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5.17 19:23 / 기사수정 2007.05.17 19:23
[엑스포츠뉴스 = 김명석 기자] 역사상 처음으로 스페인의 두 팀이 맞붙은 UEFA컵 결승전. 비가 주룩 내리는 날씨였지만,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위치한 햄든 파크 관중석에서는 세비야와 에스파뇰 서포터들이 가득 메웠다.
디펜딩 챔피언 세비야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결승전까지 올라온 에스파뇰의 대결은 챔피언의 자리를 지켜내려는 쪽과, 19년만에 다시 찾아온 UEFA컵 우승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쪽의 맞대결인 만큼 두 팀 모두 우승컵에 대한 의지가 대단했다.
양팀 선발 라인업
세비야는 당초 예상되던 라인업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에스퀴데의 빈자리를 메울 것으로 예상되던 오시오 대신 푸에르타가 수비라인에 모습을 드러냈고, 대신 아드리아누가 선발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세비야는 푸에르타-드라구티노비치-하비 나바로-다니엘 알베스가 포백 라인을 구성했고, 아드리아누-마레스카-폴센-마르티가 미드필드 라인을, 그리고 파비우나와 카누테가 최전방에 포진했다. 골키퍼는 팔럽.
에스파뇰은 언론의 예상대로 선발 라인업을 구성됐다. 고르카 이라이소스가 골문을 지켰고 다비드 가르시아-토레혼-하르케-사발레타가 수비 명단에 올랐고, 리에라-모이세스-데 라 페냐-루페테가 미드필더로, 그리고 라울 타무도와 루이스 가르시아가 투톱을 형성했다. 물론 모이세스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데 라 페냐가 좀 더 공격적인 위치에서 플레이를 선보였다.
빠르게 진행된 전반 초반, 아드리아누가 첫 골을 쏘다
경기는 초반부터 빠르게 진행됐다. 양팀은 전반 초반부터 화끈한 축구를 선보였다.첫 포문을 연 쪽은 에스파뇰.
에스파뇰의 라울 타무도가 시작한지 1분 만에 경기 첫 번째 슈팅을 기록한데 이어 3분에는 세비야의 마레스카가 에스파뇰 수비진을 농락하며 슈팅을 날렸지만 아쉽게 빗나갔다.
카누테의 헤딩, 타무도의 슈팅 등 빠르게 공격을 주고 받던 전반 18분. 마침내 햄든 파크에 함성이 울려 퍼졌다. 첫 번째 골의 주인공은 왼쪽 윙어로 나선 아드리아누. 에스파뇰의 코너킥을 중간에 잡아낸 팔럽 골키퍼가 왼쪽으로 길게 던져 준 공이 아드리아누 앞쪽으로 떨어졌다.
아드리아누는 공을 끝까지 쫓아갔고, 에스파뇰 수비수의 태클을 피해 안쪽으로 파고들어 득점 찬스를 맞게 된다. 골키퍼와의 1:1 찬스에서 아드리아누는 가볍게 감아차며 첫 골을 터뜨렸다. 대접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리에라의 동점골,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아드리아누의 선취골로 잠시 세비야 쪽으로 분위기가 기우는가 싶더니 다시금 치열한 미드필더 공방전이 전개됐다. 세비야는 푸에르타의 오버래핑과 아드리아누를 이용해 주로 왼쪽으로 공격을 풀어나갔고, 에스파뇰 역시 리에라가 왼쪽 공간을 자주 열면서 왼쪽을 주 공격 루트로 삼았다.
