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노트북]에서는 그 동안 인터뷰 현장에서 만났던 배우들과의 대화 중 기사에 더 자세히 담지 못해 아쉬웠던, 하지만 기억 속에 쭉 남아있던 한 마디를 노트북 속 메모장에서 다시 꺼내 되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지금도 (차)태현이 형이랑은 대화가 잘 되거든요? 만약 형이 권위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면…. (저를) 상대도 안 해 줄 수도 있었죠.(웃음) 그런데 지금도 이렇게 저와 대화할 수 있는 건, 태현이 형이 가진 어떤 지혜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7.01.13. '더킹' 인터뷰 중)
지난 달부터 전파를 타고 있는 tvN 예능 '어쩌다 사장'을 보며 목요일 밤을 마무리하곤 합니다. 예능에서 너무나도 잘 활약해 온 배우 차태현, 또 예능에서 쉽게 보기 힘들었던 조인성까지. 20년에 이르는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의 '브로맨스'와 시골슈퍼 영업기를 보고 있노라면 여느 예능처럼 다소 높은 데시벨의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100여 분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잔잔하게 웃음 짓게 되죠.
조인성에게 '어쩌다 사장'은 첫 고정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1998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중 한 명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꾸준히 대중을 만나왔죠. 그간 작품 활동에 비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얼굴을 많이 볼 수 없었기에, 2011년의 '무한도전'이나 2014년 '1박 2일' 등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당시 파급력도 어마어마했었습니다.
'어쩌다 사장' 속 슈퍼가 자리한 강원도 화천의 마을 주민들에게도 조인성은 최고의 인기남입니다. 투박한 손길이지만 뚝딱뚝딱 라면을 비롯한 요리들을 완성해내고, 사람들과 살갑게 이야기를 나누죠.
조인성과 차태현의 바쁜 일손을 도울 게스트들의 면면을 보는 것도 큰 재미입니다. 첫 게스트로는 두 사람과 모두 친분을 갖고 있는 배우 박보영이 등장해 일당백 활약을 펼쳤죠. 지난 주 방송된 3회에서, 세 사람은 2일차 영업을 마무리하며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박보영은 과거 차태현과 조인성에게 고마웠었던 일화를 털어놓았죠. 자신의 칭찬을 쑥스러운 표정으로 듣고 있는 차태현을 바라보면서, 조인성 역시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또 조인성의 따뜻한 위로 한 마디로 마음에 정말 큰 울림을 느꼈다고 얘기하는 박보영을 보며 조인성은 "내가 괜한 말을 했다"면서 익살스럽게 자신의 뺨을 때렸죠.
이내 조인성이 "그래서, 누군가의 영향을 받는다는 건 참 중요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이미 톱스타였던 차태현을 신인 시절에 만난 일화를 전했죠.
"나는 스무 살 때, 회사 앞에서 택시타고 가는 태현이 형한테 인사를 드렸었거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는 태현이 형이 완전 정점을 찍고 있었어. 그 때 형이 진짜 다정하게 '인성아, 술 한 잔 마시자'고 했었는데, 정말 전화가 왔어."
조인성의 이야기에 깜짝 놀란 차태현은 "그랬어?"라고 놀라며 "어머, 지금 사십육살(46세)인데…세월이 많이 흘렀다"면서 너털웃음을 지었죠.
이어 박보영에게 "우리 얘기가 '라떼는 말이야'처럼 들리는 것 아니지? 같이 늙어가는 사이에 그러지 말자"고 넉살을 부리는 조인성을 보며 2017년 1월, '더 킹'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조인성이 이와 비슷하게 차태현의 이야기를 언급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인터뷰가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질문하는 한 취재진에게 "와, 목소리가 정말 좋으세요"라면서 다소 어색할 수 있는 초면에도 그 사람의 장점을 찾아 살갑게 인사하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풀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죠.
