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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연의 꼬투리] 아무리 '퓨전 사극'이라지만, 기본은 갖춰야

기사입력 2013.05.01 13:29 / 기사수정 2013.05.01 13:45

임지연 기자


[엑스포츠뉴스=임지연 기자] 지난 10여 년간 영화와 드라마에서 '사극'이 '인기 상품'이 돼 왔지만 특히 지난해는 그 절정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팩션 사극인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그 해 최다 관객 기록을 세우더니, 안방극장에서는 퓨전 사극인 MBC '해를 품은 달‘이 근래에 보기 드문(미니시리즈 기준) 4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최고의 드라마에 등극했다.

그 여세는 올해도 이어져 현재 방송 중인 지상파 미니시리즈 6개 가운데 절반이 사극이다. 즉 월화드라마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MBC '구가의서'와 수목드라마 KBS '천명'이 그것이다.

이처럼 사극이 안방을 점령하다시피 하게 된 데는 역사에 판타지를 입히거나, 혹은 역사에 허구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역사'라는 딱딱한 소재를 말랑말랑하게 변형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퓨전 사극'은 역사와 상상력이 만나 기존 역사물이 줄 수 없는 재미를 선사 하며 시청자들을 매료 시켰다. 특히 현대극이 매번 출생의 비밀, 불륜 등에 집착하며 소재 고갈 현상을 보이면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을 때, 퓨전 사극은 보는 이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그것은 딱딱한 정통사극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젊은 층까지 흡수하는 효과도 발휘했다.

사실 2000년대 들어 불기 시작한 퓨전 사극 열풍은 변신을 거듭해왔다. ‘구가의 서’, ‘해를 품은 달’, ‘아랑사또전’ 등 판타지 사극, 과거와 현대를 오가는 타임 슬립물 ‘신의’, ‘인현왕후의 남자’, ‘닥터 진’, ‘옥탑방 왕세자’ 등 과감한 시도들은 그 때마다 화제를 모으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상상력은 계속 과감해지고 있건만, 거의 매번 반복되다시피 하는 논란거리가 있다. 바로 역사적인 고증의 문제이다.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역사적인 사실의 '변형‘을 어디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이다.

최근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가 이 같은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5일 방송된 3회분에서 장옥정(김태희)이 하이힐을 연상케 하는 굽 신발을 신고 등장한 장면을 두고 일부 시청자들이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하고 나온 것이다. 이에 제작진은 "역사 왜곡이 아니라 장옥정이 디자이너인 점을 감안해 패션을 현대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해명하며, 퓨전 사극이니만큼 이해해 달라는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제작진의 해명으로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되레 더 증폭되었다. 퓨전이기 때문에 허용해 주기에는 왜곡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장옥정'에는 시대적 배경을 무시하고 양반집 규수들이 모여 사교 파티를 벌이는 가하면, 왕은 자신을 지칭할 때 조선 시대 왕이 일인칭으로 사용하던 ‘과인’이 아니라 ‘짐’이라는 호칭을 쓴다. 이와 같은 것들은 ‘퓨전'이기에 허용되는 선을 넘어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하는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장옥정'의 드라마적인 완성도를 깎아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고증과 상상력 사이의 딜레마는 비단 이번 작품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개의 퓨전 사극이 이와 같은 문제로 진통을 겪었다. 지난 주 첫 방송된 KBS '천명‘ 역시 시청자들의 눈에 거슬린 만한 장면이 전파를 탔다. 중종 말년이 배경인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최원(이동욱)의 동생인 최우영(강별)은 앞머리를 내리고 등장해 의아스럽게 했고, 문정왕후(박지영)의 가체 역시 기발해 “눈에 거슬린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많았다.

퓨전 사극의 장점은 누가 뭐래도 ‘상상력’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건, 혹은 한 두 줄에 그치는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사건과 인물을 새롭게 창조해 낸 것이든 '상상력'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드라마의 성격도 달라진다. 하지만 '상상력'만 내세운다고 해서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퓨전 사극'이라고 할 때 방점은 역시 '사극'에 찍어져야 한다. 즉 '역사적 사실'은 하나의 '게임의 규칙'으로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규칙이 허물어진다면 무엇이든 가능하지 않겠는가. 축구나 야구 같은 스포츠가 '게임의 룰' 속에서 수백만 가지의 감동과 재미를 만들어내듯이 '사극'은 그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든 간에 '역사적 사실'이라는 규칙 속에서 재미와 감동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해를 품은 달’이나 ‘구가의 서’ 등과 같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픽션(FICTION)' 이나 판타지 사극과 달리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극에 등장시키는 팩션 사극인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하다.


대부분의 팩션 사극은 이와 같은 문제와 마주했다. 명품 사극이라 평을 받는 SBS ‘뿌리 깊은 나무’ 역시 역사 왜곡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고증에 기본적으로 철저하되, 그 밖의 부분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다양한 인물을 창조하고 역동적인 사건을 만들어냈기에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장옥정'에서 장희빈을 디자이너로 설정한 것이나, ‘천명’에서 내의관 의원 최원(이동욱)과 내의관 의녀 홍다인(송지효)이 티격태격하는 관계로 설정한 것 등은 충분히 흥미롭다. 다만 충실한 역사 고증이라는 기본 위에서 흥미로운 인물과 사건을 전개시켜 나갈 때 시청자들도 ‘진짜 있을 법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극에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사극은 이제 장년층만이 주시청자가 아니라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젊은 층에게도 인기 있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출연하는 배우들 역시 청춘스타부터 아이돌까지 폭 넓어졌다. 그렇다면 어린이들과 젊은층의 '역사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도 '역사적 고증'이라는 문제는 소홀하게 넘어갈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어디까지나 드라마니까...'라는 반론은 제작진의 안이함에 대한 변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상상력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퓨전사극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장르로 안착한 만큼 '납득이 가는' 선에서 '역사적 사실'을 재창조해야 사극 드라마가 더 큰 날개로 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임지연 기자 jylim@xportsnews.com

[사진 = 퓨전사극 ⓒ KBS, SBS 방송화면]  

임지연 기자 jyl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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