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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고령화가족', 엄마 주머니 속에 다시 들어간 캥거루

기사입력 2013.05.03 12:54 / 기사수정 2013.05.06 10:34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캥거루의 특징은 암컷 복부에 있는 주머니다. 어미 캥거루는 자신의 새끼를 자신의 품에 집어넣을 수 있는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새끼들은 따뜻하고 안전한 어미 품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면 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 평생 동안 어미 품속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송해성 감독의 영화 '고령화가족'은 중년의 나이에 어미 캥거루의 품속에서 떠나지 못하는 자녀들의 이야기다. 세 남매 중 둘 째인 인모(박해일 분)는 야심차게 준비한 첫 영화가 참담하게 실패한다. 이 일을 계기로 아내마저 그의 곁을 떠난다. 초라한 옥탑방에서 하루하루를 가까스로 연명하던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자살을 시도하는 순간 그의 핸드폰에서는 69세 노모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니(윤여정 분)의 목소리를 들은 그는 어미의 품속으로 뛰어든다. 40세의 나이에 어머니의 신세를 지게 된 인모는 끊임없이 자기 신세를 한탄한다. 그러나 인모보다 더욱 심각한 인물이 집 안에 있었다. 장남인 한모(윤제문 분)는 인모보다 먼저 어머니의 집에 기거하고 있었다. 삼류 조폭 출신인 그는 44세의 나이에 아무 것도 이루어놓은 것 없이 어머니가 화장품을 팔아온 돈에 의지하고 있다.

여기에 셋째인 미연(공효진 분)과 그녀의 딸인 민경(진지희 분)까지 이 거처에 합세한다. 두 번이나 이혼한 미연은 이른 나이에 얻은 딸을 돌보지 않는다. 미연은 딸에게는 무심하고 늘 남자를 만나는 데만 신경이 곤두서있다. 오죽하면 14세인 민경은 "엄마는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라며 돌직구를 던진다.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철이 들지 못한 삼남매는 늘 티격태격 싸운다.

'모래알 가족'인 이들은 인생의 낙오자들이다. 어미의 주머니를 떠나 황야를 질주하는 늠름한 캥거루가 되지 못했다. '고령화가족'은 총체적 난국에 빠진 삼남매를 통해 가족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그리고 있다.



'가족의 정', 욕설을 잠재우다


'고령화가족'에 등장하는 삼남매는 모두 서로를 무시한다. 인모와 미연은 장남인 한모에게 '형', '오빠'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한모는 젊은 시절, 전과 기록으로 가족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고 나이가 들어서는 '무능력'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40대 중반이 되도록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그는 가족들에게 헌신 취급을 받는다.

한모도 동생들을 무시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영화 실패로 인생의 모든 것을 잃은 동생의 가장 아픈 상처를 언제나 공격한다. 또한 여동생 미연에게도 욕설을 내뱉는다. 밥상 자리에 앉으면 늘 티격태격하지만 이들의 다툼은 심각하지 않고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가족나들이를 나가도 이들의 다툼은 이어지지만 다른 이들과 싸움이 붙었을 때는 '가족의 정'을 발휘한다. 횟집에서 미연이 다른 손님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자 두 명의 오빠는 강력하게 항의한다. 이들 남매는 표면적으로 보면 '모래알 가족'이지만 실체는 그렇지 않다. '미운정과 고운정'이 모두 쌓인 삼남매는 '가족의 정'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파이란'에 이어 밑바닥 인생을 조명한 송해성 감독

송해성 감독의 출세작은 2001년에 발표된 '파이란'이다. 최민식의 명연기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쓰레기 취급당하는 삼류건달의 처량한 인생을 다루었다. 이 영화에서 주로 등장한 배경은 허름한 아파트와 낙후된 개발 지역, 그리고 지저분한 도시 뒷골목이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주인공의 인생을 담아내기 위해 송해성 감독은 '낡고 초라한 배경'에 집중했다. 이러한 시선은 '고령화가족'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 영화가 촬영된 장소는 서울 문래동, 철산동, 면목동이다. 변두리 지역의 낡고 지저분한 거리에서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삼남매는 늘 방황한다.

이들이 모여 사는 어머니의 집도 오래된 연립주택이다. 낡은 가구와 청결하지 못한 집안은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삼남매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배경은 화려한 삶에서 소외됐지만 밑바닥 인생에서도 시들지 않은 '희망'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간간이 등장하는 벽돌 사이에 피어오른 한 송이 꽃은 '한줄기 희망'을 암시한다. 자식농사에 실패한 어머니는 출퇴근을 할 때 이 꽃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득한 미소를 지으며 자식들에게 달려간다.



'고령화가족'은 가족들의 갈등과 화해도 다루고 있지만 끈끈한 서민들의 삶도 밀도 있게 그렸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삼남매들의 핏줄에 대한 반전은 극의 흐름에 탄력을 준다. 또한 인물들의 미래가 희망적이지도, 절망적이지도 않게 끝나는 결말도 어색하지 않다.

작가 천명관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고령화가족'은 배우들의 연기 호흡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박해일, 윤제문, 공효진, 윤여정 등 연기력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이 모인 점도 인상적이다. 송해성 감독은 "이렇게 대단한 배우들이 모였다는 점이 너무나 기뻤다. 가족 어벤져스를 찍는 기분이었다"라고 말했다. 오는 9일 개봉 예정.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사진 = 고령화가족 스틸컷 (C)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고령화가족 출연진 (C) 엑스포츠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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