치열한 미드필더 공방전이 진행되던 전반 28분,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왼쪽으로 공간을 벌려서 기회를 잡은 리에라가 좌측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온 뒤 오른발로 슈팅을 날렸다. 리에라를 마크하던 다니엘 알베스는 슬라이딩 태클로 리에라의 슈팅 기회를 저지하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공은 다니엘 알베스의 발끝에 맞고 살짝 튕겼다. 공의 궤도를 따라 몸을 날렸던 팔럽은 살짝 굴절된 공에 손을 뻗었지만 공은 팔럽의 손을 외면하고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1-1. 에스파뇰의 동점골.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간 이후에는 주도권은 세비야쪽으로 넘어갔다. 세비야는 양 날개를 넓게 벌리기보다는 주로 중앙에 치우쳐서 짧은 패스를 통해 공격을 풀어나갔고, 반대로 에스파뇰은 주로 역습을 주요 공격 형태로 잡아나갔다. 전반 39분, 에스파뇰의 역습 상황에서 라울 타무도의 중거리 슈팅은 팔럽의 선방에 막혔고, 전반 44분에는 아드리아누의 크로스를 받은 파비아누의 슈팅이 골대를 외면하는 등 양팀은 결정적인 공격을 주고 받으며 전반전을 마쳤다.
헤수스 나바스의 투입으로 되살아난 세비야의 우측 라인
하프타임 때 세비야는 마레스카를 빼고 헤수스 나바스를 투입시키며 승부수를 띄웠다. 헤수스 나바스는 우측 윙어로 기용되었고 풀백 다니엘 알베스와 더불어 세비야의 우측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다니엘 알베스는 다른 풀백들에 비해 많은 오버래핑을 통해 세비야의 공격에 힘을 불어 넣었다.
짧은 패스를 위주로 에스파뇰의 골문을 두드리던 세비야의 공세가 계속됐고 후반 9분, 다니엘 알베스의 패스를 받은 카누테의 발리킥이 고르카 이라이소스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이에 질세라 에스파뇰의 라울 타무도 역시 회심의 슈팅을 날렸지만 팔럽 골키퍼가 막아냈다. 공격이 잘 풀리지 않던 에스파뇰은 결국 루페테를 빼고 UEFA컵 득점1위 판디아니를 투입시키며 공격에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
판디아니가 투입되자마자 후반 12분, 리에라의 왼발 강슛이 팔럽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리에라의 왼발슈팅이 빠르게 포물선을 그리며 골문으로 날아갔고 팔럽 골키퍼는 몸을 날리며 공을 쳐 냈다. 팔럽이 쳐낸 공은 크로스바를 맞고 그대로 골라인 아웃됐다. 이 슈팅을 시작으로 에스파뇰은 다시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왔다.
모이세스의 퇴장, 어쩔 수 없는 에스파뇰의 선택
세비야가 케르자코프를 파비아누 대신 교체투입시킨 뒤, 에스파뇰에 재앙이 찾아왔다. 이미 전반에 경고를 받은 모이세스가 케르자코프에게 백태클을 하면서 재경고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한 것. 모이세스가 에스파뇰의 팀 전술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감안했을 때 에스파뇰로서는 최대 위기나 다름없었다. 결국, 에스파뇰은 모이세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라울 타무도를 빼고 라크루스를 투입시켜야만 했다. 판디아니가 홀로 최전방에 선 4-4-1포메이션으로 사실상 수비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에스파뇰은 더이상 공격에 비중을 둘 수가 없었고, 세비야 역시 세비야 나름대로 공격이 풀리지 않았다. 경기는 후반으로 갈수록 패스미스가 잦아 들었고, 전체적으로 루즈해져 갔다. 경기 초반 스피디했던 경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모이세스의 퇴장 이후 더욱더 공세를 펼친 세비야에게 몇 차례 기회가 찾아왔을 따름. 에스파뇰은 후반 종료 4분을 앞두고 미드필더의 핵심인 데 라 페냐를 빼고 요나타스를 투입시키며 사실상 공격보다는 수비에 더 치중하는 전술을 선택했다.
세비야, 카누테의 골로 우승컵을 눈앞에 두다
결국, 경기는 연장전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에스파뇰은 좀처럼 공격의 활로를 열지 못했고, 세비야가 경기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루즈하게 진행되던 경기는 연장전에서도 이어졌다. 세비야가 짧은 패스로 만들어낸, 혹은 풀백들의 활발한 오버래핑 등으로 만들어낸 찬스는 꼭 골대를 외면하고 말았다.
