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4 23:47
스포츠

[아시안컵 결산] '걸프'축구의 몰락과 중동축구의 판도변화

기사입력 2011.01.31 08:25 / 기사수정 2011.01.31 08:29

윤인섭 기자

 

[엑스포츠뉴스=윤인섭 기자] 우승 일본, 준우승 호주, 3위 한국, 4위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 아시아 축구의 양대 산맥이던 중동 축구가 완전히 몰락했다.
 
15차례의 아시안컵 역사에서 9차례의 우승컵을 가져간 중동축구가 4강에서 전멸한 것은 이번 대회가 처음이다. 특히, 중동 대 非 중동으로 나뉘었던 이번 대회 8강전은 중동 축구가 더는 아시아 축구의 맹주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 증거였다.
 
홈팀 카타르는 대회 우승팀 일본을 상대로 수적 우세 상황에서 두 골을 내주는 실망스런 경기력으로 2-3 역전패를 당했고 돌풍의 요르단은 우즈벡에 1-2로 패하며 자신들의 한계를 절감했다. 이란과 이라크도 연장 혈투를 벌였지만, 한국과 호주에 0-1로 패하며 중동 축구의 마지막 희망을 저버렸다.
 
그러나 이번 대회의 중동 축구를 바라보며, 단순히 '몰락'이란 키워드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요르단과 시리아의 돌풍이 너무나 아쉽다. 페르시아만 산유국의 '석유축구'에 밀려 중동 축구의 2류국가로 밀려난 두 나라는 이번 대회에서 엄청난 투지를 불사르며 자신들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엄밀히 말하자면, '몰락'과 '위기'라는 팻말은 중동 축구 전체가 아닌 페르시아만의 부유한 산유국들이 짊어져야 할 자신들의 축구 문화에 대한 일종의 '엄중한 경고'이다. 이란과 이라크 역시, 끈끈한 축구로 8강에서 한국과 호주라는 아시아 최강을 상대로 자신들의 경쟁력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 본선진출 전멸에 이어 중동 축구가 다시 한번 '참혹한 실패'를 맞이했지만, 요르단과 시리아의 약진으로 말미암은 중동축구의 판세변화 역시, 아시아 대륙에서 이들과 수많은 대결을 펼칠 우리가 반드시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걸프축구, 석유라는 양날의 검에 무너지다     
 
중동축구의 '상징'과도 같은 사우디아라비아는 조별리그 3전전패에 일본전 0-5 참패로 인도에 이어 이번 대회 두 번째로 낮은 순위를 기록하는 충격을 맛봤다. 그 밖에 쿠웨이트,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이하 UAE) 등 카타르를 제외한 페르시아만(일명 걸프지역)의 산유국 국가들이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석유'축구의 위력에 종지부를 찍었다.
 
비록 홈팀 카타르가 8강에 진출했지만, 후반 수적 우세상황에서 일본에 역전을 당함으로 '걸프축구'의 자존심 회복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1970년대 이후 아시아 축구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민 걸프지역 국가들은 '석유'로 인한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단기간 만에 아시아 축구의 강자로 우뚝 섰다. 셀 수 없이 많은 세계적 명장과 선수들을 데려와 자국리그의 질적 상승과 대표팀의 전력 상승을 동시에 이뤄냈다.
 
1980년대에는 쿠웨이트(1980)와 사우디아라비아(1984,88)가 아시안컵 우승을 독식하며 아시아 축구의 헤게모니를 완벽히 거머쥐었고 1994년 월드컵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16강에 진출하며 '석유축구'의 위력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그러나 '석유축구'의 위력은 2000년대 들어 급속히 쇠퇴했다. 한일월드컵으로 국제적 경쟁력을 획득한 한국과 일본은 선수들의 활발한 유럽 진출로 세계 축구의 흐름을 몸소 경험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지역의 국가들은 자국 선수들의 해외진출에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며 '안방 호랑이'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2002년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독일에 0-8로 무너진 것은 걸프축구와 세계 축구 사이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우크라이나에 0-4로 대패하는 망신을 당하며 오늘날 '걸프축구 몰락'의 징후를 드러냈다.
 
'석유'라는 축복과 그로 말미암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급속도로 아시아 축구의 정상을 차지했지만, 석유는 걸프지역의 축구에 축복만 내려준 것은 아니다.
 
