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일본 축구의 박지성'으로 불리는 혼다 게이스케도 깜짝 놀랐다.
"작년 월드컵에 이어 또 한 번 독일에 승리했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일본 축구가 다음 레벨에 도달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겸손한 자세로 일본 대표팀의 발전이 더 필요하다고 외쳤던 혼다도 이제는 후배들의 대승을 보면서 감탄한 셈이다.
일본 축구가 독일과의 리턴 매치에서 대승을 챙기며 황홀한 일욜일 아침을 맞았다. 새 감독 부임 뒤 5경기에서 승리가 없는 것은 물론 감독의 희한한 행동으로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기고 있는 한국 축구와 뚜렷한 비교가 되고 있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지휘하는 일본 축구대표팀은 10일(한국시간)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폴크스바겐 아레나에서 열린 독일과 친선 경기에서 전·후반 각각 두 골씩 뽑아내며 4-1 대승을 거뒀다.
이날 경기는 지난해 11월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이후 10개월 만의 리턴 매치였다. 일본은 당시 E조 1차전에서 독일을 2-1로 이겼다. 이후 코스타리카에 졌지만 스페인에 다시 2-1 뒤집기 승리를 챙기고 죽음의 조에서 1위를 차지하는 깜짝 이변을 일으켰다.
그리고 독일 적지에서 '전차 군단'이라 불리는 상대를 유린하며 4골을 퍼붓고 대승을 올린 것이다. 일본은 이날 독일전을 포함해 최근 A매치 3연승을 달렸다. 카타르 월드컵 이후 5경기에선 3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한국이 3무 2패로 승리 없이 신음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일찌감치 월드컵 이후 전력을 구축해 달려나가고 있다.
모리야스 감독은 이달 A매치를 위해 총 26명을 소집했다. 이 중 일본 J리그에서 뛰는 선수 4명, 카타르 알라이얀에서 뛰는 수비수 다니구치 쇼고를 뺀 21명을 유럽파로 구성했다.
그는 독일전 선발 라인업으로 골키퍼 오사코 게이스케(산프레체 히로시마)를 비롯해 백4에 이토 히로키(슈투트가르트), 도미야스 다케히로(아스널), 이타쿠라 고(묀헨글라드바흐), 스가와라 유키나리(AZ 알크마르)로 구성했다. 엔도 와타루(리버풀), 모리타 히데마사(스포르팅 리스본)가 더블 볼란테로 배치됐다. 2선엔 미토마 가오루(브라이턴), 가마다 다이치(라치오), 이토 준야(랭스)가 포진했다. 원톱엔 우에다 아야세(페예노르트)가 나섰다.
유럽파의 위력은 전반 초반부터 나타났다. 전반 11분 오른쪽 수비수 스가와라가 오른쪽 터치라인 부근에서 올린 날고 빠른 크로스를 핵심 미드필더 이토 준야가 상대 수비수보다 반박자 빨리 달려들어 오른발 다이렉트 슛으로 방향 바꿔 골망을 출렁인 것이다.
홈팀이 전반 19분 독일 바이에른 뮌헨에서 김민재와 한솥밥을 먹는 리로이 사네의 동점골에 힘입어 1-1 균형을 이뤘으나 정확히 3분 위 일본이 다시 전차군단 골망을 흔들며 대승의 서막을 알렸다.
일본은 전반 22분 오른쪽 측면 공격 전개 뒤 페널티지역 오른쪽으로 향한 패스를 이토 준야가 다시 왼쪽으로 밀었다. 이 때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서 뛰는 공격수 우에다가 왼발로 볼의 방향을 바꿔 2-1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어느 팀이 홈팀이고 어느 팀이 원정팀인지 모를 정도로 독일 수비라인을 공략하던 일본은 후반 막판 연속골을 쾅쾅 때려박으면서 대승을 완성했다.
독일이 동점포를 위해 수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던 후반 45분 교체투입된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의 스타 플레이어 구보 다케후사가 단독 찬스를 잡아 질주한 뒤 반대편에서 달려들던 조커 아사노 다쿠마(보훔)에 연결한 것이다. 아사노는 구보의 왼발 패스를 오른발로 가볍게 차 넣어 3-1을 만들었다. 이어 후반 추가시간엔 구보의 오른쪽 측면 긴 왼발 크로스를 독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뛰던 다나카 아오가 방향 바꾸는 헤더슛으로 연결, 독일전 4번째 골 주인공이 됐다.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일본 선수들은 두 팔을 치켜들며 대승을 자축했다.
이어 일본 축구계에서도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뒤 모리야스 감독을 선임, 올 초 재계약을 단행한 일본축구협회의 장기적인 안목과 일본 선수들의 줄기찬 유럽 무대 도전이 어우러져 이날 대승의 기반이 됐다.
일본계 브라질인으로 1970년대 브라질과 일본에서 프로 선수로 뛰며 이름을 날렸던 세르지우 에치고도 이날 닛칸스포츠를 통해 "일본이 월드컵 때보다 확실히 성장했다. 시스템으로 유럽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증명했다"며 "이제는 유럽이 아닌 개인기 좋은 남미 팀과 붙어 이길 때"라고 주문했다.
일본 축구 레전드 수비수로 이날 경기 해설을 맡은 마키노 도모아키는 "오전 6시인데 흥분이 가시질 않는다"며 역시 기뻐했다.
독일전 쾌승을 거둔 일본은 이제 벨기에로 이동 오는 12일 오후 9시20분 튀르키예와 이달 A매치 두 번째 경기를 치른다. 일본은 지난 2002 한일 월드컵 16강에서 튀르키예에 진 악연을 갖고 있다.
9월 A매치를 마치면 10월 일본으로 돌아와 북아프리카 강호 튀니지, 2026 월드컵 개최국이자 지난해 카타르 대회를 통해 36년 만에 월드컵 무대를 밟았던 캐나다와 싸운다.
그리고는 11월 2026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 돌입한다. 11월16일 홈에서 미얀마(혹은 마카오)와 예선 첫 경기를 치른 뒤 21일 적지에서 시리아와 원정 경기를 한다. 그리고는 내년 1월 카타르에서 개막하는 아시안컵에서 한국,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이란, 카타르 등과 우승을 다툰다.
D조에 속한 일본은 베트남, 이라크, 인도네시아와 조별리그를 치른다. 일본과 E조 한국이 모두 조 1위를 차지하면 두 팀이 결승전에서나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일본이 D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고 한국이 E조 1위를 차지하면 16강에서부터 만나게 된다.
사진=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