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권동환 기자) 독일이 중요한 국제대회를 앞두고 결단을 내렸다. 일본전 참사를 비롯해 부진한 성적이 지속된 한지 플릭 감독이 끝내 경질됐다.
독일축구연맹(DFB)는 10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플릭 감독은 더 이상 독일 축구대표팀 사령탑이 아니다"라며 경질 소식을 발표했다.
플릭 감독은 2019/20시즌 바이에른 뮌헨 감독대행을 맡으면서 놀라운 지도력을 발휘해 뮌헨을 이끌고 2019/20시즌 트레블(분데스리가, DFB-포칼컵, 챔피언스리그)을 달성하는 위업을 달성, 이후 유럽축구연맹(UEFA)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단숨에 세계적인 감독으로 떠올랐다.
뮌헨에서 보여준 지도력을 바탕으로 플릭 감독은 2021년 7월부터 요아힘 뢰프 감독의 뒤를 이어 독일 축구대표팀을 이끌게 됐다. 부임 후 2022 카타르 월드컵 전까지 16경기에서 10승5무1패를 기록하면서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승1무1패를 거둬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월드컵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둔 플릭 감독은 좀처럼 반등의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2023년 시작된 후 A매치 6경기에서 단 1승만 거뒀는데, 마지막 승리는 3월 A매치 2연전 첫 번째 경기인 페루전 2-0 승리였다. 이후 5경기 동안 1무 4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결국 10일 독일 볼프스부르크 폴크스바겐 아레나에서 열린 일본과의 친선 경기 결과가 플릭 감독의 미래를 결정지었다. 이날 독일은 전반 10분 이토 준야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전반 19분 르로이 사네가 감각적인 왼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터트리면서 경기 균형을 맞췄다.
그러나 독일은 동점을 만든 지 불과 3분 만에 우에다 아야세한테 다시 앞서가는 골을 내줬고, 후반 44분과 추가시간에 각각 아사노 다쿠마와 다나카 아오한테 추가골과 쐐기골까지 허용하면서 홈에서 일본한테 1-4로 대패했다.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때 일본한테 1-2로 패하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굴욕을 맛봤던 독일은 약 10개월 만에 치르게 된 맞대결에서도 일본을 꺾지 못하면서 설욕에 실패했다.
일본전이 끝나고 플릭 감독을 향해 질타가 쏟아졌다. 독일 방송사 'RTL+'의 한 해설자는 경기가 끝나자 "재앙이다"라고 언급했고, 독일 유력지 '빌트'는 "종말을 맞이했다"라며 플릭 감독이 끝이 다가왔다고 주장했다. 독일 축구전문지 '키커'도 일본전을 두고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독일 축구 팬들은 하루빨리 플릭 감독을 경질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선임하기를 바랬다. 이는 독일이 오는 2024년 6월에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24를 개최하는 개최국이기 때문이다. 36년 만에 자국에서 개최되는 유로 대회이기에 독일은 우승을 정조준하고 있지만 플릭 감독의 부진이 계속되면서 우승 가능성이 점점 낮아졌다.
경기가 끝나고 플릭 감독은 '스카이스포츠'와의 인터뷰를 통해 "팀을 갖추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고 있다"라며 "코치들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적합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면서 대표팀을 잘 이끌 자신감이 있다고 밝혔다.
플릭 감독은 오는 13일 홈에서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준우승팀이자 2018 러시아 월드컵 우승팀 프랑스와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둬 반등하기를 노렸지만 인내심이 바닥난 독일축구연맹은 더 이상 플릭 감독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플릭 감독의 경질을 발표하면서 베른트 노이엔도르프 연맹 회장은 "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동의했다. 남자대표팀이 최근 실망스러운 결과를 거두면서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고, 우린 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며 "우리나라에서 유로를 치르기 위해선 우린 돌파구와 자신감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개인적으로 이는 내 재임 기간 동안 내가 내린 가장 어려운 결정들 중 하나"라며 "축구 전문가로서 한지 플릭과 그의 코치들에게 감사하지만 스포츠의 성공이 연맹의 최우선이었다. 그러므로 경질 결정은 불가피했다"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플릭 감독은 독일축구연맹 123년 역사상 처음으로 경질되는 지도자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요아힘 뢰프 감독을 포함해 플릭 감독의 전임자 10명 중 그 누구도 연맹에 의해 경질된 적이 없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위르겐 클린스만도 2006 독일 월드컵에서 3위를 달성한 이후 더 이상 대표팀에 남기를 원치 않아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플릭 감독이 경질됨에 따라 독일 대표팀 사령탑 자리는 당분간 루디 푈러가 맡기로 결정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멤버인 퓔러는 현장에서 물러난 뒤 독일 대표팀 이사직을 맡고 있었지만,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해 2005년 이후 무려 18년 만에 현장으로 복귀했다.
