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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의 블루오션 '썰전' 뉴스 깨기 현장을 찾다

기사입력 2013.08.07 22:34 / 기사수정 2013.08.08 12:16

김승현 기자


[엑스포츠뉴스=김승현 기자] MBC '무한도전' 김태호 PD는 지난 5월 방송된 JTBC '썰전'에서 전화인터뷰로 "'썰전'은 나도 해 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이다. (여운혁) CP에게 재밌게 보고 있다는 문자도 보냈다"며 애청자임을 밝혔다. 그렇다면 '썰전'은 김태호 PD의 부러움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무한도전'은 출연자들의 무한하고 무모한 도전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시사적인 풍자를 곁들여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호평을 얻어왔다. 일회적인 꽁트나 단편적인 자막, 미션이 주는 궁극적인 메시지를 활용해 마치 예능이라는 식단에 정치라는 양념을 살짝 버무린 듯한 포맷을 보여줬다.

이와 달리 '썰전'의 정치 비평은 좀 더 과감함하다. 정치와 예능을 큼지막한 주재료로 삼아 패기 있게 썰어버린다. 정치라는 요소를 '무한도전'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블루오션을 개척했다. 예능의 떠오르는 블루오션인, 썰전의 매력을 더 생생하게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지난 5일 '하드코어 뉴스깨기' 녹화 현장을 찾았다.

방송 준비로 다들 분주한 가운데 김구라와 강용석 변호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웃음기가 빠진 두 사람의 표정으로 보아 이날 다룰 주제가 중대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어 이철희 소장이 도착했고 스태프는 3명의 MC에게 마이크를 달아줬다. 이윽고 "자, 시작할게요"라는 스태프의 외침이 들리고 김구라의 오프닝 멘트가 이어졌다.

"한 주간 대한민국 국민의 심장을 뛰게 한 가장 핫한 뉴스만을 골라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뉴스의 뒷이야기를 털겠습니다. 하드코어 뉴스 깨기 시간, '썰전'입니다. 반갑습니다"

신변잡기로 가볍게 혀를 풀던 세 사람은 이날 오전 정치권을 술렁이게 한 청와대의 갑작스러운 인사 단행 소식을 다뤘다. 오후 3시에 시작된 녹화는 당일 오전에 언론에 발표된 뜨끈뜨끈한 소식을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이들은 일단 김기춘 비서 실장이 누구인지 파헤치는 것에 일부를 할애했다. '썰전' 김수아 PD가 "정치를 다루기 때문에 강용석과 이철희에게 가장 기본적인 내용 설명을 제작진에서 부탁한다"고 밝혔듯, 두 사람은 인사 개편에 대한 전반적인 평과 김기춘 비서 실장, 박근혜 정부의 의도까지 폭 넓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당일 오전 발생한 이슈라 평소보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음에도 심도 있는 분석과 논의를 펼쳤다. 강용석과 이철희가 이슈에 얼마나 민첩하게 반응하는 지를 반응 속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두 번째 주제는 지난주 우리 사회를 술렁이게 한 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의 불륜 스토리였다. 막장드라마가 현실에서 펼쳐졌다는 이야기에 공감한 세 사람은 정치권의 소식을 예능적으로 풀어냈다.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게 적절한 선에서 '썰'을 펼쳐나갔다. 도덕적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한국 지도층과 외국의 사례를 빗대어 유머를 섞어가며 풀어냈다. 사회적인 주제를 지나치게 진중하게 다루지 않는 모습에서 '썰전' 특유의 '빗겨가기'를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주제가 끝나자 김구라는 "'썰전'을 보는 학부모가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인 학교 폭력 문제"라고 언급하며 강용석과 이철희의 조언을 구했다.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측면이 강했기 때문에 강용석과 이철희의 대립은 없었다. 내심 두 사람의 이성적인 충돌을 기대했던 기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곧 기대하던 장면이 나왔다. '위클리 포토제닉' 코너에서 공개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집회'와 관련한 한 장의 사진은 강용석과 이철희 간의 치열한 썰전을 야기했다. 평소처럼 강용석이 논의를 주도해 나갔고 이에 이철희가 개입하면서 분위기는 뜨거워졌다. 김구라와 강용석보다 작게 들렸던 이철희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의 톤은 이때 높아졌고 명확하게 들렸다. 안정적으로 흘러가던 분위기가 가장 썰전스럽게 변모한 순간이었다. 이철희의 상기된 얼굴과 강용석의 굳은 표정은 정점을 찍었다. 무려 3시간 동안 진행된 녹화는 눈을 뗄 수 없었고, 뉴스 깨기의 제작진은 어떤 방송분을 썰어낼 것인지를 고민할 것이다. 이와 함께 캐릭터의 특징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추진의 여당을 대표하는 강용석과 견제의 야당 이철희, 그리고 조정자 김구라




