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임지연 기자] 드디어 쨍하고 해 뜰 날이 찾아왔다. 1997년 데뷔해 줄잡아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걸어온 오정세. 그가 드디어 첫 주연작 '남자사용설명서'를 선보였다.
"첫 주연인데다, 톱스타 役…기쁘고 설렜죠"
이원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오정세와 이시영이 호흡을 맞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극 중 오정세는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쳐 드라마 하나로 '빵' 뜬 톱스타 이승재를 연기했다.
"첫 주연…너무 기쁘고 감사했죠. 성장의 잣대도 아니고, 목표점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한 성취감은 있어요. '잘 달려왔구나' 싶었죠(웃음)"
첫 주연도 뜻 깊은 일이건만, 잘생긴 배우들만 한다는 톱스타 역을 제안 받았다. '오정세와 톱스타?' 어떤 모습일지 쉽게 예상되지 않는 조합기이기에 주변에서도, 스스로도 많이 고민했다고.
"시나리오에는 잘 생기고 키 큰, 성격도 까칠한 그런 톱스타였어요. 잘생긴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하면 나쁜 남자의 매력이 있는데, 이도 저도 아니게 생긴 애가 '비호감'으로 빠지면 나도, 영화도 위험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스스로도 주변에서도 걱정이 많았죠.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갖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 방을 날리고 싶었어요(웃음) 그런 승부욕과 욕망이 생겼죠"
오정세는 자신을 향한 우려 혹은 의아한 시선들을 향해 강력한 한 방을 날리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짙은 아이라인과 화려한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사뭇 '오정세가 아니면 톱스타 이승재 역을 누가 소화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개성 강한 매력을 뽐냈다. 전라 노출 연기하면서 까지 말이다.
"특별히 다른 인물을 참고하진 않았는데, 차승원씨가 떠올랐어요. 까칠한데 그만의 매력이 있고, 비주얼 적으로 멋진 그런 톱스타 말이죠. 그런데 영화 촬영하던 시기에 싸이가 있었으면 싸이를 많이 참고했을 것 같아요. 싸이씨는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무대 위에서 만큼은 에너지가 충만하고 누가 봐도 톱스타답잖아요(웃음)"
"다른 톱스타들 그냥 톱스타인데, 오정세표 톱스타인 승재는 일반인이 톱스타가 된 그런 느낌이에요(웃음) 조금은 친근할 것 같고. 열심히 하다가 드라마 하나가 빵 터져서 톱스타가 된 인물이거든요. 다른 톱스타는 태생부터 톱스타 같은데, 승재는 일반일 같은 지점이 있는, 그래서 관객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톱스타이지 않을까…"
이시영과 다시 한 번 호흡? "시영이가 안 할 것"
때깔 좋은 로맨틱 코미디가 탄생했다. '남자사용설명서'는 이원석 감독의 기발한 재치와 두 주연배우 오정세, 이시영의 호흡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를 처음 본 이시영은 다소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는데….
"처음에 가편집 본을 보고 시영이가 실망하더라고요.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친구인데, '내가 기대하고 그렸던 영화는 아닌 것 같다'며 속상해 했어요. 그래서 저 역시 불편했죠. 같이 호흡을 맞췄지만 이시영에게 고마운 부분이 있어서 조금은 마음이 무거웠는데. 완성본 시사 후 이시영이 '깜짝 놀랐다. 흥행을 떠나 떳떳한 작품 나온 것 같다. 만족스럽다. 기쁘게 홍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1차적으로 성공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 같아요"
이시영과는 '커플즈'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다. 그래서 인지 척하면 척, 두 사람 사이에 살아있는 리액션들이 오가 장면 장면을 풍성하게 채웠다.
오정세는 "시영이와의 호흡은 첫 번째도 좋았어요. '커플즈'에서도 호흡이 잘 맞았는데, 두 번째여서 더 잘 맞았던 거 같아요. 시영이가 있어서 든든한 느낌이 있었어요. 저 역시 배우로서 성장해야겠지만, 그 역시 성장해야 하는 성장해야 하는 지점이기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라며 "(이시영과)연기 패턴이 약간은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어떤 감정이 있을까, 또 행동이 있을까 많이 연구해 와서 그것들을 바닥에 깔아 놓고 현장 느낌과 상대 배우에 맞게끔 나오는 연기를 추구하는 사람 중 하난데 그런 부분이 잘 맞아요"라고 두 번째 호흡을 맞춘 소감을 전했다.