그러나 연장 전반이 끝나갈 무렵, 연신 두드리던 에스파뇰 골문이 드디어 열렸다. 교체투입됐던 헤수스 나바스가 우측에서 낮게 크로스해준 공을 달려들던 카누테가 밀어넣으며 팀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남은 시간은 단 15분. 세비야가 수적으로도 앞서고 있었던 까닭에 에스파뇰의 관중들은 침울해졌다. 에스파뇰 서포터로 보이는 한 노인의 울상이 된 얼굴이 클로즈업되기도 했다.
세비야, 5분을 버티지 못하고….
에스파뇰은 루이스 가르시아가 판디아니와 함께 최전방으로 올라서며 한점을 따라 붙기 위해 노력했지만 수적인 열세는 쉽사리 극복되지 못했다. 되려 세비야의 다니엘 알베스, 푸에르타 등에게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허용하는 등 전체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시간이 갈수록 세비야 서포터들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그러나 경기가 종료되기 5분 전인 연장 후반 25분, 이번엔 에스파뇰 서포터들의 목소리가 햄든 파크에 울려 퍼졌다. 데 라 페냐 대신 투입되었던 요나타스의 중거리 슈팅이 그대로 골망을 흔들어 버린 까닭이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역전이 되어버렸고 스코어는 2-2,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갔다. 모이세스의 퇴장 이후 수비적인 전술을 사용했던 에스파뇰로서는 천금 같은 동점골이었다.
잔인한 승부차기, 영웅이 된 팔럽
결국, 연장 후반마저 끝을 알리는 휘슬이 울려 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축구에서 가장 잔인하다는 승부차기. 오늘 많은 선방을 보여준 팔럽과 이라이소스는 승부차기를 앞두고 포옹을 하며 선전을 다짐했다. 선축은 세비야로 결정됐다.
세비야의 첫 번째 키커는 카누테. 카누테는 멀리서 달려와 가볍게 오른쪽 하단으로 밀어넣었다. 간발의 차로 이라이소스 골키퍼의 손을 피해갔다. 에스파뇰의 첫 번째 키커는 루이스 가르시아. 오늘 경기중에서 보여준 것이 없었던 까닭에 반드시 넣어야 했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킥을 하기 전 잠시 주춤거리며 팔럽 골키퍼의 움직임을 살피던 루이스 가르시아의 슈팅은 팔럽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버렸다. 세비야의 한 점차 리드.
두 번째 키커였던 드라구티노비치는 왼쪽 하단으로, 그리고 득점왕을 확정시킨 왈테르 판디아니는 우측 상단으로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2-1. 여전히 세비야가 한 점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양팀의 세 번째 키커가 나섰다.
세비야의 세 번째 키커는 오늘 우측풀백으로서 활발한 활동력을 보여준 다니엘 알베스. 그러나 다니엘 알베스의 슈팅은 그만 크로스바를 넘기고 말았다. 다니엘 알베스는 유니폼을 들어올리며 아쉬움을 달랬고, 에스파뇰 감독은 환호했다. 첫 번째 키커였던 루이스 가르시아의 실축을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에스파뇰의 세 번째 키커는 극적인 동점골의 주인공이었던 요나타스.
그러나 요나타스에게 두 번의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우측 하단으로 찬 요나타스의 슈팅을 팔럽 골키퍼는 완벽하게 막아냈다. 스코어는 여전히 2-1. 세비야의 네 번째 키커가 성공할 경우 에스파뇰은 절대적으로 불리해지는 상황이었다.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세비야의 네 번째 키커로는 푸에르타가 나섰다. 푸에르타는 침착하게 왼쪽으로 차 넣어 3-1, 두 점차로 벌리는 데 성공했다. 에스파뇰로서는 네 번째 키커가 성공시키지 못할 경우 그대로 패배하는 상황. 애석하게도 네 번째 키커였던 토레혼의 킥은 또 한번 팔럽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길고 긴 UEFA컵 결승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오늘 경기의 MVP, 단연 팔럽
오늘 경기의 MVP는 의심할 여지 없이 세비야 골키퍼 팔럽이다. 비록 두 점을 내주긴 했지만, 경기 중 보여준 여러 선방은 그 두 개의 실점을 만회하고도 남았다. 특히 승부차기에서 3번의 슈팅을 막아낸 것은 세비야 우승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후반 12분경 리에라의 왼발 강슛을 막아낸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리에라의 발에서 떠난 공은 빠른 속도로 세비야의 골문으로 향했고, 팔럽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공을 쳐 냈다. 팔럽의 손에 맞은 공은 크로스바를 한번 더 맞고서야 골 라인 아웃이 되었다. 팔럽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골문으로 빨려들어갔을 슈팅이었다.