당시 '데뷔 19년이다'라며 말을 꺼낸 취재진에게 조인성은 자신을 가리키며 "옛날 사람"이라고 읊조려 또 한 번 현장에 웃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조인성은 씨익 미소를 보이면서, 어린 시절부터 일을 시작하며 "성장통이 심했다"고 과거를 털어놓았죠. 그렇기에 그 때의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겪을 어린 후배들을 좀 더 포용력 있게 감싸주고 바라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차태현의 이름이 나왔죠.
"태현이 형이 저를 그렇게 품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받은 대로 하는 것이죠. 지금도 형이랑은 대화가 잘 되거든요? 만약 형이 권위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면…. (저를) 상대도 안 해 줄 수도 있었죠.(웃음) 지금도 그렇지만, 형은 그 때 이미 톱(TOP)오브 톱이었어요. 영화, 음반, 예능, 광고까지 다 섭렵했던 사람이거든요. 흥행도 다해봤고요. 그런데 지금도 이렇게 저와 대화할 수 있는 건, 태현이 형이 가진 어떤 지혜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 조인성은 "'내가 더 지혜로우니까 너를 가르쳐 주겠어' 이게 아니라, 대화를 해요. 말할 순 있잖아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차태현을 향한 오랜 신뢰의 시작을 떠올리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앞서 조인성은 '어쩌다 사장' 출연 이유를 전하며 "찍어놓은 영화가 있는데, 코로나19 시국 때문에 본의 아니게 늦게 인사드리게 됐다. 제가 보통 1년에 한 작품은 하려고 하는데, 길어지는 바람에 편하게 인사드릴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할 때쯤 마침 태현 형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형과 함께라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전한 바 있습니다.
차태현 역시 본 방송 전부터 '어쩌다 사장'을 통해 조인성의 인간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었죠. 서로를 향한 신뢰 속 한 배를 탄 이들의 시너지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더하며 시청자들에게 그렇게 편안하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조인성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어쩌다 사장'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죠.
지난 18일 방송된 4회에서는 게스트로 수고해 준 윤경호, 김재화, 박경혜와 영업을 마치고 술잔을 기울이며 40대 배우가 갖는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대중은 배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라는 차태현의 말에 "살면서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하면, 내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줘도 문제가 안 될 것이라 생각했다. 태현이 형도 옆에 있어서 용기를 낸 것이다"라며 다시 한 번 믿음을 드러냈죠.
예능 프로그램만큼은 아니지만, '더 킹' 인터뷰 당시에도 조인성의 인간적인 모습이라면 모습일 수 있는 훈훈했던 기억이 하나 남아있습니다.
인터뷰 후 10여 분의 짧은 휴식 시간, 조인성은 취재진의 대기 장소였던 카페 로비까지 성큼성큼 걸어 나와 앞 시간에 함께 했던 취재진을 구석 자리까지 일일이 찾아 눈을 맞추며 "수고하셨다"며 허리 숙여 인사했습니다. 한 취재진은 인터뷰 후에야 수줍게 조인성의 공식 팬클럽인 '인성군자'였다고 고백해 조인성을 웃음 짓게 했죠. 자신의 팬이었다는 취재진의 말에 환한 웃음으로 "정말요?"라며 감사하다고 화답해주던 사람 좋은 미소도 기억납니다.
물론 조인성처럼 꼭 그렇게 인터뷰 후 인사를 다시 전해야 하는 것도 당연히 아니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던 다른 이들이 잘못됐다는 시선을 말하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어찌하였든, 보통의 인식 속에서 보기 드문 모습임에는 분명했기에 반가우면서 또 낯선 느낌이 공존했던 그런 마음이었다고 표현해야겠네요. 오가는 따뜻한 말 한마디, 인사 하나만으로도 머무는 공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코로나19 여파로 본의 아니게 현재 조인성의 작품 활동에는 공백이 생긴 상황이지만, 이렇게 예능으로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반가운 시간들이죠. 남은 '어쩌다 사장'의 방송과 개봉을 앞둔 작품을 통해 대중과 교감하고 싶은 조인성의 바람이 무사히 잘 전달될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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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