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부산, 김현세 기자] "팀만 이기면 됩니다."
작년 7월 24일, 당시 롯데 자이언츠 주장 민병헌은 2주 동안 타율 0.136 OPS(출루율+장타율) 0.310으로 부진했다. 스스로 "2군에 가겠다"고 자처까지 했다. 하지만 그때 롯데는 민병헌이 필요했다. 민병헌은 이를 악물었다. 그날 고척 키움과 경기에 2-2로 비기고 있는 4회 초 무사 2, 3루에서 민병헌은 2루 주자였다. 그런데 정훈 단타 때 홈까지 뛰었다. 타이밍상 상대 송구가 더 빨라 보였다. 그런데도 악착 같이 뛰었고, 포수 태그를 피해서 손을 뻗었다. 세이프.
사실 민병헌은 몸이 좋지 않았다. 2019년에 뇌동맥류를 발견했는데, 그는 핑계라며 부인했지만 영향이 없지 않았다고도 평가받았다. 하지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주루와 수비가 돼야 타격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하더니 결국 온몸 불살라서 득점했다. 그러고 나서 5회 초 투수 카운트에 우전 안타까지 쳐 팀 승리를 도왔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시즌을 치른 민병헌은 더 높은 순위로 팀을 이끌지 못해 미안해했다. 그리고 이듬해 초 의사 소견에 따라 앓던 뇌동맥류를 수술받기로 결정했다. 민병헌은 "복귀 시기를 가늠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악바리'를 그리워했다. 민병헌은 올해 1월 22일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퓨처스 팀에 합류했다. 뼈나 근육 부상이 아니라서 일반적인 재활을 거치지 않다 보니 훈련 강도는 조절해야 했다.
롯데는 민병헌 빈자리를 메우려 했다. 1루수와 중견수를 함께 소화하는 정훈 외에도 가장 근접한 전력이라고 평가받던 김재유와 추재현, 신용수, 강로한 등이 후보로 거론됐다. 결과적으로는 적임자를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민병헌은 이중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는 후배에게 찾아 가거나 자신이 직접 부산 사직야구장에 찾아 가 조언을 건넸다. 직접 뛰지 못함에도 민병헌이 잠재적 경쟁자라고도 볼 수 있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더 건넨 이유는 "내가 없더라도 팀이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후배들이 자신의 몫까지 야구하는 동안 민병헌은 퓨처스 엔트리에 3개월여 만에 등록돼 4할 타율을 치며 복귀를 다짐했다. 그를 김해 롯데상동야구장에서 지켜 본 래리 서튼 감독은 '민병헌의 예상보다 이른 회복과 복귀는 의지로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 데에 "100% 그렇다"며 동의했다. 민병헌은 "1군에서 야구하는 게 그리워서 빨리 복귀하려 했다"며 웃더니 "팬 분들과 야구하는 게 제일 즐겁고 좋다. 그래서 복귀도 서둘렀다"고 했다.
돌아온 민병헌은 이제 주장도, 전 경기 출장이 가능한 선수도 아니지만 오히려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됐다. 서튼 감독은 "민병헌은 성공한 야구선수다. 커리어를 쌓겠다는 의지가 있다"며 "전사적이고 경쟁자로서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선수단도 잘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출장 빈도는 줄겠지만 근성은 더 늘었다. 그는 "나도 매주 6경기를 다 뛰지 못한다는 걸 안다. 출전 비중은 감독님께서 잘 배려해 주시기로 했다. 휴식일에는 '아예 푹 쉬면 좋겠다'는 뜻을 보이셨지만, 경기 후반에 중요한 상황이 온다면 수비와 주루에서는 나갈 수 있으니 완전히 미출장하는 거로는 못박지 말아 주시면 좋겠다고 요청드렸다"고 했다. 서튼 감독은 "민병헌으로부터 나오는 좋은 에너지가 팀에 잘 녹아들면 좋겠다"고 바랐다.
민병헌은 이제 많이 내려놨다. 개인적인 기록으로 더는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4타수 무안타를 치면 헬멧을 내리치거나 경기 마치고 특타를 칠 것 같다"며 웃었지만, 민병헌의 초점은 이제 더욱 더 팀으로 향한다. 그는 "이제는 결과만 따지지 않고 경기 내용과 팀 분위기에도 도움이 되겠다"며 "잘하려는 의욕이 너무 크면 오히려 성적이 떨어질 때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올라 왔으니 바꾸겠다. 공수교대 때부터 열심히 뛰어 다닐 거다. 상대 팀이 볼 때 '롯데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느끼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제는 나보다 팀만 이기면 된다"고 말한다.
kkachi@xportsnews.com / 사진=부산, 김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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