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배우 배정남이 '영웅', 자신의 반려견 벨과 함께 하며 남다른 마음을 느꼈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봤다.
배정남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 인터뷰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 영화다.
'영웅'에서 배정남은 독립군 최고 명사수 조도선을 연기했다. 조도선은 백발백중의 사격 실력을 갖춘 독립군 최고의 명사수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위기의 순간마다 한 치의 오차 없는 저격 솜씨로 독립군 동지들을 구해내고, 안중근의 거사 계획에 동참하며 제 손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것을 자신한다. 거사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우덕순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의 여정의 중간 지점인 채가구역에서 잠복한다.
윤제균 감독은 앞서 '영웅'의 조도선 역에 배정남을 캐스팅한 배경을 전하며 "배역과 이미지도 매우 잘 맞고 연기력도 훌륭해서 너무 만족스러웠다"라고 배정남을 향한 믿음을 전한 바 있다.
개봉 5주차를 맞은 '영웅'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 배정남은 "윤제균 감독님이 불러주셔서 함께 하게 됐다. 나오는 신도 전혀 따지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명장과 '영웅'이 만났는데 제 모습이 한 신이라도 나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영광인 것인가. 집에 와서 시나리오를 다시 보니 정말 뜨거워지더라"고 벅찬 표정을 지었다.
모델로 시작해 현재 배우 활동을 하기까지, 끝없는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고민의 시간을 거쳐 오며 몸으로 늘 부딪혀왔던 배정남은 "캐릭터적인 면에서는 사실 비슷비슷한 역할들이 많이 오다 보니까, 어떤 부분에서는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연기는 시작도 안했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선을 넘어버리면 그것도 부담스럽지 않나. 저도 제 주제를 안다"고 넉살을 부렸다.
이어 "그런데 그 선을 윤제균 감독님께서 '배정남이 이런 역할도 할 수 있네'라고 만들어주셨다. 기존 작품에서 보여드렸던 모습도 남아있되, 그 선을 또 대중이 보기에 불편하지 않고 낯설지 않게 잘 넘겨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 이제 마흔 살(1983년 생)이 됐는데, 이제야 어디 가서 '배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눈을 빛냈다.
'영웅'을 통해 20년 전 모델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자신의 모습을 많이 떠올렸다고 말한 배정남은 "런웨이에 서봐야 진정으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에 '영웅'을 통해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느끼면서) 이제는 배우라고 할 수 있겠다 싶더라. 얼마나 행복한가. 나이 마흔 살에 다시 무엇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진심을 꾹꾹 눌러담아 말을 이었다.
또 "모델 일을 할 때 풍파도 많았고, 힘든 일도 있었다. 런웨이에 서기까지 쉽지 않았다. 뜨고 지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보며 자랐겠나. 길게 오래 하는 사람이 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웅'을 하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참 재밌더라. 인생은 마흔부터인 것 같다는 말이 이제야 진짜 무슨 의미인 줄 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진 반려견 벨 이야기도 전했다. 앞서 배정남은 지난해 8월 반려견 벨이 급성 목 디스크로 인해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자신의 SNS를 통해 재활 중인 벨의 근황을 전했고, 이에 많은 누리꾼이 벨의 쾌유를 기원하며 아낌없는 응원을 전하기도 했다.
배정남은 "우리 개가 아프면서, 제 인생을 싹 돌아보게 되더라. 진짜 작은 것에도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낀다"고 얘기하며 "지금 벨은 휠체어에 타면 걸을 수 있긴 하다. 혼자서 서지는 못한다. 아직까지 대소변은 제가 받아줘야 하는데, 수술을 해주신 수의사 선생님도 진짜 이 정도 상태까지 될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라더라. 살아만 있어줘도 고맙고, 이런 것이라도 해줄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고 마음을 털어놓았다.
"벨이 아픈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완전히 멘탈이 무너졌었다"고 말을 이은 배정남은 "벨이 정신은 멀쩡하다. 어떻게 보면 이 녀석이 제게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벨이 한 번에 떠났으면 제 멘탈이 더 무너졌을텐데, 자기가 떠나면 내가 혼자 남게 되는 것 아닌가. 제가 최선을 다 할 수 있게, 후회가 없도록 그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 같다"고 담담하게 전했다.
SNS 등으로 전해진 대중의 응원에도 "정말 감사했다. 우리 개가 인복이 많다. 잘 이겨내고 있다"며 "지금은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벨 덕분에 책임감과 안정감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벨이 열 살이 됐는데, 제가 9년 동안 사랑을 받은 것이지 않나. 벨이 살아있을 때까지는 제가 받았던 사랑을 다 돌려주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요즘에는 집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게 사람의 인생이 바뀌더라. 벨 재활을 위해서 용인에 출퇴근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애매한 곳에 에너지를 쓰면 안돼서 일과 재활에만 딱 올인하려고 하는 중이다"라고 밝혔다.
배정남은 "20년 전을 떠올리면 그 때와 지금의 제 마음가짐은 천지차이다. 그 때는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성공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강박이 너무 컸었다. 20년 간 많은 일을 겪으면서 여유가 좀 생겼다. 욕심은 있되, 인내하고 기다릴 줄 아는 그런 여유가 생긴 것이다. 연기를 잠깐 하고 그만 둘 것이 아니니까, 길게 바라보려고 한다. 지금의 40대를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거듭 마음을 전했다.
'영웅'은 지난 달 21일 개봉해 꾸준히 상영 중이다.
사진 = CJ ENM, 배정남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