퓔러 감독 대행은 "플릭 감독은 지난 몇 달 동안 지쳤다. 그는 코칭스태프와 함께 카타르 월드컵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 모든 걸 함께했지만, 불행하게도 오늘 우리는 그게 실패했다는 걸 알아야 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본전은 우리가 이 자리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걸 분명히 했다"라며 "난 지난 2월에 연맹에 합류해 플릭 감독이 성공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를 지원했기에 이는 쉬운 순간이 아니었다. 난 그가 대표팀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하지만 이제 우리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하기에, 우린 자국에서 열리는 유로에서 우리 모두가 바라고 있는 도전적이고 야심찬 주최국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라며 "그것이 바로 독일 팬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가장 시급한 과제는 우리 팀을 신속하게 재정비하고 내년에 열리는 유로를 준비할 대표팀 코치를 고용하는 것"이라며 "우리 모두 이를 통해 독일 축구와 나라 전체에 긍정적인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장기적으로 대표팀을 우리가 알고 있고, 기대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퓔러 감독 대행이 빠르게 정식 사령탑을 선임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플릭 감독의 뒤를 이어 '전차 군단' 독일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누가 잡게 될지 주목됐다.
독일 축구 팬들이 가장 원하는 플릭 감독 후임자는 프리미어리그 명문 리버풀을 이끌고 있는 세계적인 명장 위르겐 클롭이다. 독일 유력지 '빌트'가 지난 6월에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클롭 감독이 득표율 47%를 기록하면서 팬들이 가장 원하는 '전차 군단' 차기 사령탑으로 뽑혔다. 2위는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17%)이었다.
다만 클롭 감독은 리버풀과 2026년 6월까지 계약을 맺은 상태이고, 리버풀 구단과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감독이기에 2023/24시즌 도중에 독일 대표팀이 클롭 감독을 선임하는 건 불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클롭 감독도 과거 독일 대표팀 부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국가대표팀을 맡는다는 건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면서 "다만 문제는 내 충성심이다. 난 지금 리버풀을 떠날 수 없다. 물론 제안도 없었다"라며 리버풀과의 의리를 택했다.
클롭 감독은 어렵지만 클롭 다음으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젊은 천재' 나겔스만 감독 선임은 가능하다. 36세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명장으로 꼽히는 나겔스만 감독은 지난 3월 바이에른 뮌헨에서 경질됐다. 이후 토트넘 홋스퍼, PSG(파리 생제르맹), 나폴리 등과 연결됐지만 아직까지 어떠한 팀도 맡지 않으면서 무직 상태이다.
비록 뮌헨에서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지만 이전까지 나겔스만 감독은 호펜하임과 RB 라이프치히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또 분데스리가 최연소 감독 데뷔 기록을 갖고 있어 미래가 더욱 기대됐다.
나겔스만 감독 외에도 2021/22시즌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이끌고 유로파리그 우승을 달성했던 올리버 글라스너 감독도 독일 축구대표팀 차기 사령탑 후보 중 한 명이다. 2022/23시즌이 끝나고 프랑크푸르트 지휘봉을 내려놓은 글라스너 감독은 토트넘 차기 사령탑으로도 거론됐지만 불발되면서 여전히 무직 상태이다.
당장 프랑스와의 A매치가 임박했기에 오는 13일에 열리는 맞대결은 퓔러 감독 대행 체제로 가겠지만, 10월 A매치 기간에 진행되는 '미국-멕시코' 2연전 때 누가 독일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A매치를 치를지 주목된다.
사진=DFB 홈페이지, DPA/연합뉴스
권동환 기자 kkddhh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