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6.05.14 02:05 / 기사수정 2006.05.14 02:05
[프로야구 25년 특별기획 - 나의 몬스터시즌 22] 2003년 심정수 & 이승엽
남자의 변신은 무죄
역시 남자의 변신은 '무죄'였다. 이승엽은 그토록 아끼던 외다리타법을 포기하고 새로운 변신을 감행했다. 기존의 외다리타법에선 오른쪽 다리를 드는 바람에 왼쪽 다리 하나로 모든 하체 힘을 집중시켜야했으나 새로운 타격폼에선 오른쪽 다리를 들지 않기 때문에 하체 밸런스가 안정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는 타이밍을 맞추는데 주효했고 힘보다 기술로 담장을 넘기는 타구가 많아졌다. 한마디로 결과는 대성공.
변신을 감행한 건 심정수도 마찬가지였다. 심정수는 두산 시절 독특한 기마자세로 국내 선수 최초 서울팀 선수 30홈런 기록도 달성했지만 현대로 옮기고 난 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스프링캠프에서 특별훈련을 실시하며 새로운 타격폼에 적응을 마친 상태였다. 타격폼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타구의 비거리가 늘어나는데 엄청난 효과를 냈다. 중심이동을 앞으로 이동시킨 것이 주효한 것.
이승엽과 심정수는 2002시즌부터 본격적인 홈런왕 대결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라이벌 형성의 전기를 마련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승엽이 하나 차이로 2년 연속 홈런왕에 등극했고 심정수는 아쉬움에 눈물을 머금고 홈런 2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한층 발전된 자신을 발견한 것은 최대 수확이었다.
2003년 새로운 해가 밝아오자 이들은 플로리다 말린스 스프링트레이닝에 같이 합류해 잠시나마 메이저리그의 숨결을 느꼈다. 짧았지만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홈런타자로 2003시즌 홈런왕 1순위로 꼽혔던 이들의 진정한 한판 승부는 이제 시작이었다.
라이언킹, 아시아를 호령하다
출발이 아주 상쾌했다. 이승엽은 두산과의 개막전에서 두 방의 홈런을 작렬하며 통산 300홈런에 대한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물론 4월 한 달 동안 완전한 타격 컨디션을 찾지 못해 타율은 많이 떨어졌으나 그래도 6방을 터뜨리며 조금씩 페이스를 찾아가고 있었다.
이승엽은 5월부터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승엽 특유의 몰아치기가 가장 빛난 순간이 바로 이 때였다. 감각과 기술, 그리고 타이밍으로 상대 투수를 완벽하게 제압하며 아치를 그리는 이승엽의 모습은 완벽한 홈런타자. 이승엽은 5~6월 두 달 동안 무려 29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전국에 홈런 신드롬을 다시 일으켰다.
침체기로 접어들 위기에 처했던 한국야구는 이승엽의 도전 덕분에 다시 팬들의 관심을 일으켰다. 이런 페이스라면 시즌 60홈런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예상이 나올 정도로 전국의 분위기가 한층 달아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이승엽은 무더운 여름이 되자 조금씩 주춤하기 시작했다. 주위의 엄청난 관심이 부담으로 느껴진 것일까. 아시아 홈런신기록을 염원하는 팬들과 또 이를 부추기는 언론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이승엽의 부담감은 커져만 갔다.
홈런 페이스가 떨어진 건 사실이나 그래도 미리 쌓아놓은 덕분에 '꿈의 56홈런'은 점점 현실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이승엽도 조금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고 경쟁자 심정수가 계속 쫓아오자 더욱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이승엽의 홈런행진이 계속되자 팬들은 손수 잠자리채를 들고 와 외야석을 채우는 진풍경을 연출했고 이승엽은 심정수가 보는 앞에서 50홈런 고지를 다시 밟으며 신기록을 향한 의지를 불태웠다.
이승엽의 홈런 신기록이 대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이례적으로 공중파 TV에서 평일 야간경기를 생중계했고 삼성 구단에선 홈런볼을 줍는 관중을 위한 경품 이벤트를 마련하며 열기를 이어갔다. 이승엽이 가는 곳마다 관중 수는 배가되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거리가 되었다.
