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올해 스물여덟살. 배우 유아인은 언제부턴가 '청춘'이라는 꼬릿표를 달고 있다. 개봉을 앞둔 새 영화 '깡철이'에서도 그는 고독하고, 힘든 청춘 '강철'로 관객들 앞에 선다.
지난 26일 서울 삼청동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유아인을 만났다.
"안녕들하십니까"하는 다소 능글맞은 인사를 건넨 유아인은 웃는 얼굴로 인터뷰장에 들어섰다. 전날 언론시사회의 스크린 속에서 본 '깡철이'와는 전혀 다르게 세련된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장착'한 그는 연이은 인터뷰로 "힘들지 않아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괜찮아요. 첫날이니까"라고 답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인터뷰를 녹취하기 위해 녹음기 위치 선정을 두고 끙끙거리던 기자의 노고(?)를 힐끗 바라보더니 무심한듯 친절하게 "주세요"라면서 자신과 가까운 곳으로 휙 끌어당긴다.
그가 외모만큼이나 까칠하지 않을까 싶었던 이유없는 경계가 무색해졌다.
배우 유아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앤티크'의 양기범,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 '패션왕'의 영걸이에서 '완득이'까지. 대부분 거칠고 반항적이고 투박한 인물이었다.(내면이 부드러운 사내였다 할지라도) 여기에다 역시 고달픈 영혼 '깡철이'를 추가한 유아인에게 "'깡철이' 가 반항적이고 거친 이미지의 연장선이지 않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런 이미지가 굳혀지는건가? 전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확장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이 위에는 무엇이든 쌓아올릴 수 있지만, '백마 탄 왕자님'으로 굳혀지면 그 위에는 아무 것도 쌓기가 힘들잖아요. 내 또래에서 현실에 가까운 자유분방한 청춘을 연기하는 건 내가 나의 운동장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액션이나 멜로가 가미될 수 있는거죠"
'굳혀'지는게 아니라 '확장'되는 것이라고 뚜렷이 자신의 생각을 밝힌 유아인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걱정은 있죠 역시. 남들이 어떻게 볼까가 걱정이 아니라 스스로 이게 좋아서 하는게 아니라 내가 이것밖에 못하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요. 그래서 '장옥정'을 한것 같아요"
지난 6월 종영한 그의 드라마 '장옥정-사랑에 살다' 이야기로 화제가 전환 됐다.
"'장옥정' 대사 중에 제일 느끼한 대사가 있는데 뭐더라…. 아 '내가 너에게 하늘이라면 하늘이 무너지는걸 보여주겠다' 이런 엄청나게 느끼한 대사들이 너무 많았어요. 사실 전 그 전까지 그런 대사를 내뱉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웃음) ('장옥정'의 연기도) 제가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 위에 쌓인거죠. 리얼 위에 쌓여있는? 그래서 좋았던거 같아요"
궁금한 김에 더 편한 역할, 완전히 가벼운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질문을 던졌다. 내내 웃음기를 띄고 있던 유아인은 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해보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몸도 좀 편한 역할이요. 사실 영화가 20대 배우에게 기대하는게 뭐겠어요? 찬란한 빛과 청춘의 뜨거움이거든요. 20대가 연기할 수 있는 장르적 카테고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한국영화가 생각하는 20대는 '운동하는 이미지'라고 생각해요. 액션이나 드라마 아니면 하이틴 순정만화 정도? 그리고 저도 그 카테고리에 있는거 같아요. 근데 몸 좀 안썼으면 좋겠어요. 운동 좀 안했으면 좋겠어요.(웃음)"
굉장히 까탈을 부리며 몸매 관리를 할 것 같은데 의외의 발언이다. 운동을 별로 안좋아하냐고 묻자 단박에 "안좋아해요. 어쩔 수 없이 하죠"라는 답변이 튀어나왔다.
"진짜 몸 안쓰고 싶어요. 근데 그동안 몸쓰는 역할만 했죠. 싫어도 하는거지. 내가 끌리는게 그거니까. 내가 다시는 몸쓰는 역할 하지 않으리 다짐을 해도…. 사실 왕('장옥정') 하면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근데 왕은 왜 이렇게 싸움을 잘해?(웃음) 왕이 왜 이렇게 칼싸움을 하고 다녀?"
인터뷰장에 폭소가 터졌다. 웃음을 자아내는 유아인의 밝은 면은 2009년 출연작인 KBS2 '결혼 못하는 남자'의 '현규'와 겹친다. 당시 '현규' 캐릭터가 참 좋았다고 한참 늦은 칭찬 멘트를 던졌다.
"오! 저도 그거 좋아해요. 덜 드라마틱하지만 현실적이죠. 그런 인물들이 영화에서 그러지면 로맨틱 코미디로 나오겠죠?"
"이참에 로맨틱 코미디 한 번 해달라"는 요청에 유아인은 웃음보를 터트렸다.
"해볼께요. 고려하고 있어요. 진짜 항상. 근데 아시잖아요. 진짜 좋은 로맨틱 코미디는 1년에 한 편 나오기도 힘든거. 그래서 선택하기가 쉽지 않아요"
'깡철이' 이후 차기작은 아직 결정을 안했단다. 그럼 요즘 뭐하느냐고 물었더니 "이거('깡철이') 홍보 하잖아요"라는 웃음기 섞인 답이 돌아온다.
