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기보배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엑스포츠뉴스 김정현 기자) '세계 1강' 한국 여자 양궁의 적통 계보를 이었던 기보배(35∙광주광역시청)가 27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했다. 화려했던 현역생활이었지만 그 만큼 국내 선발전부터 경쟁이 심해 "다시 태어나면 양궁은 하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전 양궁 국가대표 기보배는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 생활 마감을 알렸다. 회견에 앞서, 기보배가 27년간 걸어온 선수 생활이 영상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어 그는 가족들이 준비한, 순금 27돈으로 제작된 금메달을 받았다. 기보배는 사전에 내용을 알지 못한 듯 놀랐다.
기보배는 김수녕 이후 한국 여자 양궁이 배출한 또 다른 스타 궁사였다. 지난 1997년 처음 활을 잡고 선수 생활을 시작한 기보배는 지난 2004년 7월 제8회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국제 무대에서 활약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며 성인 무대 경쟁력을 펼쳐보였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여자 단체전과 여자 개인전 2관왕을 차지하며 김수녕(1988년), 조윤정(1992년), 윤미진(1996년), 김경욱(2000년), 박성현(2004년)으로 이어졌던 올림픽 여자 양궁 2연패 계보를 물려받았다.
기보배는 4년 뒤 열린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도 여자 단체전 금메달, 그리고 여자 개인전 동메달을 차지하면서 올림픽 통산 메달 4개를 기록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세계선수권대회와 양궁 월드컵, 아시안게임, 그리고 세계선수권 못지 않다는 국내 각종 경기 등에서 금메달 94개, 은메달 50개, 동메달 43개 등을 따낸 여자 양궁의 레전드다.
이날 현역 생활 마감을 알리는 자리에서 기보배는 "이 모든 결과는 국민 여러분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온 시간 동안 제가 정상에서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스승님과 선‧후배, 동료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대한양궁협회에도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늘 헌신과 봉사로 제게 힘을 주었던 가족들에게도 큰 감사를 전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잠시 눈물을 보인 기보배는 "이제 제가 그간 받은 넘치는 '국민적 사랑과 관심'을 여러분께 돌려드리고 싶다. 그게 앞으로 제가 남은 여생을 살아가는 길이고, 저를 응원해준 모든 분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기보배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가족들의 노력 속에 기보배는 지난 2018년 아이를 가진 이후에도 꾸준히 훈련에 임했다. 출산 이후 출전한 2021년 ‘올림픽제패기념 회장기대회’에서도 1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기보배는 파리 올림픽을 목전에 둔 지금 후배들을 응원하는 게 맞다는 판단 아래 은퇴를 결정했다.
그는 "내 모교 후배인 안산 선수가 잘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내 뒤를 이어줄 후배들을 생각하면서 '잘 해낼 거라고 믿고 자리에서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물론 파리 올림픽까지 생각해봤지만,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도 어려운 문턱이다. 이로써 만족하고 활을 내려놔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제 활시위를 내려놓는 기보배는 한국 양궁의 발전을 위해 실전에서 느낀 경험과 학업을 통해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양궁이 단순히 올림픽 효자 종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체육 안에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서울대학교에서 교양 과목으로 양궁 수업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022년에는 체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기보배는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양궁의 생활체육화'에 앞장서고자 한다"며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누구나 양궁을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국민 여러분의 건강과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자신의 길을 소개했다.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기보배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다음은 기보배의 일문일답.
-아쉬웠던 순간이 있다면.
매순간 모든 경기에 임했을 때, 저의 마음가짐이 '내 안에 모든 걸 쏟아내라. 후회하지 않는 땀'이란 걸 새기면서 준비했다. 많은 대회를 참가했지만, 큰 아쉬움이 없었다.
