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5.07.14 08:55 / 기사수정 2005.07.14 08:55
2005 하우젠 K리그 전반기리그가 부산과 인천의 돌풍과 '축구천재' 박주영 열풍을 만들어내며 지난 일요일(10일) 그 막을 내렸다. 이제 K리그는 약 한달 반 정도의 휴식기를 가진 뒤 8월 24일 후기리그를 맞이하게 된다.
예상치 못한 팀들의 파란과 슈퍼스타의 등장 등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만들어 낸 전기리그를 3부로 나누어 되돌아본다.
-돌풍을 이끌며 성공신화를 쓴 두 개의 항구도시
부산과 인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두 항구도시가 K리그의 돌풍을 이끌었다. 그 어떤 전문가도 이들의 선전을 쉽사리 예상하지 못하였기에 리그 내내 순위권의 투톱을 유지한 이들의 성적은 그야말로 이변이었다. 그러나 부산과 인천에게는 좋은 성적을 거둘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전국구 스타 플레이어 한 명도 없는 평범한 선 수층, 최근 몇 년간이어 온 지독한 부진의 늪, 2005 컵대회 최하위 기록, 연고 팬들조차 외면하는 썰렁한 관중석, 그 누구도 부산의 우승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부산은 해 냈다. 선수들은 하나로 뭉쳐 강팀들을 하나씩 쓰러뜨렸고, 우승이 확정된 마지막 홈경기에서는 2만여 관중이 부르는 '부산갈매기'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부산 돌풍의 중심에는 자율성과 팀워크를 중심으로 철벽의 4-4-2를 부산에 뿌리내린 '황소고집', 포터필드 감독이 있었다.
2003년 김호곤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아 부산의 지휘봉을 잡게 된 포터필드감독, 그는 몇 년간 이어질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팀을 꾸려갔지만 단기적으로 잃은 것이 너무 많았다. 우선 로얄즈의 황금기를 기억하던 팬들에게 하위권에 추락해서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팀의 성적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팬들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고 크나큰 아시아드 경기장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의 관중들만이 찾아 줄 뿐이었다. 급기야 지난 시즌에서는 써포터즈의 사퇴 압력에까지 시달리며 심한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다.
[출처-부산아이파크홈페이지]
그러나 구단 운영진의 든든한 신뢰가 그에게는 큰 힘이었다. 많은 외압에도 불구하고 정몽규 구단주를 중심으로 한 구단 운영진은 포터필드에게 힘을 실어 주었고 그 결실은 지난해 FA컵 우승으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록 올 시즌 컵 대회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며 컵대회 우승이 그야말로 '반짝 돌풍 이 아니었냐?'라는 의문을 가지게도 만들었지만 그 이면에서는 포터필드 감독의 '선택과 집중'의 전술이 있었다.
컵대회에서 지지부진한 사이 FA컵 우승팀 자격으로 출전한 AFC챔피언스리그에서 부산은 조별예선에서 연전연승을 기록하며 8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선수가용자원이 부족한 포터필드 감독으로서는 컵대회를 포기하는 대신 AFC에 집중을 하며 팀 전력을 다졌고 정규리그가 시작되자 부산은 컵대회때랑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다.
전기리그 10경기를 치르는 동안 7승3무의 무패행진, 사실상 이 때 부산의 우승은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12라운드에서 서울에 패하며 전승우승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마지막 대전 경기를 무승부로 장식하며 끝내 전기리그 패권을 잡을 수 있었다.
시즌 중반까지 인천이 보여준 파란은 그야말로 경악스러웠다. 컵대회 막판부터 이어진 인천의 상승세는 정규리그가 들어서자 그 정점에 다다랐다. 라돈치치, 방승환, 셀미르, 아기치, 마니산이 이끄는 공격진은 어김없이 상대의 골문을 뒤흔들어 놓았고 이정수-김학철-임중용의 수비진은 너무나도 튼튼했다.
어느 상대를 만나더라도 두려움이 없었고 선수들의 자신감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구심점은 바로 장외룡 감독이었다. 일본에서 체계적인 지도자 교육을 받으며 공부하는 지도자로 유명한 장외룡 감독은 철저한 분석과 선수들과 하나 되는 인간미를 바탕으로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데 성공했다. 경기 중 장외룡 감독은 벤치가 아닌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같이 호흡했고 그들의 의지를 북돋웠다.
[출처-인천유나이티드홈페이지]
인천의 돌풍이 의미 깊은 것은 많은 팬들이 그 돌풍에 함께 참여했다는 점이다. 홈경기마다 2만 명이 넘는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인천'을 외쳤고 그랬기에 선수들의 사기는 더 높아질 수 있었다. 이 배경에는 구단이 시와 협력하여 실시한 적극적인 마케팅이 있었다. 경기마다 특정 지역 주민을 무료로 초대하는가 하면 레플리카 구매 고객에게 입장료 할인, 관공서를 이용한 홍보 등 시민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 그 어떤 다른 구단보다 빛났던 인천이었다.
전기리그 12경기에서 8번의 홈경기를 치렀다는 점도 인천돌풍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후기리그 때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육상대회 때문에 인천은 전기리그 때 홈에서 많은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뜨거운 홈팬들의 응원을 안고 더 많은 경기를 뛸 수 있었기에 인천의 돌풍은 가능했다.
리그 중반 라돈치치를 비롯한 몇몇 주요선수들의 공백이 생기면서 아쉽게도 인천은 엷은 선수층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며 선두를 부산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그러나 마지막 경기까지 최선을 다했고 부산에 승점 1점이 뒤진 2위를 차지하면서 후기리그에 대한 희망도 밝혀 놓았다. 팬들과 함께한 돌풍을 이끈 인천이 후기리그에서 과연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반면, 부산과 인천의 선전에 정 반대로 대비되는 팀이 있으니 바로 수원이다. 지난해 차범근 감독을 영입하며 리그 패권을 차지한 뒤 끊임없는 선수보강으로 '레알'의 칭호까지 얻었던 수원이다. 올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A3대회, 슈퍼컵, 하우젠컵대회를 잇따라 재패하며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었다.
그러나 5월 20일 첼시와 펼친 무리한 평가전 이후 역효과 그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5월 25일 수원이 올 시즌 최대 목표로 세웠던 AFC챔피언스리그에서 어이없는 탈락을 한 것이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무리한 경기일정으로 선수단은 부상병동으로 바뀌어 있었고 AFC탈락과 함께 목표의식 상실로 팀의 분위기는 끝없이 저하되었다. 7라운드 경기인 6월18일 전북 전이 리그 첫 번째 승리였고 홈경기 첫 승은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야 맛볼 수 있었다.
끝없는 추락을 거듭한 '날개 꺾인 푸른 군단' 수원이 받아들인 성적표는 3승5무4패 9위. 팀이 하염없이 무너지는 동안 레알의 칭호는 이미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고 스타군단의 면모도 잃어버렸다. 일부 써포터즈는 '차범근식 축구'에 직접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서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나마 전기리그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수원이 기록한 전기리그의 승점으로는 후기리그 우승이 아닌 이상 플레이오프 진출이 힘들다. 과연 후기리그에서는 무너진 수원이 부활의 화려한 날갯짓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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