석유로 말미암은 막대한 부는 자국리그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지만, 선수들의 높은 몸값은 자국 선수들에게 해외 진출의 꿈과 그로 말미암은 세계 축구와의 '육체적 소통기회'를 앗아갔다. 또한, 자국에서의 안락한 삶으로 목표의식이 사라진 선수들은 안일한 플레이로 투쟁심이 사라진 모습을 보였고, 이러한 선수들로 이루어진 대표팀은 위기 시,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래알 팀'으로 변질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걸프축구가 더는 아시아 레벨의 축구에서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적 감독의 영입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아래서 재능있는 선수들의 발굴과 우수 외국인 선수의 귀화정책으로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지만, 세계 축구와의 직접적 소통 부재와 선수들의 해이한 정신력을 갖고 걸프축구는 이제 동아시아와 호주 축구라는 아시아 新3강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추락은 걸프축구의 몰락에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었고 쿠웨이트는 조별리그 첫 경기, 중국전에서 어이없는 퇴장으로 경기를 내준 후에 분위기 반전에 실패하고 역시, 3전전패를 당했다. 그뿐만 아니다. UAE도 답답한 경기력으로 단 한 골도 놓지 못한 채 D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16개국 중, 최약체 인도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순위를 걸프축구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15위), 아시아 축구의 강호로 평가받던 쿠웨이트(14위), UAE(13위)가 차지한 것이다.
 
요르단과 시리아의 선전, 중동축구의 판도변화
 
요르단과 시리아의 선전은 우즈베키스탄의 4강 진출과 함께, 이번 대회 가장 의미 있는 변화에 손꼽힐 부분이다.
 
페르사아만의 반대쪽에 있는 요르단과 시리아는 '석유'가 가져다준 중동의 풍요로움에서 상당히 빗겨간 지역이다. 요르단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고, 시리아는 산유국의 지위는 갖고 있지만, 국가 경제가 석유수출에 의존할 정도는 못 된다.
 
축구적인 면에서도 양국은 그동안 걸프축구에 밀려 중동 축구의 2류로 취급받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엄청난 반전을 이뤄냈다. 결프지역의 '해이한 축구'와 상반되는 집념의 축구로 '석유축구'에 밀린 한을 완전히 털어버렸다.
 
요르단은 8강에 진출했고, 시리아는 아쉽게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쓴 잔'을 마셨지만, 두 팀은 조별리그에서 중동 축구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를 모두 물리쳤고 일본을 상대로 인상적인 경기를 펼쳐 자신들이 아시아 축구의 변방이 아님을 확실히 증명했다.
 
거의 모든 축구적 환경이 걸프지역과 상반된 결과이다. 비록 국가의 전폭적 투자가 축구에 이뤄질 정도로 양국에서 축구의 입지는 절대적이지만, 자국리그의 재정적 한계는 선수들에게 안락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결국, 양국의 선수들은 비록 중동지역에 치우치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뚜렷한 목표의식과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투쟁심을 기르게 되었다. 실제로, 양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집트 등 주변 유력리그의 주요 용병선수 공급처 역할을 하고 있다.
 
비단 진출이 중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요르단의 주축 공격수, 오다이 알-사이피(알키 라르나카)는 최근, 유럽에서 다크호스 역할을 톡톡히 하는 키프로스리그에서 뛰고 있고, 시리아는 센하립 말키(로케렌, 벨기에)와 루아이 창코(Aab, 데마크)라는 유럽 출신의 두 선수를 대표팀에 포함해 팀 전력을 상승시켰다.
 
말키는 벨기에 리그 득점왕경력(2007/08시즌 16골)을 갖춘 공격수이고 창코는 스웨덴 국가대표를 역임했다가 FIFA의 특별케이스로 시리아 대표팀에 합류했다.
 
이러한 해외 축구와의 적극적인 '소통'과 선수들의 파이팅 넘치는 투쟁심은 이번 대회에서 요르단과 시리아 축구가 전문가들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게 했다. 걸프지역의 팀들과 달리, 요르단과 시리아는 포기를 모르는 모습으로 대회에 임했고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자신들보다 한 수 위라 평가받는 팀들을 상당히 골치 아프게 했다.
 
'체질개선'이 절실한 걸프지역과 대비, 미래가 더 기대되는 양국의 잠재력은 더욱 고무적인 부분이다. 요르단은 20대 초반의 선수가 다수를 차지하는 젊은 팀인데, 이번 대회는 요르단의 젊은 선수들에게 무엇보다 좋은 경험이 되었다. 시리아는 스웨덴,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등 유럽 지역에 폭넓은 시리아 혈통의 선수가 폭넓게 분포되어 있어 보다 많은 재능의 대표팀 발탁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사진=8강전 일본에 패한 카타르 선수들(C) AFC 홈페이지]

윤인섭 기자 sports@xportsnews.com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

주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