"예고편에서 등장하는 엘리베이터 장면이 시나리오 상에는 '승재가 다가가면 보나가 뿌리친다' 한 줄이었거든요? 그런데 나름대로 뒤에도 안아보고, 딴 데 보다가 또 안아보고. 그렇게 여러 개를 가지고 현장에 가는 거죠. 또 현장에서는 공간에 따라 넓으면 뛰어 놀고요. 시영이 역시 그래요. 이쯤 되면 끝날 것 같은데, 갑자기 시영이가 또 때리고. 서로의 행동을 예측 못해 생생한 액션과 리액션들이 막 쌓이면서 한 장면이 조금은 풍성하게 나온 것 같아요. 영화 전체적으로 그런 장면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웃음)"
아쉽게 편집된 장면을 촬영할 때의 일화도 들려줬다. "노래방 장면이 있었는데, 빠졌어요. 원래는 다른 상황이었는데, 보통 제가 등장하는 장면 외에 씬들의 아이디어나 상황에 대해서도 감독님과 많이 대화를 했어요. 노래방 장면은 제가 제안을 해서 조금 더 풍성하게 바뀌었죠. 그런데 시영이가 내가 생각한 것 안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더 만들어 내더라고요. 그게 질투가 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풍성해지는 장면과 우리의 리액션이 신이 났어요"
찰떡호흡을 자랑한 '남자사용설명서' 촬영 기간의 일화들을 들려준 그에게 "두 번 호흡을 맞췄다. 세 번도 오케이?"라고 물었다. 이에 오정세는 "저는 세 번도 좋아요. 그런데 시영이는 안 할 걸요? 모르겠어요. 그냥 안 할 것 같아요"라며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17년 차 배우 오정세 "주연 타이틀에 흔들리고 싶지 않아요"
영화에서는 주로 감초 역할을 담당해온 그이건만 실제로 만나보니 진중하고 차분한 매력이 느껴지는 배우였다. 그가 연기한 영화 속의 인물과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의 감미로운 목소리까지 지닌 그였다. 어떻게 오정세는 영화에서 그리도 맛깔스러운 연기를 보여줬을까?
"실제로 제 모습은 감초 역할처럼 활발하기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모임에서는 말 한 마디 안 할 정도로 조용한 모습도 있어요. 그 자리가 불편해서도 아니에요. 다만 그 집단에서는 조용한 게 편한 거죠. 어떤 장소에서는 쉽게 무장해제 되는데, 또 다른 환경에선 오래 걸리기도 하잖아요. 그 중 가장 오래 걸린 건 아내 친구들이에요. 10년 만에 낯을 텄죠(웃음). 연기할 때 제가 가진 부분을 크게 끌어내 확대하고 또 확대해서 연기해요. 둘 다 제 모습 맞습니다(웃음)"
진중한 모습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에 자신의 그런 부분을 내세우고 싶은 욕심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차분한 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 (이미지가) 조금 가볍기 때문에, 빨리 꺼내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저랑 딱 맞는 작품이 올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조금 늦어져도 상관없어요. 내성적이고, 무미건조한 제 모습을 잘 담을 수 있는 작품을 곧 만나지 않을까요?"라며 자신의 생각을 덤덤히 전했다.
신인시절 오정세는 오디션이라는 오디션은 다 봤던 배우였다. 그는 데뷔 후 7년 동안 무던히도 열심히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큰 결과는 얻지 못했다. 오정세는 스스로를 "오디션에서 많이 긴장하는 배우였다"고 표현했다.
"처음 7년간은 내가 생각해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오디션 보고, 떨어지고. 오디션 보고, 떨어졌죠. 그 시절 얻은 결과물은 한 작품에 한 마디 있는 단역 하나였죠. 비록 결과물은 초라하지만 저는 얻은 게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계속 걸었죠. 그 모습이 늘 생각이 나고, 그 때 그 기억이 지금 나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나 싶어요"
"첫 주연 타이틀, 너무 좋은데 주요 타이틀에 대해 흔들리고 싶진 않아요. 지금 주연을 했다고 계속 그럴 순 없는 거고, 주연했다가 단역 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사실 이미 촬영을 끝낸 다음 영화는 90신에 등장하는 조연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배우로서 하향세를 겪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상황들을 받아들이는 게 더 오래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웃음)"
17년 동안 쌓아온 노력의 꽃이 피었다. 꼭 주연을 연기해서는 아니다. 긴 시간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빛났다. 배우 오정세의 목표는 '주연 배우'가 아니다. 어떤 작품 또 어떤 역할이건 '성장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 그가 꿈꾸는 종착점이다.
"관객들이 절 못 알아보시면 너무 좋아요. 언젠가는 제 뜻과 상관없이 고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고 색깔이 묻겠지만. '그 영화에 오정세가 출연했어?'라는 말이 기분 좋은 칭찬으로 들리거든요. 관객들에게 기억되지 않는 배우가 되고 파요"
임지연 기자 jylim@xportsnews.com
[사진 = ⓒ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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