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나승우 기자) 영국과 멀리 떨어진 이탈리아에서 느닷없이 손흥민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탈리아 명문 AC밀란을 이끌고 있는 파울로 폰세카 감독이 손흥민의 수비가담 능력을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폰세카 감독은 23일(한국시간) 오전 1시 45분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산시로에서 열리는 클럽 브뤼헤(벨기에)와의 2024-2025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리그 페이즈 3차전을 앞두고 사전 기자회견에 참석해 "박스 투 박스는 토트넘 홋스퍼 윙어 손흥민 같은 선수다"라고 말했다.
앞서 밀란은 1차전서 리버풀에게 1-3으로 졌다. 2차전에서도 바이엘 레버쿠젠을 만나 0-1로 패하며 2연패에 빠졌다. 16강 토너먼트 진출을 위해서는 승점 3점이 절실한 상황이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미드필더 티자니 라인더러스와 함께 사전 기자회견에 참석한 폰세카 감독은 공격수들의 수비 가담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소 뜬금없이 손흥민을 언급해 화제가 됐다.
한 기자가 라인더러스에게 브뤼헤전에서 맡게될 역할에 대해 물었다. 이에 라인더러스는 "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다. 우리 박스에서 상대 박스까지 이동할 수 있으며 중원 전 포지션에서 뛸 수 있다. 8번 역할이 내가 선호하는 위치지만 다른 역할로 뛸 수 없다는 건 아니다"라며 "감독이 결정할 일이다. 난 득점과 도움으로 팀에 기여하고 싶다. 매 시즌 트로피와 타이틀을 따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기자자 폰세카 감독에게 박스 투 박스 역할에 대해 질문했고, 이때 손흥민의 이름이 나왔다. 폰세카 감독은 "박스 투 박스란 뭔가"라고 되물었다. 기자는 "공격, 수비 모두 할 수 있는 선수"라고 답했다. 폰세카 감독은 "다른 선수들은? 공격수들은 공격만 하고, 수비는 안 하나? 현대 축구에서는 모두가 박스 투 박스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 팀에도 그런 선수들이 많다.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자면 토트넘 홋스퍼 윙어 손흥민이 그렇다"며 "손흥민도 박스 투 박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박스 투 박스 역할이라면 중앙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박스 투 박스 유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스 투 박스는 흔히 축구팬들이 '박투박'으로 줄여 쓰는 용어로 자기 진영 박스부터 상대 진역 박스까지 오고갈 정도로 공수 양면 활발하게 누비는 미드필더를 뜻한다. 체력적으로 뛰어나야 하며, 기술은 물론 박스 타격 능력도 갖춰야 한다. 전천후 미드필더들이 보통 이 역할을 맡는다. 과거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던 야야 투레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대 축구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나누는 게 무의미하다는 시선도 있다. 폰세카 감독이 그런 유형인 것으로 보인다. 공격수도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해야 하며, 수비수 또한 필요시 공격에 가담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토털사커가 탄생한 후 계속해서 이어져 온 축구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폰세카 감독 눈에는 손흥민이 적극적으로 수비하는 공격수로 인식된 듯하다. 실제로 손흥민은 수비가담을 열심히 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지난 8월 축구 통계 매체 후스코어드닷컴은 "손흥민은 이번 시즌 이미 다른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이 따라올 수 없는 일을 해냈다"면서 "리그에서 다른 어떤 선수보다 파이널서드 지역에서 공을 뺏어냈다"고 전했다.
지난 5월에는 국제추구연맹(FIFA) 산하 연구기관인 국제스포츠연구소(CIES)로부터 가장 적극적인 수비 가담률을 기록한 공격수로 선정됐다. CIES는 전 세계 30개 프로축구 리그에서 뒤는 공격수들 중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이 가장 적극적인 수비 가담률을 보였다고 전했다.
공격수인 손흥민이 득점 뿐만 아니라 압박도 성실하게 수행한다는 의미다. 이번 시즌 에버턴과의 리그 경기에서도 적극적으로 골키퍼를 압박해 득점을 만들어내는 장면도 있었다. 그만큼 손흥민은 전방에서 수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능숙하다.
폰세카 감독이 기자회견 도중 박스 투 박스 역할을 설명하며 손흥민을 언급한 게 놀랍지 않은 이유다. 다른 감독들이 보기에도 손흥민이 평소 압박을 성실히 수행하는 선수로 여겨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밀란 공격수이자 에이스 하파엘 레앙을 저격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손흥민과 같은 레프트 윙에서 뛰고 있지만 손흥민과 달리 레앙은 적극적으로 수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에 불만을 품었던 폰세카 감독이 손흥민을 언급해 레앙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손흥민과 큰 접점이 없는 이탈리아 구단 감독이 손흥민을 언급했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사진=연합뉴스
나승우 기자 winright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