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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칼럼] 매니 라미레스의 여유 혹은 태만.

기사입력 2007.10.21 03:40 / 기사수정 2007.10.21 03:40

조영준 기자

        


(사진 - 범타로 물러난 뒤, 휘파람을 불며 벤치로 향하는 매니 라미레스)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지금 미국 현지에서 야구와 관련된 이슈 중 가장 크게 보도되는 것은 ALCS의 결과보다 뉴욕 양키스의 감독이며 한 시대를 풍미한 명장으로 불리는 조 토레 감독의 재계약 불발 건이다. 양키스 감독으로 부임한 뒤 그는 96년에 첫 번째 월드시리즈를 제패하였고 98~2000년까지 3연속 우승을 이끌어낸 업적을 가지고 있다. 

이번 2007 디비전시리즈에서 보인 그의 선수기용 타이밍과 적절치 못한 작전구사는 뉴욕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고 급기야 팀이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자 구단주인 조지 스타인브래너는 재계약건은 힘들다며 토레 감독과의 결별을 예고하였다. 그리고 대폭 삭감한 연봉 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자존심을 지킨 조 토레의 향후거취와 제국 양키스의 새 사령탑에 대한 관심이 모든 언론들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렇게 양키스의 거취에 대해서 기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현재 진행 중인 ALCS에 다시금 집중시킨 인물이 있다. 바로 보스턴 레드삭스의 간판타자인 매니 라미레스이다. 언제나 묵묵히 자신이 할 몫을 하며 꾸준히 활약해 주는 선수로 알려졌지만 가끔 구단과 보스턴 지역 팬들의 귀를 쫑긋시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매니의 전매특허이다.

매니가 그리 순탄하지 않게 구단과 지역 팬들과 지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언론과 세인들에게 비호감으로 비쳐진 인물은 절대로 아니다. 넉살좋고 유머까지 겸비한 팀 동료인 데이비드 오티스처럼 팬들의 지대한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골수 보스턴 팬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매니를 지지하고 있으며 여러 번 팀과 헤어질 순간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가 레드삭스 선수인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팬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가 승부욕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굳은 결의나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경기가 진행 중인데도 펜웨이파크의 그린 몬스터에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다가 홈팬들이 매니!!를 연호한 후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고 경기에 임한 유명한 일화나 경기 시작이 코앞에 닥쳐왔는데도 경기장에 늦게 도착했던 사연은 그의 지나치도록 느긋한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기본적으로 스포츠맨은 강한 승부욕을 필수적으로 가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지기를 싫어하는 승부 근성이 있어야만 실전에 임해서라도 매순간마다 집중력을 잃지 않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니는 절대로 이러한 유형의 선수가 아니다. 야구 자체를 즐기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매 경기마다 이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자신의 플레이로 보여줄 때도 있다.

 


  (사진 - 문제가 됐던 4차전에서 보인 홈런 세레모니)

그러면 매니가 과연 게으른 천재, 혹은 배부른 스타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NO!라고 부정한다. 그런데 19일 벌어졌던 ALCS 챔피언십에서 그가 경기를 앞두고 문제를 야기했던 발언은 순식간에 스포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기사로 번져나갔다.

"It doesn't happen, so who cares? There's always next year. It's not like it's the end of the world."

즉, 레드삭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해도 세상에 종말이 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 내년에도 기회는 찾아올 것인데 이번의 실패가 무슨 큰 상관이 있느냐는 것.

팀의 주축 선수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다. 보스턴의 사장인 래리 루치노는 그런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매니 라미레스의 장점이라고 대답하였으나 100% 진담으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미지수로 보인다.

다만, 루치노 사장뿐만이 아닌 팀의 관계자들이 매니의 이러한 태도를 긍정적인 쪽으로 대답해 주는 것은 그의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만약 포스트시즌과 같은 중요한 승부처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하거나 현역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뉴욕 양키스의 A-로드처럼 포스트시즌 중에 빈타로 허덕인다면 매니를 향한 비난은 A-로드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니의 이런 태도가 항상 변호되고 있는 것은 그가 정말로 중요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을 기필코 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면은 A-로드와 매니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가 지금까지 출전한 포스트시즌에서 때려낸 홈런은 무려 24개에 달한다. 이것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존재한 어느 위대한 플레이어도 이룩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도 0.458리의 폭발적인 방망이 실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앞선 타자인 오티스효과까지 받아 그 위세는 더욱 위력적이다.

아무리 보스턴이 아닌 타 팀들 중에 강타자들이 즐비한 타선이 존재한다고 해도, 매니 라미레스와 데이비드 오티스의 콤비를 능가할만한 타격라인은 빅 리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 두 타자의 최대강점은 바로 최고의 클러치 능력을 지녔다는데 있다. 들어선 타석에서 모든 것을 집중시키고 자신이 노린 볼을 골라내 결정적인 안타나 홈런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런 집중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평소부터 서두르지 않고 부상 시에 허슬 플레이를 자제했던 매니는 자신이 정규시즌에서 보여줬던 부진을 비웃듯이 포스트시즌에 들어와서 놀라운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평소에 여유를 부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로 필요한 시점에 오면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한다는 것. 지금까지 매니가 성공적인 선수로 남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에 여기에 있었다.

 


 (사진 - 현역 MLB 최고의 3, 4번 듀오 라미레스와 오티스) 

ALCS 5차전에서 펜스 상단을 맞고 나온 타구는 누구든지 2루타로 만들 수 있었던 타구였다. 하지만 매니는 그 타구가 홈런인 줄 알고 터벅터벅 느린 속도로 뛰어가다가 끝내 단타로 만들어 버렸다. 야구 기초에 명시 되어 있는 배트로 쳐내면 그 타구가 어떻게 처리되던지 간에 개의치 말고 전력 질주하라는 기본 중의 기본은 매니에겐 예외인 항목이었다.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영원한 휴스턴맨’ 크레이그 비지오는 바로 어느 상황에서도 몸을 던진 허슬 플레이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매니는 여유를 추구하며 자신이 할 몫을 다해주는 방법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언제나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기는 매니이지만 그가 결코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게으른 플레이어는 아니다. 이러한 명제는 그가 기록한 포스트시즌의 놀라운 수치를 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2007 정규시즌에서는 부진했지만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보면 대단한 타점 기록을 가지고 있고 팀의 중심타자로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A-로드보다 더 뛰어난 타격기술을 가진 것이 매니 라미레스라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정규리그 MVP를 수상한 이력이 없다는 점이다. 언제나 MVP 후보로는 거론됐지만 항상 2%가 부족했던 매니 라미레스. 만약 그가 특유의 여유로움을 줄이고 자신의 기량을 한껏 살려 좀더 치고 나갔다면 A-로드나 LA 에인절스의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제치고 아메리칸리그 MVP에 오르는 일도 생겼을 것이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그가 경기장에서 보이는 어슬렁거림이 여유일 수도 있고 태만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포스트시즌에서의 매니는 정말로 무서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홈런성 타구가 안타로 처리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긴 장타로 1루밖에 가지 못한 것은 선수의 태도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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