이승엽은 또다시 침묵의 길을 걷다 광주 기아전에서 김진우를 상대로 55호 홈런을 터뜨리며 한국프로야구 단일시즌 홈런 신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여론은 '56'이란 숫자에 목을 매고 있어 이승엽의 55호는 예상보다 비중이 적게 처리됐다.
결국 시즌 최종전까지 끌고 온 이승엽은 롯데의 이정민을 상대로 중월 솔로홈런을 터뜨리며 대망의 56호를 달성했다. 펜스에서 뿜어 나오는 불꽃쇼와 하늘에서 퍼지는 축포 소리는 대구구장을 축제의 한마당으로 이끄는데 충분했다.
이승엽의 이 한 방은 주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삼성은 기아, 현대와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놓고 한바탕 전쟁을 치르던 중 이승엽의 홈런에 쏠린 시선 때문에 경기 운영에 지장을 받았고 결국 시즌 3위로 주저앉았다. 준플레이오프에서도 돌풍의 핵 SK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탈락, 2년 연속 챔피언의 꿈은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이승엽은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획득하자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 LA 다저스와 시애틀 매리너스 등과 교섭을 벌였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포기해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결국 이승엽은 차선책이던 일본 진출을 확정지었고 지바 롯데 마린스와 2년 계약을 맺었다. 이때 삼성에 남으라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한 이승엽은 지바 롯데와의 계약을 밝히던 날 눈물을 흘리며 죄송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록 메이저리거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승엽에게 있어 2003년은 인생에 큰 획을 그은 소중한 한 해였다. 이렇다할 스포츠 빅이벤트가 없던 차에 이승엽의 홈런신기록은 한 줄기 단비였다. 통산 300홈런과 시즌 56호 홈런을 동시에 이룬 이승엽은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다.
아름다운 경쟁자 심정수
심정수는 조금 발동이 늦게 걸렸다. 개막 후 일주일이 지나서야 마수걸이 홈런을 터뜨린 것이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차근차근 홈런포를 터뜨린 심정수는 자신의 페이스를 그대로 이어가며 꾸준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심정수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한여름 때부터. 이승엽이 부진한 사이 심정수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이승엽을 위협하기 시작하자 '이승엽의 경쟁자'로 부각된 것이다. 그러나 그 페이스는 대단해서 이에 끝나지 않고 홈런왕 후보로까지 떠올랐다.
8월이 지나자 어느덧 하나 차이로 좁혀진 홈런 개수는 이승엽을 위협하기 충분했고 이젠 팬들도 심정수의 홈런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심정수는 9월초 부진에 빠졌으나 이승엽이 침묵하는 사이 턱밑까지 추격하며 막판 레이스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심정수는 아쉽게도 53개의 홈런으로 시즌을 마쳐야했다. 3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2인자'에 머문 것이다.
사실 심정수는 섭섭한 면이 없지 않았다. 홈런 신기록에 다가갈수록 여론의 시선은 이승엽에게 집중됐다. 모두 이승엽이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라 확신했고 여론의 방향도 그렇게 흘러갔다. 물론 심정수가 역전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온통 여론은 이승엽 편이었다. 그래도 심정수는 시즌 중에 섭섭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 싫었던 모양이다.
1998년 메이저리그에서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가 벌였던 홈런 대결이 마치 한국프로야구에서 펼쳐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시선은 항상 이승엽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심정수가 홈런을 터뜨려도 이승엽을 추격하는 입장으로만 풀이할 뿐이었다. 물론 심정수가 앞서나간 적이 없는 것이 사실이나 그래도 차별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팀 성적에 있어선 심정수가 우위를 차지했다. 3년 만에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으며 우승의 감격을 맛본 것이다. 2001년 당시 선수협 사태로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했던 심정수는 설움의 세월을 모두 날려버리고 9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것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한편 일각에선 홈런, 타점을 제외하곤 영양가면에서 심정수가 앞선다는 평가가 나왔고 이 때문에 네티즌들은 인터넷 게시판에선 '진정한 MVP는 누구냐'는 주제로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비록 심정수는 MVP를 차지하진 못했지만 선수협의회에선 선수들이 뽑는 '올해의 선수'로 선정, 진한 동료애를 느끼며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승엽 (2003) → 56홈런 144타점 타율 0.301
심정수 (2003) → 53홈런 142타점 타율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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