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권동환 기자) 그리스를 떠나 세르비아 명문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이적한 대한민국 미드필더 황인범이 '별들의 전쟁'에서 활약하기 위해 남다른 각오를 보였다.
세르비아 수페르리가(1부리그) 즈베즈다는 14일(한국시간)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스타디온 라이코 미티치 미디어센터에서 우리 구단과 4년 계약을 맺고, 등번호 66번을 받은 황인범을 소개한다"라고 발표했다.
황인범의 즈베즈다 이적은 이미 결정된 내용이었다. 즈베즈다는 지난 5일 "미드필더 황인범과 4년 계약을 체결했다"라며 그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즈베즈다 구단이 550만 유로(약 78억원)를 올림피아코스에 3년간 나눠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금액은 구단 사상 최고 이적료인 것으로 드러났다. 즈베즈다가 그 만큼 황인범의 가치를 높게 매겼다는 얘기다. 지난 1991년 유러피언컵(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세르비아를 넘어 동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낸 팀으로 잘 알려진 즈베즈다는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최근에도 세르비아를 대표해 유럽축구연맹(UEFA) 클럽대항전에 꾸준히 출전할 만큼 명문 구단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2023/24시즌에도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올라 오는 20일에 '디펜딩 챔피언' 맨체스터 시티와 조별리그 1차전을 가질 예정이다. 즈베즈다는 올해 챔피언스리그에서 맨시티(잉글랜드), RB라이프치히(독일), BSC 영 보이스(스위스)와 함께 G조에 편성됐다.
그런 상황에서 황인범의 이적 소식은 세르비아 축구계에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세르비아 매체에 따르면 즈베즈다 구단 회장을 맡고 있는 즈베즈단 데르지치는 황인범 영입을 두고 "지난 30년 동안 구단 최고의 선수다"라며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수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아울러 세르비아 매체 '레푸블리카'는 지난 5일 "레드 스타의 새로운 미드필더는 평범한 축구선수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즈베즈다를 번역하면 '붉은 별'이 되기 때문에 서유럽에선 오래 전부터 즈베즈다를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로 부르곤 한다.
레푸블리카는 "황인범은 매우 흥미로운 전기를 가졌으며, 팬들의 관심을 끌 것이다. 그는 팀 역사상 가장 비싼 신입생이다. 그는 대전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대전 역사상 최연소 득점자로 활약했고, MLS에서 밴쿠버 소속으로 입지를 굳혔다. 이후 루빈 카잔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고, 올림피아코스에서 즈베즈다에 도착했다"라며 황인범의 축구 선수 경력을 전했다.
즈베즈다는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스타플레이어들의 산실이었다. 장거리 프리킥으로 이름을 날린 시니사 미하일로비치, 동유럽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일본 J리그 구단 감독 생활을 오래 했던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AC밀란에서 주전 스트라이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데얀 사비체비치 등이 바로 즈베즈다를 거쳐 대성했다.
별들이 쏟아져 나온 곳에 황인범이 유니폼을 입고 뛰는 셈이다.
황인범 영입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자 즈베즈다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미타르 므르켈라 구단 디렉터는 "올림피아코스 출신이자 한국 대표팀인 황인범을 소개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라며 "그는 우리가 오랫동안 지켜봤고, 작년에도 데려오고 싶어 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때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지금 성공한 게 가장 중요하다"라며 "황인범은 중앙에서 뛰고 있으며, 우리가 찾던 프로필이기에 미드필더에서 필요한 균형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르비아에 진출한 황인범도 인터뷰를 통해 "레드 스타에 와서 환상적인 팬들 앞에서 경기를 할 수 있어 신난다"라며 "나를 영입해 이렇게 큰 클럽에서 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즈베즈다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라며 이적 소감을 드러냈다.
또 "어젯밤에 베오그라드(세르비아 수도)에 도착했는데 정말 기뻤다. 내 아내도 이 도시를 좋아할 거 같다. 이 자리에 있게 돼 정말 기쁘다"라며 기대감을 전했다.
즈베즈다 팀 역사에 대한 질문에 황인범은 "즈베즈다는 세르비아에서 가장 큰 클럽일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빅클럽 중 하나로 알고 있다"라며 "1991년에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클럽인데, 유럽에서 이를 자랑할 수 있는 클럽을 많지 않다"라며 클럽 역사에 존경심을 보였다.
