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중국 항저우, 김지수 기자) 예방주사 한 대 맞았다고 하기엔 너무나 아팠다.
17년 만에 아시아 정상 탈환을 노리는 임도헌호가 항저우 아시안게임 첫 경기부터 굴욕적인 패배를 떠안았다.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인도에 변명의 여지 없는 패배를 당하며 한국 배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를 겪었다.
임도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배구 국가표팀은 20일 중국 항저우 린핑 스포츠센터 체육관(Linping Sports Centre Gymnasium)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C조 조별리그 1차전 인도와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2-3(27-25 27-29 22-25 25-20 15-17)으로 졌다.
한국은 21일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캄보디아와 조별리그 C조 2차전을 이기면 12강 토너먼트 진출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번 대회 약팀으로 꼽혔던 인도에 무릎을 꿇은 것 자체가 큰 충격이다.
한국은 이날 낙승이 예상됐다. 한국은 국제배구연맹(FIVB) 랭킹에서 27위로 73위의 인도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승리는 당연한 결과였고 얼마나 좋은 퍼포먼스로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시작할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보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인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탄탄한 조직력을 뽐냈다. 세계랭킹에서는 한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처져 있지만 적어도 이날 경기만큼은 공·수 모두에서 빼어난 플레이를 선보였다.
한국은 1세트 초반 10-6의 리드를 잡고도 잦은 범실로 주춤했다. 공격 전개도 인도의 높이를 넘어서지 못하는 장면이 자주 연출됐다. 인도는 세터와 리베로를 제외한 선수단의 평균 신장이 195cm가 넘었고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한국의 주포 나경복, 전광인의 공격 시도를 많은 유효 블로킹을 만들어 냈고 공격 전환 이후 마무리까지 매끄러웠다. 신장 195cm 비니트 쿠마르, 202cm 라이 로히트, 195cm 아미트 등 3명의 다양한 공격 루트를 활용, 한국을 괴롭혔다.
특히 쿠마르의 파워 넘치는 스파이크에 한국은 쉽게 대처하지 못했다. 리시브가 흔들리면서 세터 한선수의 게임 운영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인도가 안정적인 리시브를 보여준 것과는 대비됐다.
한국은 1세트를 듀스 접전 끝에 힘겹게 따냈지만 2세트부터 경기 주도권을 인도에 빼앗겼다. 21-23에서 허수봉의 공격 성공, 김규민의 블로킹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지만 또다시 들어선 듀스 승부에서 무너졌다. 27-26에서 27-28로 역전당한 뒤 한 점을 더 내주면서 세트 스코어 1-1 동점이 됐다.
기세가 오른 인도는 한국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자신감이 붙은 듯 과감한 공격 시도로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갔다. 한국은 3세트 후반 19-23까지 스코어가 벌어진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3세트를 22-24에서 전광인의 서브 범실로 세트 스코어가 1-2로 뒤집혔다.
한국은 4세트 나경복, 허수봉 등 주포들의 강점인 강력한 스파이크 서브가 날카로움을 되찾으면서 반격에 성공, 승부를 5세트로 끌고 갔지만 또 한 번 펼쳐진 듀스 승부에서 고개를 숙였다. 15-14로 매치 포인트를 선점하고도 인도의 블로킹에 공격이 연달아 막히면서 승리를 헌납했다.
한국이 국제대회 공식 경기에서 인도에게 패한 건 지난 2012년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배구연맹컵(AVC) 이후 11년 만이다. 금메달을 목표로 출항한 첫 경기부터 한국 남자배구 역사에 참사로 남을 패배가 새겨졌다.
에이스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정지석이 허리 부상으로 결장하는 악재가 있었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의 경기력은 졸전이었다. 세터 한선수, 황택의와 주 공격수들의 호흡이 맞지 않는 장면이 자주 연출됐고 리시브도 안정적이지 못했다.
12강에 진출하더라도 현재 대표팀 경기력으로 금메달이라는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냉혹한 현실만 확인했다.
아시아 최강 이란을 비롯해 중국, 일본, 카타르, 태국 등 토너먼트에서 상대해야 하는 팀들의 전력들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임도헌호는 공격, 수비 모두에서 보완할점 투성이라는 숙제만 떠안았다. 한국은 12강에 오를 경우 이미 E조 1위를 확정지은 파키스탄과 붙는다. 파키스탄은 인도 이웃국으로 인도와 비슷한 배구를 할 것으로 여겨지는데 조별리그에서 대만을 3-0으로 완파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어 한국은 인도전 악몽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파키스탄전부터 제대로 준비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안게임 남자 배구는 19개 팀이 참가해 6개 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벌인다. 각 조 1, 2위가 12강 토너먼트에 진출해 메달권 입상을 놓고 다툰다.
한국은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최태웅, 신진식, 김세진 등 90년대 황금세대를 앞세워 금메달을 목에 건 뒤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2연패에 성공했다.
그러나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에 그치며 아시아 남자 배구 최강 위용에 금이 갔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은메달로 마쳤다.
한편 임도헌 감독은 인도전 종료 후 별도의 미디어 인터뷰 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부상으로 뛰지 못한 정지석과 한선수, 전광인, 황택의 등 일부 선수들만 간단히 게임에 대한 평가와 경기력에 대한 반성을 짧게 얘기한 뒤 버스에 몸을 싣고 선수촌으로 복귀했다.
사진=중국 항저우, 김한준 기자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