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30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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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신청이 두렵다

기사입력 2005.02.12 10:52 / 기사수정 2005.02.12 10:52

윤욱재 기자


1998년 12월 29일.


한국프로야구에 FA 제도 도입이 합의된 기념비적인 날이다.


규약이 명시될 당시 FA 자격을 얻기 위해선 여러 절차를 거쳐야하는 불편함도 지적됐지만 그땐 FA 제도가 생겼다는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기에 1년 뒤 터질 시한폭탄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짐작은 했어도 당시 분위기에 휩쓸렸을 가능성도 크다.)


FA 제도에 큰 관심을 보였던 팬들은 1년 후 선수들의 권리 행사와 구단들의 전력보강이 한꺼번에 이뤄지는 다채롭고 뜻깊은 스토브리그가 만들어지길 기대했다.


99시즌이 끝나고 어김없이 찾아 온 스토브리그. 과연 어떤 선수들이 FA로 팀을 옮기고 또 어떤 대우를 받을 것인가에 관해 시선이 집중됐다. 그땐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이 마냥 부러워보였고 한편으론 그동안 흘린 땀에 대한 보상이었기에 열심히 뛴 FA 자격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줬다.


그런데 웬걸. 한 곳에선 푸른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두 남자가 카메라를 향해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반면 다른 곳에선 역시 두 남자가 침울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전자는 FA 대박의 주인공 이강철과 김동수이고 후자는 FA 신청서를 제출했다가 구단에 미운털만 박힌 송유석과 김정수다.


물론 이강철과 김동수는 한화의 송진우 등과 함께 FA 최대어로 꼽혔고 비록 최대어는 아니어도 송유석, 김정수 등은 준척급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들이 받는 대우는 극명하게 엇갈렸으니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준척급 선수들은 대박은 아니더라도 적당한 대우를 기대했지만 주위는 너무도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역시 의문은 쉽게 풀렸다. FA 제도 규정을 살펴보면 타팀에서 FA 선수를 데려올 경우 전년도 연봉의 150%를 지급하고 보상선수 1명을 내준다는 기상천외한 조건이 자리 잡고 있었다.


누가 이런 규정을 만들었는지 굳이 탓할 생각은 없으나 최소한 자신이 선수의 입장이 되어 10년간 쏟은 굵은 땀방울이 허사로 돌아가는 상황이 온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이런 규정을 만들 수 있었는지 묻고 싶다.


결국 새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 송유석은 울며 겨자 먹기로 LG와 재계약한 뒤 한화로 쫓기듯 트레이드 되었고 김정수는 신생팀 SK의 배려로 선수 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다.


이런 FA 규정을 만든 주동자들이자 전년도 성적에 얽매이고 준척급 선수들의 활용 가치에 의문을 품었던 구단 고위층들이 만든 한 편의 쇼였다. 이렇다보니 해마다 희생자는 증가해갔고 결국 지난해는 세 선수나 피해자가 되었다.


불과 5년 전 화려한 입단식과 함께 대박의 길을 열어 준 최대어였던 김동수는 어느덧 흐른 세월 탓에 준척급 선수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최기문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롯데가 관심을 보였지만 까다로운 보상제도 때문에 등을 돌리자 하는 수 없이 원소속팀 현대로 돌아가야 했다.


역시 준척급 내야수 김태균도 야심차게 FA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보상제도란 발목에 묶였고 같이 신청서를 냈던 조원우도 마찬가지였다.


구단들의 입장은 이랬다. 나이가 많은 노장 선수들에게 많은 금액을 투자하긴 힘들 뿐더러 보상으로 인한 출혈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준척급을 포기한 구단 관계자들은 FA 제도의 주요 규정을 만들고 수정해왔던 장본인들이었으니까. 자기 꾀에 자기가 걸린 셈이었다.


보강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선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한 지금이다. 

언제까지 A급 선수들만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비록 기록상으론 차이가 있지만 이들이 흘린 땀방울은 모두 값어치가 있다. 그렇다고 로스터에서 자리를 못 잡을 정도의 기량을 가진 것도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병풍 때문에 생긴 공백을 하나라도 더 메워야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필자는 절대 이들을 B급 선수라 부르지 않는다. 이들은 화려하진 않아도 분명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소금 같은 존재들이다. 자기 역할만 할 수 있다면 굳이 A급, B급으로 나눌 필요가 없다. 다 각자 할 수 있는 야구가 있는 거고 자기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그게 팀을 위한 야구고 그래야 팀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


이제 말도 안 되는 보상 제도에서 벗어나 소박한 꿈을 가진 준척급 선수들이 자유롭게 팀을 옮길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기다린다. 이것이 실현되면 우리가 흔히 부르는 'FA 먹튀'가 줄어드는데도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또 현실에 맞지 않게 껑충 뛰어오른 몸값 인플레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비스타 선수들의 의욕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특히 야구란 스포츠는 한 두 사람만 잘한다고 해서 되지 않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수한 성적은 아니더라도 항상 꾸준한 모습으로 후배들의 귀감을 사는 선수들, 불펜에서 뼈 빠지게 던지는 선수들, 고비마다 한방 터뜨려주던 대타요원들, 번트 하나는 기가 막히게 대주던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보상제도 수정은 반드시 이뤄져야한다.


왜 이들이 FA 신청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선수들의 권리를 되찾자는 취지로 탄생한 FA 제도가 아닌가. 만일 이대로 KBO와 구단 고위층들이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팬들도 자연스레 외면하게 될 것이다.


기형적인 FA 제도가 팬들을 외면시킬 수 있다?


물론이다. 팬들은 한 선수의 작은 이동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서로의 이득을 따지기도 하고 심지어 앞으로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전망과 분석의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트레이드가 줄어든 현실 때문에 FA 선수 이동이 비시즌의 유일한 즐길거리가 되었다. 이젠 팬들의 관심사로 자리 잡은 FA가 기형적인 제도적 문제 때문에 비현실적인 대박 계약과 준척급 선수들에 대한 외면이 이어진다면 팬들도 자연스레 흥미를 잃게 될 것이다.


과연 올시즌 후에도 지난해와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될까? FA 신청서 내기가 점점 두려워지고 있는 요즘이다.



(다음 기회에 구체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 말을 꺼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 각 구단 홈페이지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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