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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노트북] 김명민 "연기 본좌? 쥐구멍 들어가고 싶어요"

기사입력 2021.04.18 10:00 / 기사수정 2021.04.24 23:11


[낡은 노트북]에서는 그 동안 인터뷰 현장에서 만났던 배우들과의 대화 중 기사에 더 자세히 담지 못해 아쉬웠던, 하지만 기억 속에 쭉 남아있던 한 마디를 노트북 속 메모장에서 다시 꺼내 되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아휴, 이제 그만해요.(웃음) 제가 그 얘기 안 드렸었나요. 한 선배님이, 저한테 '본좌가 무슨 뜻이야? 사람들이 왜 너한테 본좌라 그러는 거야?' 물어보셨다고요. 저 정말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2017.06.08. '하루' 인터뷰 중)

결국은 이 코너를 통해 배우 김명민이 그렇게나 "그만 말해 달라"고 호소했던 '연기 본좌'라는 표현을 다시 쓰게 됐습니다. 김명민은 지난 14일 첫 방송을 시작한 JTBC 수목드라마 '로스쿨'로 2018년 출연한 '우리가 만난 기적' 이후 3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했죠.

'김명민'이라는 이름이 거론 될 때마다 '연기 본좌'라는 수식어가 뒤따르곤 하죠. '본좌'는 특정 분야에 뛰어난 능력이 있어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을 이르는 말로, 주로 온라인상에서 누리꾼이 자신을 높여 부를 때 쓰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연기에 있어서는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이들이 '연기 본좌'라고 불리곤 하죠.

'로스쿨'에서 검사 출신의 형법교수 양종훈 역으로 변신한 김명민은 특유의 냉철함이 돋보이는 묵직한 연기로 극을 이끌고 있습니다. '로스쿨'을 포함해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대중에게 깊이 각인돼있는 '불멸의 이순신'(2004)의 이순신, '하얀거탑'(2007)의 의사 장준혁, '베토벤 바이러스'(2008) 속 지휘자 강마에, '개과천선'(2014)의 변호사 김석주, '육룡이 나르샤'(2015)의 정도전 등 드라마 속에서 한 치의 빈틈이나 오차가 없었던 그의 연기만큼이나 대중은 그의 단정한 모습을 주로 만나왔죠.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꾸준히 활약 중이던 김명민을 2017년 6월, 영화 '하루' 개봉을 앞두고 마주했던 기억을 떠올려봤습니다.

'하루'에서 김명민은 딸의 사고가 무한 반복되는 지옥 같은 하루에 갇힌 남자 준영을 연기했습니다. 딸을 향한 절절한 부성애부터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에 괴로워하는 모습까지 현실감 있게 표현했죠.

언론시사회를 마친 다음 날, 라운드 인터뷰로 '하루' 이야기를 더 가까이서 듣기 위해 삼청동을 찾았습니다. 인터뷰 시간을 기다리던 중, 스냅백을 쓰고 마치 힙합가수 같은 차림으로 카페에 들어오는 한 사람을 봤죠. 그 사람이 김명민이었습니다. 이날 현장에서 별도의 사진 촬영이 없었기에 만날 수 있었던 패션이었죠.

공식석상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모습이기에 적잖이 놀랐고, 인터뷰에 함께 한 취재진들이 일제히 이날의 패션을 언급했습니다. 김명민은 "참 세상이 좋아진 것 같아요. 이렇게 노메이크업으로 편안하게 기자 분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요. 정말 제 바람이었어요. 이 날이 왔네"라고 너스레를 떨었죠.

김명민은 털털한 화법이 매력적인 인터뷰이 중 한 명입니다. "저와의 인터뷰는 편안하게 하셔도 된다"고 먼저 인사하며, 다소 경직될 수밖에 없는 인터뷰 자리의 분위기를 먼저 녹이곤 하죠.



2017년 김명민은 '하루'에 이어 두 달 뒤 개봉한 '브이아이피'로 다시 취재진과 마주했었습니다. 8월 말을 향해 달려가던 시간, 자신의 휴대전화로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을 틀어놓고 취재진을 맞이하며 "가을이야"라고 낭만 어린 농담을 던지기도 했죠.

존댓말과 반말이 적절하게 섞인 말투는 첫 만남에선 다소 낯설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때론 기사에 직접적으로 담기 어려울 만큼 솔직한 생각을 그대로 말해,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칫하게 만들기도 하죠. 하지만 그 1인치의 장벽을 넘어 적응하고 나면, 만남을 거듭할수록 그 누구보다 열린 소통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바로 김명민입니다.

특유의 신뢰감 있는 중저음 목소리는 그대로인데, 마주본 테이블에 앉은 배우는 생전 처음 보는 힙합 패션 차림이라니요. 김명민은 "이건 약과에요. 놀라실 것 같아서 아주 기본적으로 하고 왔는데?"라고 받아치며 "개인적인 사생활을 보낼 때 슈트는 쳐다보지도 않아요. 슈트를 너무 많이 입다 보니까, 지겨워"라고 고개를 내저었죠.

"젊게 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저는 옛날부터 옷을 이렇게 입었어요. 못 고치고 있는 거지.(웃음) 항상 이런 인터뷰 자리에서는 사진을 찍기 위해 옷을 준비하고 있고, 또 거부감 없는 옷들을 입어야 하잖아요? 뉴스에는 아무래도 그런 것이 나가야 되니까. 사석에서 보는 느낌이죠? 평소에도 이렇게 다녀요. 저는 그냥 당당하게 다니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저와 눈 마주치면 눈을 피하더라고.(웃음) 그러다 인사해주시는 분이 있으면 저도 인사하면 되고요."

