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현희 기자] LG 스포츠단은 우승 횟수에 상관없이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1990년 초대 우승 이후 서울지역 연고를 바탕으로 많은 스타가 거쳐 간 프로야구 LG 트윈스, 창단 초반에는 선수 부족으로 애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6강 플레이오프를 다툴 만큼 탄탄한 전력을 자랑하는 프로농구 LG 세이커스가 그러했다.
또한 프로축구 LG 치타스(FC 서울 전신) 역시 적지 않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거쳐 갔다. 또한 현재는 해체됐지만 LG 씨름단 역시 김경수를 필두로 김영현, 최홍만 등을 앞세워 승승장구할 때가 있었다.
이는 '백구의 대제전' 시절이라 해서 예외는 없었다. 특히 남자부 럭키금성(LIG 손보 전신)과 여자부 호남정유(GS 칼텍스 전신)는 1990년대 실업배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팀이기도 하다.
이 중 럭키금성은 각종 아마추어 대회에서 적지 않은 우승을 차지했던 것과는 별도로 정작 슈퍼리그에서는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장발의 미남 스타' 이상열을 비롯해 김성채, 서남원, 김동천, 구준회, 구본왕 등 '럭키금성 배구단'을 거쳐 간 스타 플레이어가 많았음을 감안한다면 다소 의외일 수 있다.
'백어택의 제왕', 오욱환에 대한 추억
이들 외에도 1990년대 '백구의 대제전'에서는 투지 넘치는 한 명의 선수가 배구 코트를 호령할 때가 있었다. 오욱환이 그 주인공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키에도 불구, 용수철 같은 점프력으로 수많은 백어택을 성공시켰던 오욱환은 1990년대 남자 배구에서 '경계대상 1호'였다.
한 번 가로막히면 두 번 공격을 성공시키는 오욱환의 투지에 어지간한 상태 팀 선수들도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승승장구했던 오욱환도 한때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고교 졸업 이후 서울시청에 입단했지만 배구를 그만두어야 했기 때문. 코트를 떠난 그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최삼환 상무 감독이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다. 스승의 끊임없는 설득 끝에 그는 입대를 결심했고 이후 상무 배구단의 일원으로 자리 잡으며 1992년 대통령배 배구 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노진수, 신영철, 이재필, 김동천 등 상무의 스타 플레이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그는 그 해 MVP 후보에도 오르며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완성하기도 했다.
전역 이후 그를 선택한 것은 LG화재였다. 입단 이후에도 시원한 백어택을 선보였던 오욱환은 1995 슈퍼리그에서 팀의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또한, 임도헌, 진창욱 등과 함께 대회 베스트6에도 이름을 올리며 진가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 삼성화재의 창단과 함께 소속팀도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오욱환 역시 2000시즌 이후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며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은퇴 이후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간 오욱환은 실업배구 특성상 LG 화재에서 평사원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구와는 전혀 다른 직종에 뛰어들었다. 현재는 천안에서 건설자재 유통업에 매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사진 = LIG손해보험 (C) 엑스포츠뉴스 DB]
김현희 기자 SPORTS@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