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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코리아리그 흥망성쇠의 열쇠는 무엇인가

기사입력 2006.05.14 03:45 / 기사수정 2006.05.14 03:45

박재동 기자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나들이 가족들로 모처럼 상암경기장이 만원 관중을 기록했다.
많은 시민들과 서포터들은 경기장 안팍으로 축제 분위기를 연상시켰다. 해맑은 날씨만큼이나
사람들의 표정 또한 밝고 행복해 보였다. 많은 축구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에 화답하듯 FC서울 또한 7경기 연속 무승의 멍에를 떨쳐버리고 연승 행진을 달리고 있는 부산을 상대로 소나기 골을 보답하였다.
 
동심처럼 맑은 어린이들의 “선수 아저씨들 힘내세요”라는 응원 문구가 너무나 가슴 흐뭇하다.  하지만 모처럼 활기찬 경기장을 보면서도 관계자 분들은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다. 축구팬들이
오늘처럼 매번 찾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걱정을 마음 한편에서는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관중 문제로 허덕이는 것은 어제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십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텅 빈 관중석을 어떻게 채울까 걱정하는 구단관계자들의 걱정거리다. FC서울은 마케팅의
일환으로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어린이 무료입장 등 다채로운 가족 행사들로 반짝 관중동원을
유치한 것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상암경기장의 조건은 세계 어디에 놓아도 만원관중을 기록할만한 기막힌 조건을 갖춘 곳이다.
매연으로 가득찬 회색도시 서울에서 공기 맑은 외곽지역에 위치하였고 주변은 공원 및 영화관 쇼핑 음식점 등 모든 것을 갖춘 아름다운 축구장과 멀티플렉스의 결합지역이다. 1000만명이
넘는 인구와 이런 천혜의 조건을 갖춘 상암경기장이 2만명을 겨우 윗도는 수준이라니 믿을 수 있겠는가. FC서울은 열혈 서포터로 유명한 레드와 안양 시민의 기대를 져버리고 많은 관중과
홍보 효과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서울로 급하게 입성 하였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반응이 시원치 않은 건 축구에 해박한 마니아 층이 FC서울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진짜 원인은 클럽 축구를 사랑하는 축구팬들의 숫자가 미미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클럽 축구를 사랑하는 지역 서포터들로 만원관중을 이룬다면 아무리
기업 팀이라도 연고지 이전과 같은 일도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왜 대한민국의 축구팬들은 남미, 유럽의 축구문화를 항상 경외심으로 보며 느낄 수 밖에 없는가. 지역 전체가 서포터이며 자신의 클럽 문화와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는 그들의 정열을 보면 부러운 눈길, 시샘 어린 마음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되자 될 수 있다는 문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축구인들에게 큰 목표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답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꽁꽁 숨어 찾지 못하고 쳇바퀴 돌 듯 매년 빈 관중석은 그대로다.
관중동원에 성공한 축구 선진국에게는 어떤 비결이 숨겨져 있을까
 
그들의 역사를 살펴 성공의 열쇠를 찾아보자.
축구의 시작은 아시다시피 실질적으로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전통축구는 남성성을 상징하는 하나의 일환이었다. 당시에는 심판도 없고 규칙도 없었다. 마을과 마을을 대표해서 단지 반대편 골대로 가죽 공을 넣으면 골이다. 많은 부상자가 속출할 수 밖에 없었고 심지어는 사망에 이르기도 하였다. 이들에게 축구는 마을을 대표하는 하나의 행사와 같았다. 축제 때는 항상 축구경기가 열렸고 축구는 닭싸움과 같은 고대 놀이보다 높은 인기를 누렸다. 축구는 달리기 수영과 같은 개인종목 경기와는 다르게 지역의 문화와 색깔을 나타내는 특징이 있어 마을 단위로 저마다 다른 규칙을 가지며 급속도로 확산되어 나갔다. 현대 유럽축구는 이런 지역적 쇼비니즘이 밑바탕 되어 지역 클럽들이 뿌리깊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축구가 지금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지역 주민들의 축구 사랑 이전에 권력가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권력가들이 축구에 미친 영향력을 살펴보면
영국 같은 경우에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도시를 향해 많은 농민들이 노동자로 탈바꿈 되었다.
영국의 실질적인 권력가 부르주아는 도시가 발전할수록 축구 클럽들을 하나 둘씩 만들어 나갔다. 부르주아의 주도아래 노동자를 대표하는 구단도 탄생하였고 계급간 대립적인 구도를 형성하였다. 이때 거시적으로 축구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산업혁명으로 대내외적 팽창의 제국주의와 축구가 잘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축구의 특징은 군대나
노동자들을 하나로 융합하는데 좋은 도구가 되었고 식민지를 다스릴 때도 축구는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제국주의가 막을 내리고 각 나라의 권력가들이 축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축구의 존망을 달리했다. 미국은 영국과의 차별화를 위해 축구를 배타적으로 멀리했고
캐나다는 영국과 대등할 만큼 축구의 실력을 갖췄지만 미국을 따라 캐나다를 대표할 새로운 스포츠를 정책적으로 장려하였다. 하지만 남미나 아프리카는 축구를 그들과 달리 받아드렸다. 남미 같은 경우에는 영국의 간접적인 축구영향력을 받아 거부감이 없었고 아프리카 사람들은 축구에는 서부의 가치와 관습이 빠져있는 문화 중립적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받아드렸다.
권력가들의 지지를 받은 대륙은 축구문화가 하루가 다르게 번창하였고 종주국 영국을 뛰어넘을
수준으로 발전되었다. 이때부터 축구는 지역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경기로 변화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4공화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 통제의 일환으로 스포츠정책 사업을 펼쳐가는 수단으로 축구를 이용한 것이었다. 권력가들의 뒷받침으로 축구는 날마다
만원관중을 이뤘으며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쿠테타로 탄생한 5공화국에
이르러 새로운 전략으로 야구를 지지하였다. 이것은 클럽 축구의 쇠퇴기를 가져왔고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온 것이라 보면 된다.
 
이제 축구의 흥망성쇠 열쇠를 권력가가 쥐고 있다는 것쯤은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현 시대에선 누가 권력가인가? 대통령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니다, 기업가도 아니다.
바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고 구매력을 갖춘 국민이자 소비자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을 이렇게 돌려 말한 진의는 축구는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정책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분명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권력이라는 힘이 미미하다. 하지만 시민연대와 같은 단체들은 작은 목소리를 한 곳에 모아 큰 소리를 낼 수 있어 큰 힘이 존재한다. 클럽 축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우린 이와 같은 방법을 중점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서포터라는 단체가 존재하지만 이 단체는 주로 경기장안에서 응원하는 학생위주로 모인 집단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시민들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의 단체를 조성해야 한다. 지 자체와 클럽 축구의 발전을 위한 전문 단체를 각 시도 마다 설치하여 평소에 마음만으로 축구에 대한 애정을 가진 분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시급하다. 
의사 변호사 사업가 공무원 회사원 등 시간에 쫓기고 삶에 찌든 저마다 다른 직업을 사람들이
평소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던 축구에 대한 호감을 끌어내어 단체의 힘을 내는 것이다.
이들이 직접적으로 구호하고 활동하지 않더라도 단체의 서포트가 되어준다면 그 자체로 클럽축구 발전에 큰 희망이 되는 것이다.
 
지역 클럽 발전의 계기는 이번 독일 월드컵이다. 4년마다 반짝하는 에너지를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담아야 한다. 국가적 축구사랑의 에너지를 지역적 축구관심의 에너지로 변환할 좋은 기회이다. 한국의 축구문화가 지금 보다 한걸음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박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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