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배우 박해일이 '헤어질 결심'으로 박찬욱 감독과 처음으로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며 느낀 마음을 밝혔다.
박해일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영화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 인터뷰에서 영화와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장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송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지난 달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비가 내리는 오후, 밝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박해일은 "제가 저희 영화 개봉일 날씨도 찾아봤었다. 영화 속에 안개라는 설정이 있다 보니까, 정서적으로 관객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면서 상영관 안으로 안내해드리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한 가지를 미리 안고 들어가는 느낌이다"라고 웃으면서 "제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영화만 세 작품 촬영을 하고 있었고, 이렇게 매체들과 늘 인터뷰하던 이 곳에도 3년 만에 오게 됐다. 이제 좀 일을 하는 느낌이다. 경쾌하게 해보려고 한다"며 밝은 기운을 전했다.
박해일은 '헤어질 결심'을 통해 필모그래피 사상 처음으로 형사 캐릭터 연기에 도전했다. 해준은 항상 본분에 충실하며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가진 형사로, 시경 사상 최연소로 경감의 직위에 오를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다. 늘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청결에 신경 쓰며, 예의 바르고 친절한 성격이지만 무엇보다 범인을 잡는 것에 최선과 진심을 다하는 인물이다. 박찬욱 감독은 "처음부터 박해일을 놓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하며 '섬세하고 깔끔한 인물'로 캐릭터를 설명한 바 있다.
'헤어질 결심'을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라고 표현했던 박찬욱 감독과의 이야기를 떠올린 박해일은 "이 작품은 수사극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가 잘 녹아들어간 멜로와 로맨스 사이에 박찬욱 감독님의 색깔이 화학 작용을 잘 일으킨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연기한 해준은 서래에 대한 진심도 있지만, 그녀에 대한 의심을 가져야 하는 입장이지 않나. 가짜 마음도 드러내면서 진심을 알아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에둘러서 간접적으로도 표현해보는 그런 톤으로 연기해보려 했다"고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과는 그간 같은 영화인으로서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지만, 한 작품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해일은 "감독님을 만나뵌 자리에서 캐릭터와 이야기에 대해 한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들었다. 화장실도 안 가시고 얘기를 하셔서 귀담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들으면서 '이 안에서 선택을 하라는 이야기인가?' 싶기도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그렇게 '어른들의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다'라는, 세세하지는 않지만 짧은 문장을 하나 건네셨다. 또 형사 캐릭터인데 그 형사는 우리가 한국영화에서 자주 접해왔던 기존 형사 캐릭터와는 다를 것이라고 하셔서 그런 부분들이 궁금했었고 거기서 일단 호기심이 크게 발동했었다"고 얘기했다.
박해일은 "저라는 소재가 감독님에게 어떤 방식으로 쓰여질지가 제일 기대가 됐고 걱정도 됐다. 특히 이번에는 감독님이 배우 분들을 먼저 캐스팅하시고 나서 시나리오를 완성하시는 방식을 택하셨는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배우의 성질들을 감독님이 더 많이 흡수해주시고 감독님의 세계에 좀 더 활용해주셨던 부분들이 컸던 것 같아서, 저는 이번 작업이 그렇게 더 고마울 수가 없었다. 제가 하는 연기를 많이 지지해주셨다는 것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볼 수 있던 장이었다"고 돌아봤다.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을 하게 된다고 했을 때 (작품의) 수위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라는 물음에 "수위라면?"이라고 한 번 되물은 박해일은 이내 "긴장했죠"라고 쑥스럽게 웃으며 "그런데 그 수위에 대해 감독님께 직접 물어보면 또 가벼워보이는 것 같고, '알아서 해주시겠지'라고 생각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서, 호기심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답을 이었다.
탕웨이와 함께 만들어 낸 미묘한 호흡의 감정들의 표현은 이번 작품에서 박해일이 가장 많이 신경쓰고 또 집중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박해일은 "탕웨이 씨를 보니 카메라 앞에서나 카메라 밖에서의 모습이 자연인과 배우로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 저는 또 고맙기도 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송서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카메라에 또 자연스럽게 찍히고 있더라.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 기대와 예상을 해볼 수 있는 지점들이 있어서, 장해준의 입장에서는 송서래를 만날 때마다 그런 부분들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얻어갈 수 있는 부분들도 있어서 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얘기했다.
또 극 중에서 송서래와 마주앉아 심문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 박해일은 "제가 그런 밀폐된 공간을 좋아하나보다. 아니면 그간 용의자 역할을 많이 하다가 형사가 돼서 호기심이 강해지고 재밌게 해보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고 미소를 보이며 "탕웨이와 그 공간에서 같이 연기를 할 때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미세한 눈빛, 호흡, 말투까지 가까운 거리에서 주고받은 감정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고 떠올렸다.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탕웨이를 위해 한국어 대사를 녹음해주기도 하는 등 파트너로서 아낌 없는 배려를 펼친 박해일은 "수월하게, 차근차근 소통을 해나갔다"며 겸손하게 말을 이었다.
2000년 연극 '청춘예찬'으로 데뷔 이후 2022년 현재까지, 선과 악을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대중의 곁에 함께 해 온 박해일은 "최근까지도, 어떤 분들은 저를 보면 ''살인의 추억' 범인이죠?'라고 물어보기도 하더라. 어마어마한 좋은 관심이지만, (배우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새로운 작품을 계기로 또 다른 캐릭터들을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에 마음이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어 "박찬욱 감독님이 만든 작품 세계 안에서 감정을 드러내고 또 숨기고, 그렇게 대사를 해보고 느끼다 보면 저라는 배우 역시 성숙해지는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앞으로 제가 연기를 해나가며 다양한 결의 인물들을 만나는 데 있어서 유연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진짜 용의자의 이미지를 탈피하는구나 싶기도 하다"며 다시 한 번 넉살을 부렸다.
2019년 2020년 칸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이었던 '헤븐: 행복의 나라로' 촬영을 마쳤고,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이었던 2020년 7월 개봉을 앞둔 '한산: 용의 출현'촬영을 마쳤다. 이후 '헤어질 결심'까지, 묵묵히 꾸준히 촬영의 여정을 이어왔던 박해일은 "제가 하던 일이 관객 분들을 만나던 일인데, 그걸 못하다가 이렇게 만나게 되니까 너무나 반갑더라. 다시 재기한 느낌이 들 정도다"라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즐기자는 마음이다"라고 유독 더 분주해질 여름을 맞이하는 마음을 전했다.
'헤어질 결심'은 29일 개봉한다.
사진 = CJ ENM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