그래도 그 중에 하나 꼽자면 리우 올림픽에서 4강 준결승에서 장혜진 선수와 붙었을 때, 그 때가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 2연패를 기대하신 분들도 있었고 나 역시 2연패의 꿈이 컸다. 그 문턱에서 제 자신이 무너지는 걸 보고서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아쉬웠다. 장혜진 선수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도 통과해서 올림픽까지 할 줄 알았는데 은퇴를 결심한 계기는.
2012, 2016 두 번 올림픽 나갔지만, 양궁에서 올림픽 나가는 건 상상하지 못할 고충과 부담감이 동반된다. 2023년에 태극마크를 힘들게 달았는데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과연 리우, 런던 때처럼 그런 마음가짐으로 준비할 수 있을까 의심도 들었다.
또 내 모교 후배인 안산 선수가 잘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내 뒤를 이어줄 후배들을 생각하면서 '잘 해낼 거라고 믿고 자리에서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파리 올림픽까지 생각해봤지만,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도 어려운 문턱이다. 이로써 만족하고 활을 내려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기보배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선수 생활 중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아무래도 런던 올림픽 마지막 슛오프 한 발을 쐈을 때다(여자개인 결승서 멕시코 아이다 로만을 슛오프로 이겨서 금메달 획득). 그 한 발로 내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힘든 순간에도 금메달로 결과가 잘 이어졌다. 내 양궁 인생에 있어 큰 반환점이 된 순간이다. 그 순간이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였다.
-양궁의 생활 체육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리는 그림이 있다면.
지금 내가 대학교 강의를 다니면서 양궁을 알리고 더 나아가 유소년 꿈나무들이 기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들이 충분히 많치 않다고 느낀다. 일반인들, 꿈나무 학생들이 양궁을 더 재밌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고 싶다.
-딸이 엄마를 따라 운동을 한다고 하면 시킬 생각이 있나.
사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 때마다 절대 모든 스포츠 종목을 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요즘 내가 전국체전을 마치고 10월부터 집에서 딸과 다섯 달 정도 지냈다. 나 못지 않게 승부욕이 많다. '뭘 해도 잘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본인이 하고 싶다면 양궁이든, 모든 소포츠 종목을 시켜보고 싶은 의향이 있다.
-파리 올림픽이 곧 있다. 후배들에게 어떤 이야기 해주고 싶나.
파리 올림픽을 기점으로 여자 단체전이 10연패 도전을 앞두고 있다. 내가 7, 8연패를 달성했다. 그때의 중압감,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겁다. 8연패를 달성하고 나서 9연패를 도전하는 후배들 정말 힘들겠다고 생각했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활약하는 후배들 모습 보면서 이번 파리 올림픽 준비만 잘 하면 대한민국에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저는 뒤에서 묵묵하게 응원하겠다. 이번에 파리 올림픽에서 KBS 해설위원으로 현장에서 생생하게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다.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기보배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엄마 선수로 살아간 것이 어떤 의미이고 같은 길을 걷는 후배에게 어떤 이야기 하고 싶은가.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어렸을 때 언니들이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은퇴를 하더라. 물론 소속팀에서 결혼하고 출산하고 육아하는 선수를 좋아하진 않겠죠. 그렇지만 힘든 순간도 있는 만큼 보람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국내 대회에 나가면 가장 맏언니로 출장했다. 아이는 없지만 선수 생활을 이어온 선수들이 항상 나를 보며 '언니 정말 대단하시다'라고 하셨다. 언니처럼 되고싶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한 경기 한 경기마다 허투루 시합을 뛰지 말아야 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나를 비롯해서 다른 종목에서도 엄마로써 운동하고 있는 선수들이 본인이 팀에 피해를 준다는 생각보다 후배들에게 귀감을 줄 수 있는 되야겠다는, 앞으로 많은 발전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들이 남아있었으면 한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의 은퇴로 가장 좋아했던 후배가 있다면.