그는 "난 즈베즈다 팬들이 올림피아코스만큼이나 열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는 그라운드에서 많은 동기를 부여한다"라며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 믿고, 그 점에서 내가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황인범은 즈베즈다로 이적한 가장 큰 이유로 '별들의 전쟁' 챔피언스리그를 꼽았다. 그는 "챔피언스리그는 내가 여기에 있는 큰 이유이다. 우리 모두 세계 최고의 대회에서 뛰고 싶어 한다"라며 "난 팬들에게 날 소개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즈베즈다에서 뛸 준비가 돼 있다"라고 주장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상대할 팀들에 대해선 "챔피언스리그에서 쉬운 그룹은 없다. 우리는 좋은 팀이고, 맨시티 같은 유럽의 빅클럽들과 경기하게 돼 기쁘다"라며 "난 그 경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우리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생각엔 우리는 G조에서 누구든 이길 수 있을 거 같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황인범은 맨시티에 대해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토트넘 홋스퍼)과 황희찬(울버햄프턴 원더러스)한테 물어봤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맨시티에 대해 물어보니 모두 9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쉴 새 없이 달려야 하는데 우리가 90분 동안 수비를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상대가 맨시티이든 라이프치히든 간에 골을 넣어야 승리할 수 있다"라며 "챔피언스리그에서 이겨야 하고, 수비를 통해 무승부를 위해 경기를 해야 한다. 난 팀을 도울 준비가 돼 있으며, 개처럼 뛸 준비가 돼 있다"라고 각오를 드러냈다.
압박감을 묻는 질문엔 "부담감이 있는 게 좋다. 난 빅클럽에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내가 가장 비싼 계약을 맺든 간에 이는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며 "난 단지 팀 동료들에 합류하고 싶고, 현장에서 나 자신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어떤 압박감도 이겨낼 수 있다"라며 덤덤하게 말했다.
이어 "압박감이 있는 건 내가 돈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이 클럽과 어울리기 때문이다"라며 "난 팀을 돕고, 개성을 보여주고, 도움을 통해 많은 골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인범은 즈베즈다 유니폼을 입으면서 세르비아 새로운 축구 커리어를 맞이했지만 이적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전 소속팀인 올림피아코스와의 계약 관련 분쟁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황인범은 2022/23 시즌을 앞두고 FC서울에서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하며 다시 한번 유럽에 진출했다. 그는 올림피아코스에서 2022/23 시즌 동안 40경기에 나와 5골 4도움을 기록했다. 아쉽게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 달성엔 실패했지만 패스 성공률이 89.1%에 달하면서 올림피아코스를 넘어 그리스 1부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인정받았으며, 시즌 후에는 올림피아코스 팬들이 뽑은 시즌 MVP에 뽑히며 최고의 활약을 확인받았다.
이후 황인범은 사우디와 세리에A, 분데스리가의 관심을 받으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인터 밀란, 나폴리의 황인범 영입 가능성과 분데스리가 구단인 프랑크푸르트와 프라이부르크까지 이름이 거론되며 이적 가능성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황인범의 상황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감독 교체와 더불어 계약 관련한 구단과의 마찰로 황인범은 이적이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올림피아코스 사령탑에 오른 디에고 마르티네스 감독은 황인범을 핵심 선수로 판단하지 않았다. 마르티네스 감독의 계획에서 벗어난 황인범은 7월 14일 노르셀란(덴마크)과의 프리시즌 경기에 선발 출전한 이후 꾸준히 팀의 선발 계획에서 제외됐다.
결국 황인범은 출전 시간 확보를 위해 이적을 고려했는데, 이 과정에서 구단과 계약 관련 마찰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그리스 매체들은 황인범과 올림피아코스의 계약 상황에 대해 선수는 1년+2년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으며, 구단은 3년 계약을 주장했다고 전했다. 이어 선수 측은 300만 유로(약 44억원)의 바이아웃 조항을 적용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구단은 1000만 유로(약 143억원) 수준의 이적료를 받아야만 선수를 이적시킬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후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소식까지 잇달았다.
일부 언론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는 그가 연말까지 축구를 그만두는 것이다. 현재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는 것은 황인범이 이탈리아로 가지 못했다는 것으로 증명됐다. 올림피아코스는 1000만 유로를 요구했고, 아탈란타는 이적료 지불을 거절했다"라며 황인범과 개인 합의까지 성공했던 아탈란타가 이적료 지불을 거절하며 이미 이적이 한 차례 무산된 바 있다고 밝혔다.
아탈란타 이외에도 몬차(이탈리아), 프라이부르크, 묀헨글라트바흐,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이상 독일), 페네르바체, 갈라타사라이(이상 튀르키예) 등이 관심을 보였지만, 올림피아코스와의 협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며 각 팀들의 관심도 구단 사이의 협상으로 진전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즈베즈다가 황인범을 영입하며 황인범이 올림피아코스와의 계약 분쟁을 피하고,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는 구단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즈베즈다 합류로 세르비아라는 새로운 무대에 합류한 황인범이 이번 시즌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준 구단의 믿음에 보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즈베즈다 SNS, EPA, TASS/연합뉴스, 엑스포츠뉴스DB
권동환 기자 kkddhh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