 들락거렸다. ‘미생’의 이야기가 왠지 거북했다. 방송이 끝난 후 올라오는 시청 소감이나 반응을 관심 없다는 듯 확인했다.

대기업에 취업해 바쁘게 살고 있는 친구들은 “그래, 직장 생활이 이래”라며 ‘미생’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직장생활이 힘들다는 의미였다. 나는 공감하는 대신 마음 한 켠이 뒤틀렸다. 무(無)스펙의 고졸 신입이 낙하산 계약직으로 출근을 시작하다니, 부러움을 숨길 수 없었던 탓이다.

등떠밀리듯 '미생'을 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팍팍한 직장생활과 현실을 가감없이 그려낸다며 뜨겁게 반응했다. ‘미생’은 드라마다운 판타지를 팔지 않았다. 물론 안영이 같은 신입이나 일부 내용은 판타지성 요소가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런 판타지를 사는 대신 남들에게 ‘나도 쟤처럼 힘들어’라고 말하는 드라마를 바라 왔었나보다. 먼지 같은 일을 하며 먼지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제야 장그래한테서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장그래는 처음에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졌다”고 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사람들은 장그래의 그 말이 환경을 탓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을 탓하는 거라고 해석했지만, 나는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말로써 나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라는 불안감을 느꼈다.
 
두 달이 지나는 동안 장그래는 달라졌다. 그는 ‘우리 애’가 되어 왜 기회조차 주지 않냐 항변하며 회사에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나도 달라졌다. 고통스러운 몇 주를 보내면서 간신히 기자라는 꼬리를 이름 뒤에 달 수 있었다. 물론 장그래처럼 ‘인턴’이라는 묵직한 사슬이 따랐다. 

“욕심까지 허락받아야 하냐”던 장그래의 묵직한 한마디에 어느새 나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규직, 계약직 이러한 고용의 형태가 아니라, 그저 함께 일하는 좋은 사람들과 더 일하고 싶은 것. 그런 욕심마저 허락받아야 한다면 너무 팍팍하지 않은가.

모두 장그래에게 버티라고 했다. 나도 ‘버텨라’ 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가족, 선배 모두 서로 짜맞추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당연히 버텨낼 것이라고 다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버텨내고 난 뒤에는? 이라는 물음표를 잠시나마 갖는다.

장그래의 삶이 단순히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바뀌는 것이 ‘완생’은 아니기에 드라마도 그렇게 결말을 냈을 것이다. 장그래는 어느덧 새로운 곳에서 버티기로 했다. 나도 ‘열심히’ 버텨보려고 한다.

그래, 모두들 잘 버티고 계십니까.

박소현 기자 sohyunpark@xportsnews.com


박소현 기자 sohyunpark@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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