많다. 나와 10여연 간 동고동락한 광주시청 양궁팀도 많이 아쉬워했다. 무엇보다 내 모교에서 선수하고 있는 후배들, 특히 최미선 선수라던지, 내가 졸업했다고 해서 항상 학교에 발길을 끊는게 아니라 나는 항상 학교를 친정처럼 찾아갔었다. 나보다 띠동갑 넘게 차이나는 후배들에게도 정감있게 대했던 게 후배들이 많이 친근함을 느꼈던 것 같다. 후배들이 '언니 고생했다. 축하한다'라고 해줬다. 오히려 아쉬움을 더 표현해줬다.
-다시 태어나도 양궁 하고 싶을까.
절대 하고 싶지 않다.(웃음) 기량 좋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너무 많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진짜 상상조차 하고싶지 않다. 다만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양궁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일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기보배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선수 생활 27년을 기념해 순금 27돈으로 제작된 금메달을 가족으로부터 받고 생각에 잠겨 있다.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면.
항상 긴장감 속에 살아야 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무한 경쟁 속에서 내 목표를 이뤄야겠다는 부담감도 싫었다. 대한민국 양궁 선수로 살아간다는 건 모든 것이 쉽지 않다. 힘들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다보니 울컥하게 된다.
-지도자에 생각은 있나.
나는 엘리트 체육보다 생활 체육에 관심이 많다. 양궁이 항상 올림픽 시즌 때만 반짝 관심을 갖는 게 선수 생활하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오히려 생활 체육에 더 열심히 노력하고 싶다.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양궁 클럽, 아카데미 등도 생각했다. 내가 그런 것들을 해보려고 생각을 쭉 해보니 우리나라 양궁 저변이 확대가 많이 돼 있지 않다. 양궁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술에 배부르리란 법이 없으니 차근차근 하나씩 모르는 것도 많지만, 조언을 얻어가면서 준비하도록 하겠다.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기보배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선수 생활 27년을 기념해 순금 27돈으로 제작된 금메달을 가족으로부터 받고 취재진에 들어보이고 있다.
◆기보배 주요 이력
1. 학력
2006 성문고등학교 (졸업)
2010 광주여자대학교 (초등특수교육학 학사)
2015 광주여자대학교 (특수교육학 석사)
2022 조선대학교 (체육학 박사)
2. 주요 상훈
2017 대한민국체육훈장 청룡장
2013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
2012 제1회 MBN 여성스포츠대상 대상
3. 주요 경기 기록
'세계 1강' 한국 여자 양궁의 적통 계보를 이었던 기보배(35∙광주광역시청)가 27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했다. 전 양궁 국가대표 기보배는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 생활 마감을 알렸다. 2016 리우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들고 포즈를 취한 기보배. 엑스포츠뉴스DB
▲ 하계올림픽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인 동메달, 단체 금메달
2012 런던올림픽 개인전 금메달, 단체전 금메달
▲ 세계선수권대회
2015 코펜하겐 세계선수권대회 개인 금메달, 단체 동메달, 혼성단체 금메달
2013 안탈리아 세계선수권대회 단체 금메달, 혼성단체 금메달
2011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 단체 동메달, 혼성단체 금메달
▲ 세계 양궁월드컵 파이널
2017 로마 양궁월드컵 파이널 개인 금메달
2016 오덴세 양궁월드컵 파이널 개인 금메달
2012 도쿄 양궁월드컵 파이널 개인 금메달
2010 에든버러 양궁월드컵 파이널 개인 동메달
▲ 아시안게임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 아시아 선수권
2017 다카 아시아선수권대회 개인 동메달, 단체 금메달
▲ 유니버시아드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 개인 금메달, 단체 은메달, 혼성단체 금메달
2011 선전 유니버시아드대회 개인 금메달, 단체 금메달, 혼성단체 금메달
▲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2004 릴스홀 주니어 세계 선수권 대회 단체 금메달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기보배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엑스포츠뉴스DB
김정현 기자 sbjhk8031@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