"여행도 많이 다녔고, 놀고 있어요. 술도 마시고(웃음). 규칙적인 생활은 진짜 안하고, 운동은 좀 해요. 그동안 운동을 하다 버릇 하니까 안하면 좀 찝찝하고 그래서요"
유아인은 인터뷰 하기 며칠 전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 출연해 놀라운 요리 솜씨를 발휘해 화제가 됐다. 그도 혼자 사는 '독거' 무지개 회원일까.
"네. 혼자 살아요. 그리고 요리하는거 아주 좋아해요. 매끼는 아닌데, 내가 먹고 싶은거 있으면 해먹는 편이에요. 사먹을 수도 있지만 내가 한게 더 맛있으니까(웃음). 배달시켜 먹는다고 해도 내가 뭔가를 더 첨가해서 재탕해 먹는 스타일이에요. 이게 다 내가 까탈스러워서 그래. 엄마가 떡볶이를 해줘도 설탕, 고춧가루 이런거 더 넣어서 해먹고 그래요"
자취하면서 요리하기가 쉽지 않은데 대단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귀찮긴 하죠. 혼자 사는 사람들은. 근데 전 친구들이 집에 자주 들락날락 하고 그래요. 치우는게 싫으니까 (요리) 안하지. 하고 싶어도 설거지가 안돼 있으니까 냄비가 없어서 못하잖아요. 저도 가끔 그래요"
유아인은 참 자유분방함이 강하게 느껴지는 배우다. 자신의 그런 면모가 어필되는 것에 대해 자기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할까.
"깡?(웃음) 저 진짜 대단한 아이도 아니고, 소심하고, A형이거든요" 자신이 'A형'이라는 사실을 성당에서 고해성사라도 하듯이 속삭여 말했다.
"진짜냐"고 되묻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제가 B형인줄 아는데 A형이에요. 생각도 많고, 많이 담아두고 그래요"
사실 그는 트위터 같은 SNS를 소통의 창구로 즐겨 이용하는 '젊은이'이기도 하다. 그동안 그가 SNS를 통해 이야기 했던 것들이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기도, 때론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제가 이야기 하는건 제 마음에 있는 것 중에 10분의 1밖에 안돼요. 물론 아무 얘기도 안하는 배우들도 있죠. 이렇게 인터뷰를 해도 정해진 답변만 하는 배우들도 있어요. 아마 그게 훨씬 더 많을 거예요. 근데 그건 재미 없지 않아요? 제가 원하는건 재미예요.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더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이참에 유아인에게 SNS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더 캐물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 중에 트위터 안하고, 페이스북 안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근데 배우들에게 그거 하지 말라고 하는 의견에 주눅들고 싶지 않아요. 사실 되게 주눅드는 성격이기 때문에(웃음). 제 마음에 솔직하고 싶어요. 나에게 선의가 있다면 얼마든지 내뱉으면서 살고 싶어요"
그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잘못하지도 않았으면서 잘못했다고 말하지 말라"는 내용의 멘션을 써 화두에 올랐었다.
"얼마전에 트위터에 썼어요. 잘못하지도 않았으면서 '잘못했어요'라고 하는게 연예계에서 내 신변을 보장해주죠. 스스로 반성하지도 않으면서 필요에 의해서 '잘못했다'고 하는건 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실수했을때 잘못했다고 이야기 하고, 잘한 일은 좀 더 박수 받고 싶고, 더 예쁘게 보였으면 좋겠고요. 그게 이상한가? 물어보고 싶어요.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유아인은 물을 한모금 마시고는 답변을 이어 나갔다.
"SNS를 하면 본업에 충실 못하나? 거기 글쓰는데 12시간씩 걸리는거 아니잖아요. 근데 그런식으로 매도하는 '악플러'들이 있어요. '트위터 쓰고 있네. 노래나 잘해라. 연기나 잘해라'"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해요?"라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웃기는 잣대지. '악플러'들은 그렇게 얘기해요. '악플러'들. '악인'들"
본인이 '주눅드는 성격'이라고 밝힌 만큼 SNS로 일부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슬쩍 드러났다. "기자들도 악플 정말 많이 받는다"고 맞장구를 치자 유아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 진짜요? 기사 왜 이렇게 썼냐고? 기자 아무나 하네 이렇게? 하하하. 상처받아요 사실. 계속 상처받는데, 결국 상처를 어떻게 이겨내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느냐가 중요한거 같아요. 이제는 좀 떨어져서 넓은 시야로,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된 것 같아요"
과거보다 시야가 좀 더 넓어지고 있는 중이냐고 물었더니 "진작부터 넓어졌다"는 당당한 답변이 나왔다.
"(SNS에서는) 나랑 1대 1로 대면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나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이야' 이게 아니고 그냥 무언가를 향해 그들이 세상밖으로 하고 있는 일이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랑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내 연기 열심히 하고, 잘하면서 그런 역할도 함께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청춘의 한가운데 서있는 스물여덟살의 유아인, 솔직하고 화끈하면서도 세심하고 따뜻한 그의 매력이 언젠가는 그가 바라는 대로 '조금이나마 세상을 바꾸는' 좋은 배우가 되는 길로 이끌지 않을까.
'깡철이'로 돌아온 유아인. 반갑다.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사진 = 유아인 ⓒ 엑스포츠뉴스 권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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