"스웨그(Swag)가 있다"고 거듭 칭찬하는 취재진에게는 "감사합니다. 서로 칭찬이 오가고. 훈훈하네요"라며 영화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연기'라는 단어 역시 한 시간 남짓한 대화 속에서 계속 등장했죠. "어려운 연기였을 텐데 해냈다"는 말에 김명민은 "에이, 무슨 그런 얘길 해"라며 겸연쩍어했습니다.

"제가 좀 힘들었을 뿐이지, 누구나 다 할 수 있죠"라고 말한 김명민은 "'연기 본좌'라고 불리잖아요"라는 얘기에 "아휴, 이제 그만해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몇 년을 했어"라고 웃으며 남모를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2012년 영화 '간첩' 방송 인터뷰 당시 작품을 함께 한 염정아가 김명민을 향해 "'명본좌(김명민 연기 본좌)'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에 김명민은 난감해하며 "정말 그 수식어를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선배들이 '본좌'가 뭐냐고 물어보시더라. 참 난감하고 민망하다.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었죠. 이후 또 5년이 흐른 2017년이었지만, 그 때도 여전히 김명민 앞에는 '연기 본좌'라는 말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김명민은 "제가 그 얘기 안 드렸었나요. 한 선배님이, 저한테 '본좌가 무슨 뜻이야? 사람들이 왜 너한테 본좌라 그러는 거야?' 물어보셨다고요. 저 정말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아, 여기서 본좌란~" 이러면서 설명을 할 수도 없는 것이잖아요"라며, 여러 사람이 자신에게 이 말의 뜻을 물을 때마다 어려운 마음이 든다고 털어놓았죠.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취재진들은, '이렇게 마음을 얘기해주니 어려움이 이해된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어 김명민은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이런 설명 숱하게 해왔어요. 그런데 다음에 작품을 하게 되면 (홍보에도 필요하고 하니) 또 이 말이 나오더라고"라고 하소연했죠.


'1등, 최고,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마냥 좋게만 생각할 줄 알았는데, 아닐 수 있더군요. 객관적인 수치로 등수를 매길 수 없는 연기라는 세계 속, 그 중에서도 '가장 잘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본좌'라는 수식어가 그에겐 이전부터 꽤나 무겁게 다가왔던 모양입니다.

이는 평소 자신에게 유독 더 냉정한 김명민의 삶의 궤적과도 닮아있습니다. 1996년 SBS 공채 탤런트 6기로 데뷔한 뒤 뉴질랜드 이민을 고민할 만큼 오랜 무명 시절을 겪었고, 2004년 '불멸의 이순신'으로 주목받으며 날개를 펼치기까지 드라마 같은 시간들을 지나온 그죠.

"가혹까지는 아니지만, 저는 내가 나태해지는 게 싫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한 김명민은 "아, 물론 남한테는 안 그래요. 저 자신에게만 그러지"라고 껄껄 웃었습니다.

"잠을 많이 자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밤 11시쯤 자서, 새벽 4~5시에 일어나요. 눈이 떠지더라고. 오래 누워서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저도 이제 나이가 꽤 됐잖아요? 계속 이렇게 가고 있는데, 제 인생의 3분의 1을 누워서 지낸다는 건 너무 속상한 것 같아요. 내가 60세가 됐을 때, 20년을 잠으로 살았다고 하면 너무 괴로울 것 같달까요. 60년 중에 10년 정도? 남들보다는 좀 덜 잤다고 하면 뿌듯할 것 같죠."


취재진을 바라보던 김명민은 "기자 일도 마찬가지지만, 기본적인 본질이 있잖아요. 저는 배우이고요. 당연히 그걸 먼저 쫓아가는 거죠. 그러다 보면 좀 오래 걸리고 답답하고 돌아갈 순 있겠지만, 나중엔 돈도 명예도, 인정도 안정적으로 딱 오는 것 같아요"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똑같아요. 예나 지금이나, '배우들에게도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죠"라며 '연기 본좌'가 아닌 듣고 싶은 수식어를 꼽기도 한 김명민은 "그리고 저는, 박수칠 때 떠날 거예요"라며 초연하게 말을 더했습니다.

'지금도 많이 박수 받고 있지 않나'라는 말에 "요즘 박수량이 좀 떨어지고 있다"고 이내 농을 던지며 "대중이 원하는 연기를 못 하게 됐을 때, 대중에게 필요 없는 배우가 됐을 때 떠나겠다는 거죠.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건데, 제가 알아서 떠날게요"라고 엷게 미소를 띄웠습니다.

한 명의 대중 입장에서는, 김명민의 연기를 오래 보고 싶기에 '박수를 치지 말아야 하나'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되더군요. 프로로서 자신의 일을 잘 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니,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이라면 '연기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이 필수 조건이 되겠죠. 그런 배경에서 김명민은 이미 연기로는 든든한 대중의 신뢰를 바탕에 갖고 있으니 자신에게 주는 여유의 폭을 조금은 더 넓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고요.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연기로, 그렇게 계속 대중의 곁에 좋은 배우로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DB, 각 영화·스틸컷, SBS 방송화면, JTBC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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