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중국 항저우, 김지수 기자)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게 만든 역전패만큼이나 패장의 경기 평가 역시 실망스러웠다. 스스로 "현명한 선택을 내리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도 있었지만 불필요한 발언을 덧붙였다.
세자르 곤잘레스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1일(한국시간) 항저우 사범대학 장첸캠퍼스 체육관(Hangzhou Normal University Cangqian Gymnasium)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배구 조별리그 C조 1차전에서 39위 베트남을 상대로 세트 스코어 2-3(25-16 25-22 22-25 22-25 11-15)으로 졌다.
한국은 이날 한국은 이날 1세트를 25-16으로 먼저 따내고 기분 좋게 출발했다. 주포 강소휘가 공격의 중심을 잡아줬고 미들블로커 정호영도 가벼운 몸놀림을 뽐내면서 공수 모두 베트남을 압도했다.
2세트에도 중반까지 13-15로 끌려갔지만 미들블로커 이다현의 연이은 공격 성공, 김다인과 강소휘의 블로킹으로 17-16으로 역전하면서 기세를 이어갔다. 19-19에서는 강소휘, 이선우의 오픈 성공으로 22-20으로 달아난 뒤 24-22에서 캡틴 박정아의 득점으로 세트 스코어 2-0을 만들었다.
하지만 한국은 3세트부터 원활한 공격이 이뤄지지 않았다. 베트남은 한국의 공격 전개 패턴을 읽은 듯 유효 블로킹 성공 비율을 높인 끝에 점차 주도권을 가져갔다. 한국은 19-19에서 베트남의 TRAN Tu Linh에 연이어 득점을 내준 뒤 박정아의 오픈 공격까지 막혀 경기를 3세트에서 끝내지 못했다.
4세트는 자멸이었다. 12-8로 앞서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지만 박정아 등 특정 선수에게만 의존하는 공격 전개가 계속 막혀 위기를 자초했다. 결국 15-18로 역전을 허용한 뒤 승부가 5세트로 넘어갔다.
5세트 11-10 리드 상황에서는 베트남의 다양한 공격에 맥을 못 췄다. 11-12에서 이선우의 오픈 공격이 베트남의 블로킹에 가로막혀 11-13이 됐고 결국 11-14로 무릎을 꿇었다.
한국은 지난 8월 태국에서 열린 2023 아시아배구선수권에서 베트남에게 당한 세트스코어 2-3(25-22 25-19 23-25 17-25 13-15) 패배의 설욕을 노렸지만 거꾸로 또 한 번 쓰라린 아픔을 맛보게 됐다.
세자르 감독은 베트남전 종료 후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전반적으로 어려운 경기를 했다. 우리가 초반에 잘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공격 성공률과 퍼포먼스가 떨어졌다"며 "그때 (내가) 현명한 선택을 내리지 못했다. 게임 후반부에 베트남이 강했고 좋은 수비 조직력으로 우리를 이겼다"고 돌아봤다.
한국은 베트남전 패배에도 오는 2일 네팔(세계랭킹 없음)을 이기면 8강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 8강 라운드는 C조 1, 2위와 A조 1, 2위가 진출한다. 여기서 다시 상위 1, 2위팀이 돼야만 4강 토너먼트 진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8강 라운드에서는 조별리그에서 맞붙었던 팀과는 재대결 없다. 조별리그 결과가 그대로 반영돼 베트남은 1승을 안고 8강 라운드를 시작하는 반면 한국은 1패를 안은 상태로 A조 1, 2위를 상대해야 한다.
한국이 현재 아시아 최강으로 평가받는 중국의 벽을 넘는 건 쉽지 않다. 베트남에게도 졸전 끝에 지는 상황에서 중국을 이기길 바랄 수 없는 상황이다. 베트남이 A조 2위로 올라온 팀을 8강 라운드에서 이기면 한국은 순위 결정전으로 밀려나는 참혹한 상황을 맞게 된다.
세자르 감독은 "앞선 인터뷰들에서도 베트남전이 제일 중요한 경기가 될 거라고 말했는데 이번 패배는 여파가 클 것 같다"며 "아시아 선수권에서 베트남에 당한 복수를 해주는 게 우리 목표였는데 그러지 못해 너무 속상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 "이런 국제 종합경기대회에서의 경기는 상대팀이 해주는 게 아니고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데 그렇지 못했던 게 아쉬운 점"이라며 "베트남은 강한 공격수를 가진 좋은 팀이고 우리가 여기에 경쟁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 졌다. 마음을 잘 추슬서 네팔전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가 베트남에게 변명의 여지 없이 '실력'으로 진 건 맞지만 세자르 감독의 말처럼 베트남에는 있는 '강한 공격수'가 없었는지는 의문이다.
베트남이 우리보다 세계랭킹이 1계단 높은 39위이기는 하지만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뒤진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베트남은 한국처럼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등 주요 국제대회 출전이 없어 세계랭킹 유지가 우리보다 용이하다. 한국이 2021년 도쿄 올림픽 4강 신화 이후 국제무대에서 패배를 거듭하며 세계랭킹이 크게 추락하기는 했지만 베트남보다 약팀으로 보기는 어렵다.
강소휘가 베트남전에서 팀 내 최다 23득점과 공격성공률 60%로 제 몫을 해주고 이다현이 13득점으로 분전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의 공격이 '경쟁력'이 없었는지는 의문이다.
"베트남에는 강한 공격수들이 있었다"는 말은 반대로 한국에는 강한 공격수가 없다는 말이 된다. 과거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울리 슈틸리케가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졸전을 펼친 뒤 "우리에게는 (카타르 대표팀 세바스티안)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없었다"고 말해 공분을 샀던 과거가 떠오른다.
세자르 감독은 지난 6월 한국에서 열린 VNL 경기 종료 후에도 자신의 전술이나 게임 운영이 문제가 아닌 선수 탓을 하는 인터뷰로 빈축을 샀다.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을 4강에 올려놨던 라바리니 감독과는 성적, 결과, 내용, 인터뷰 모두 대비되는 최악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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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