녹화를 하는 내내 세 명의 MC는 중간에 쉬는 시간도 없이(녹화 중간에 방송 장비 문제로 녹화가 잠시 중단됐지만 5분도 안 됐다) 수시로 물을 마시며, 열띤 논쟁에 집중했다. 우선 김구라는 논의의 중심을 잡았다. 가령 김구라는 이철희와 강용석의 불꽃 튀는 논의의 와중에도, 수시로 대본의 내용을 확인하고 두 사람을 바라보는 등 바쁘게 눈을 굴려가며 완급 조절에 애썼다.

그리고 논의가 다소 무겁고 부담스럽게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정치인을 방송인의 사례로 적절히 비유해 표현하는 등 적절한 유머와 농담으로 대처, 예능의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아울러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무대 세트의 출입문이 닫혀 있는지를 확인, 스튜디오의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해 몰입감을 높이려 했다. 또 녹화 도중에 냉방 상태를 파악하고, 벌칙 수행 시간에 카메라의 앵글까지도 확인하는 세심한 모습을 보였다. 토론을 주로 하지만 '썰전'의 기본 모토는 예능이다. 김구라는 시사 토론의 엄격한 사회자가 아닌 정치적 주제를 다루는 예능의 유연한 사회자가 요구하는 역량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였다. 김 PD는 "김구라는 강용석과 이철희가 때로는 티격태격 유치하게 다투고, 때로는 언성을 높이다 달래주는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기고 재밌어한다"고 설명했다.

이철희는 녹화 현장에서도 역시 말수가 적었다. 그래도 조용한 카리스마를 보이는 자가 바로 이철희다. 토론에서 중요하고 결정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고 냉철한 비판을 제기하는 촌철살인의 모습은 그가 가진 강점이다. 적재적소를 파고드는 능력은 무작정 무례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냉정함을 유지한 채 매의 눈으로 강용석을 노려보는 것이 이제는 정답게 다가온다. 또 그는 냉철함 속에서 이효리에 부끄러워하고 '야당 유머'를 즐기는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준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도, 상대방의 주장을 십분 이해하려는 진정어린 태도는 '썰전'이 정치적 논쟁의 특성을 가지면서도 시청자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강용석 또한 마찬가지다)

화제의 인물은 역시 강용석이다. 일각에서 "이 사람 없는 '썰전'은 없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강용석의 비중은 누구보다 막대하다. 이는 강용석이 '썰전'의 대중 관심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던 사실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그런데 강용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썰전 출연 이전에는 고소와 논란의 중심으로 '불쾌하다'는 말이 많았고, 후에는 '재밌다', '웃기다' 등으로 호감도가 상승했다. 특히 이미지 '세탁'은 현재 그를 대변하는 단어가 됐다. 이러한 비판과 호감의 경계에 서 있는 강용석은 녹화 현장에서 현직 변호사 및 전직 정치인 출신답게, 박학다식하고 유식한 달변가의 모습을 보이며, 시종일관 대화를 주도했다.

그러나 강용석의 캐릭터는 아직까지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NLL 논란 당시 강용석의 발언(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NLL 포기라 볼 수 없다 발언)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소신있다" 라는 긍정적인 평을 하기도 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가식적일 뿐이다"라는 부정적인 평을 내리기도 하였던 것이다. 앞으로 '썰전'의 특성을 확립하는 데 강용석의 캐릭터 확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김 PD는 "강용석과 이철희는 자신만의 정치 성향이 있지만 대본에 쓰여 있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제작진의 예상과 달라 놀랄 때가 있다"고 밝혔다.

정치와 예능. 분명히 이 두 가지 요소는 다르다. 정치적 문제는 심각하고 진지한 사안이며, 예능처럼 웃고 넘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와 예능을 모두 갖추고자 하는 시도는 자칫하면 정치의 희화화나 예능의 경직성을 일으킬 위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꾸준히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이어나가는 '썰전'은 두 가지 요소를 적절히 융합하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엄격하고 딱딱하게만 여겨졌던 정치라는 영역을 유쾌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썰전'이 이런 좋은 모습을 앞으로도 발전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을까? 녹화 현장의 열기, 긴장감과 생생함을 접한 뒤 예능의 블루오션 '썰전'이 앞으로 보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습을 더욱 기대하게 됐다.  

김승현 기자 drogba@xportsnews.com

[사진 = 이철희, 김구라, 강용석 ⓒ JTBC 방송화면]  

김승현 기자 drogba@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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