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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

해동전설(海東傳說)2(3) 바로 그녀!

기사입력 2004.10.16 18:48 / 기사수정 2004.10.16 18:48

김종수 기자


부산현…

바닷가를 끼고있는 이곳은 해동국내에서도 번화하기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발달이 잘되어있다.

왁자지껄한 저잣거리의 한복판으로 열살 내외로 보이는 남루한 옷차림의 거지소년하나가 어슬렁거리며 배회하고 있었다. 한참동안 씻지도 않은 듯 봉두난발(蓬頭亂髮)한 까치머리에 뼈에 가죽만 입혀놓은 듯 깡마른 체구, 거기에 키만 유달리 큰 것이 언뜻 보아도 눈에 확 띄는 외모였다.

푸드득…

한 횟집의 문밖으로 중년사내가 어항(魚缸)속에서 큼직한 넙치 한 마리를 건져 올리고 있었다. 배 쪽이 희고 잡티가 없는 것이 자연산 넙치가 분명했다. 양식산 넙치는 배 쪽에 흑색의 얼룩무늬가 있기 때문이다.

넙치는 저지방 고단백 식품으로 환자 및 노약자의 영양식으로 그만이다. 특히 세포막을 튼튼하게 하고 늙어서 쭈글쭈글해지는 피부를 팽팽하게 당기는 작용이 있어 주름 제거 및 피부미용에 좋다.

“꿀꺽.”

소년은 멍한 얼굴로 횟집 안을 들여다보며 침을 삼키고있었다. 도대체 얼마를 굶었는지 뱃속에서 연신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횟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손님들이 워낙 많아 횟집의 주인과 점소이들은 미처 소년에게까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툭.

게걸스레 회와 매운탕을 먹고있는 뚱뚱한 사내들의 탁자 밑으로 몇 조각의 음식찌꺼기가 떨어졌다.

이런 기회를 놓칠 소년이 아니었다.

소년은 후다닥 탁자 쪽으로 달려가더니 냉큼 음식찌꺼기들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뭐…뭐야?”

“이봐! 주인장!”

악취를 풍기며 다가온 소년의 모습에 음식을 먹던 사내들의 얼굴이 구겨진 종잇장 마냥 엉망으로 찌푸려졌다.

“아니! 이런 거지새끼가!”

깜짝 놀란 두 명의 점소이가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소년 쪽으로 달려왔다.

퍽!

턱수염을 기른 점소이 하나가 발길질로 옆구리를 걷어차자 소년이 맥없이 한쪽으로 대굴대굴 굴러갔다. 다른 점소이는 쓰러진 소년의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바깥쪽으로 끌어당기려고 했다. 그러나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소년은 필사적으로 버티며 음식찌꺼기가 떨어진 곳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이었다. 두 명의 점소이가 힘을 합쳐도 막무가내였다.

휘익-

돌연 소년 쪽으로 무엇인가가 날아와 떨어졌다. 구석쪽 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청색비단옷의 여인이 먹고있던 초밥 중 몇 개를 집어던진 것이었다.

“……!”

몇 덩어리의 초밥을 본 소년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소년은 양팔을 거칠게 휘둘러 점소이들을 뿌리치더니 재빨리 초밥을 집어들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런 개자식! 나가서 쳐 먹지 못해!”

서너 명의 동료들이 더 가세해서야 점소이들은 소년을 횟집 밖으로 내몰 수 있었다.

“퉤앳! 한번만 더 개지랄을 떨었다가는 뼈도 못 추릴 줄 알아라.”

바깥으로 나가떨어진 소년의 머리위로 점소이가 내뱉은 가래침이 엉겨붙었다. 소년은 그런 것에도 아랑곳없이 손바닥에 묻은 초밥찌꺼기를 연신 혀로 핥아대고 있었다.

“저런 부모님이 안 계시나보구나?”

상냥한 음성이 귓전으로 들려옴에 소년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소년의 머리맡으로 스무 살 초반정도로 보이는 여인 하나가 싱긋 미소짓고있었다. 소년에게 초밥을 던져준 청색비단옷의 여인이었다. 맑은 눈동자에 깨끗한 피부를 지닌 것이 상당한 미인이었다.

“……”

소년은 여전히 몸을 일으키지 않은 자세로 멀뚱히 여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경계할 것 없어.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이렇게 굶고 다니는 것이니?”

재차 여인이 물었다. 이에 소년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따라와라. 많이 배고플텐데 누나가 밥 사줄께.”

여인의 말에 소년의 눈이 커졌다. 이어 여인이 앞장서자 소년은 후다닥 뒤를 따랐다.

“천천히 먹어라. 그러다 체하겠다.”

국밥 집의 구석 쪽에 앉아 걸신들린 듯 그릇을 비우고 있는 소년을 쳐다보며 여인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벌써 세 그릇 째였다.

“이름이 뭐니?”

소년이 음식을 다 먹기를 기다려 여인이 물었다.

“이…이철옥요.”

기어 들어가는 음성으로 소년이 대답했다.

“벙어리는 아니었네?”

예쁜 얼굴 가득히 여인이 미소를 머금고 자신을 쳐다보자 이철옥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굶기를 밥먹듯이 한 것 같은데 키가 무척이나 크구나? 골격도 좋은 것 같고, 영양섭취만 잘하면 앞으로도 체격이 많이 커질 것 같은데…”

여인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철옥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너 농구한번 해볼래? 생각 있으면 이 누나랑 같이 가자.”

“노…농구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철옥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

“어머! 농구가 뭔지 모르니…?”

“예…”

기어 들어가는 음성으로 이철옥이 대꾸했다. 왠지 농구란 것을 모르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딱히 이유는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좋아. 앞으로 배우면 되는 것이니까. 어때? 이 누나랑 같이 갈래? 선택은 너의 자유야.”

여인의 말에 이철옥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알았다. 싫은 것을 억지로 권유할 수는 없지. 자 이것으로 먹고싶은 것 사먹어라.”

이철옥의 앞으로 몇 장의 지전(紙錢)을 내려놓으며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누나!”

막 가려는 여인을 다급한 음성으로 이철옥이 불렀다.

“하…할께요. 농구, 하고싶어요.”

“정말이니?”

여인의 물음에 이철옥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되려 여인의 마음이 변할까봐 불안한 이철옥이었다.

“좋아. 잘 생각했어.”

여인의 가늘고 부드러운 손이 이철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듬과 먼지로 가득 찬 자신의 머리카락이 신경 쓰이는 이철옥이었으나 여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앞으로 잘해 보자. 이 누나의 이름은 순빈이야. 은순빈(殷順嬪). 앞으로 순빈 누나라고 불러.”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이철옥의 손을 은순빈이 꼭 잡았다. 순간 이철옥은 결심했다. 앞으로 남은 자신의 인생을 이 여인을 위해서 살겠다고.  


(계속)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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