경기 중 터져나온 팔럽의 선방들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승부차기에서 나온 선방들일 것이다. 루이스 가르시아, 요나타스, 토레혼의 슈팅을 팔럽은 완벽하게 읽었고, 또 깔끔하게 막아냈다. 그동안 세비야 공격진들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을 팔럽은 자신의 존재를 축구 팬들에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에스파뇰, 모이세스가 퇴장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에스파뇰로서는 모이세스의 퇴장이 가장 뼈아플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에스파뇰이 경기 막판에 동점을 만들어 승부차기까지 가기는 했지만, 만약 모이세스가 퇴장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경기는 어떻게 전개됐을는지 모를 일이다.
에스파뇰은 데 라 페냐와 모이세스를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다만 데 라 페냐는 보다 공격적인 위치에서 에스파뇰의 공격을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하고, 모이세스는 데 라 페냐의 뒤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했다. 상대의 공격을 끊고, 공격으로 바로 이어갈 수 있도록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모이세스가 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모이세스의 퇴장은 에스파뇰에게 수적인 열세뿐만이 아니라 전술적인 부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모이세스의 퇴장으로 인한 구멍은 결국 최전방 스트라이커였던 라울 타무도를 빼고 라크루스를 투입시킴으로써 메워야 했고, 이는 결국 에스파뇰을 공격이 아닌 수비에 치중해야 하는 전술로 바꾸어 버렸다. 모이세스가 에스파뇰 전술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또 모이세스의 퇴장 이후 에스파뇰의 전술이 얼마나 무기력하게 바뀌었는지 살펴본다면, 모이세스의 퇴장은 두고두고 에스파뇰에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UEFA컵 2연패의 의미
세비야는 지난해에 이어 UEFA컵 우승을 지켜냈다. 비록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지 못한 클럽들이 출전하는 대회이긴 하지만, 유럽대항전에서 2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도 세비야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비단 스페인 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제 유럽 내에서도 강호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굳혔다. 세비야가 올 시즌 보여주고 있는 것들만으로도 이제 유럽 어느 클럽이던지 세비야를 쉽게 볼 클럽은 없을 것이다.
'신흥강호'로서의 도약, 그리고 인정. 세비야가 UEFA컵 2연패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경기 종합
점유율 : 세비야 57% : 43% 에스파뇰
슈팅수 : 세비야 28 : 15 에스파뇰 (유효슈팅수 9 - 9)
코너킥 : 세비야 14 : 10 에스파뇰
오프사이드 : 세비야 4 : 0 에스파뇰
득점
1-0 ; 아드리아누, 전반 18분 (세비야)
1-1 ; 리에라, 전반 28분 (에스파뇰)
2-1 ; 카누테, 연장 전반 15분 (세비야)
2-2 ; 요나타스, 연장 후반 20분 (에스파뇰)
경고
파비아누, 카누테, 푸에르타 (이상 세비야), 모이세스 (에스파뇰)
퇴장
모이세스 (에스파뇰, 경고누적)
승부차기
1-0 ; 카누테, 성공 (세비야)
1-0 ; 루이스 가르시아, 실패 (에스파뇰)
2-0 ; 드라구티노비치, 성공 (세비야)
2-1 ; 판디아니, 성공 (에스파뇰)
2-1 ; 다니엘 알베스, 실패 (세비야)
2-1 ; 요나타스, 실패 (에스파뇰)
3-1 ; 푸에르타, 성공 (세비야)
3-1 ; 토레혼, 실패 (에스파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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