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12.01 11:55 / 기사수정 2010.12.01 12:06
[엑스포츠뉴스=윤인섭 기자의 수다메리까!] - 풋볼 아메리까노(13) 남미 축구의 3인자들과 그들의 영웅(상)
지난 시간 우리는 남미 최고의 클라시코를 살펴보는 시간을 통해 남미 축구의 라이벌 관계에 대해 알아보았다.
1. 인데펜티엔테: 아르헨티나의 N.3이자 남미 축구의 N.1
연고지: 아베샤네다 창단: 1905년 업적: 자국리그 16회, 코파리베르타도레스 7회 우승
레전드★ 리카르도 보치니(공격형 미드필더, 1954년생, 1972-91년 740경기 107골)
1970년대 인데펜디엔테의 '황금시대'를 이끈 주역이며 1972년부터 1991년까지, 근 20년간 인데펜디엔테에서만 활약한 클럽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이기간 인데펜디엔테의 자국리그 5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5회 우승을 이끌었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 대표로 참가, 조국의 두 번째 월드컵 우승을 함께했다.
출전 횟수에 비해 그리 많은 득점을 올리지 못했으나 전방 공격수에게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를 제공한 촌철살인 같은 패스로 80년대 아르헨티나 축구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이름을 알렸다. 요즘에도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러한 침투패스를 '보치니 패스(pase bochinesco. 파세 보치네스코)'라 일컫고, 인데펜디엔테의 연고지인 아베샤네다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을 정도이다.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우상으로 알려졌고, 마라도나와 함께 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마라도나는 '마에스트로(선생님)'란 호칭으로 보치니를 대했다.
2. 우니베르시닷 카톨리카
연고지: 산티아고 창단: 1937년 업적: 자국리그 9회 우승,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회 준우승
칠레 축구의 3대 명문이라 일컫지만, 카톨리카에 대한 현실적인 대접은 콜로콜로, 우니베르시닷 데 칠레(이하 데 칠레)에 이은 칠레 축구의 명실상부한 3인자이다. 카톨리카와 데 칠레의 '클라시코 우니베르시타리오(대학 클라시코)'는 칠레에서 가장 뜨거운 클라시코이다. 참고로, 두 팀은 대학 소유의 프로 축구구단이다.
과거: 자국 리그 9회 우승, 콜로콜로(29회)와 데 칠레(13회)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우승을 일구었다. 1973년, 대학 재단의 재정악화로 2부 리그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했지만, 3년 만에 1부 리그로 복귀했고 1984년 리그 우승으로 다시금 명문의 모습을 되찾았다. 1993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에 진출, 상파울루와 1승1패를 거뒀으나 골득실에 밀려 아쉬운 준우승에 머물렀다.
현재: 2005년 후기리그 우승 이후, 콜로콜로의 독주에 밀려 준우승만 두 차례뿐, 아직 우승과 연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통합 시즌으로 행해지는 2010시즌 33라운드(38라운드까지 진행) 현재, 승점 71점으로 콜로콜로에 3점차 앞선 선두에 올라 5년 만의 리그 우승에 한 발 다가섰다. 칠레 리그 득점 선두 밀로반 밀로세비치(19골)와 로베르토 구티에레스가 이끄는 쌍포의 위력이 대단하고 전 아르헨티나 대표 로돌포 아루아바레나가 수비진을 이끈다.
주요배출선수: 마우리씨오 이슬라(현 우디네세), 가리 메델(현 보카), 마르크 곤살레스(현 CSKA 모스크바), 장 보세주르(현 버밍엄), 넬손 타피아(1990년대 칠레 대표 부동의 수문장)
3. 다누비오
연고지: 몬테비데오 창단: 1932년 업적: 자국리그 3회 우승
우루과이의 N.3를 꼽자면 다누비오와 데펜소르를 놓고 머리 아픈 고민을 펼쳐야 한다. 리그 우승에서는 데펜소르가 4회로 다누비오에 앞서지만 속된 말로 '도진 개진'이다. 그야말로 우루과이 축구는 페냐롤(37회 우승)과 나씨오날(31회 우승)의 위세 앞에 다른 클럽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데펜소르와 다누비오를 합쳐, 78년 우루과이 프로리그 역사 상 페냐롤과 나씨오날을 제외한 클럽이 우승을 차지한 횟수는 딱 10번이다.
그럼에도 다누비오를 우루과이의 3인자로 꼽은 이유는 페냐롤과 나씨오날을 능가할 그들의 찬란한 유스시스템 때문이다. 금세기 우루과이 축구의 상징, 알바로 레코바와 디에고 포를란이 바로 다누비오 유스시스템의 작품이고 올 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 득점 1위 에디손 카바니, 유벤투스의 실망스런 기대주 마르셀로 살라예타 등이 다누비오의 유스시스템을 통해 배출되었다. 오늘날 우루과이 대표팀의 근간이 다누비오 유스시스템에서 출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러나 클럽의 빈약한 자금력은 팀의 훌륭한 자산들이 오랜 기간 팀에 머무를 수 없는 환경이 되었고, 선수들의 잦은 이동은 다누비오의 역사를 만드는 데 커다란 한계가 되었다.
* 현재는?
지난 2006/07시즌 우승 이후, 다누비오는 리그의 중위권 팀으로 전락했다. 매 시즌초반의 상승세를 지켜나가지 못할 엷은 스쿼드가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에는 클럽의 상징, 알바로 레코바가 14년 만에 복귀했지만,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레코바는 잦은 부상으로 13경기에서 5골을 득점하는 데 그쳤고, 팀도 16개 팀 중 9위에 그치는 평범한 시즌을 보냈다.
그래도 올 시즌 다누비오는 탄탄한 조직력과 끈질긴 수비력으로 6위에 올라 다음 후기리그의 가능성을 엿 볼 수 있었다. 레코바가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정기적으로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면, 후기리그의 대반전을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4. 리베르탓
연고지: 아순시온 창단: 1905년 업적: 자국리그 14회 우승
리베르닷은 파라과이 축구 역사의 N.3이다. 1998년 2부 리그로 강등당하며 '잊혀진 명가'가 되었고 21세기 되어서는 파라과이 1부 리그를 6번이나 제패하며 파라과이 축구의 최강자로 도약했다. 국내 대회의 성과이든, 국제대회의 성과이든, 국가대표 선수의 배출이든, 더 이상 올림피아와 세로 포르테뇨는 파라과이 최강이 될 수 없다.
본래 리베르탓은 올림피아와 세로 포르테뇨의 아성에 뒤이어 과라니와 함게 파라과이 축구의 3인자자리를 내놓고 다투던 클럽이었다. 1976년 국내리그 우승 이후 오랜 침체기에 빠졌으나, 2000년대 들어 담배업자이자 정치가, 오라씨오 카르테스가 팀을 인수하며 리베르탓의 황금기가 시작된다.
2002년, 26년 만에 파라과이 1부리그 정상에 오른 리베르탓의 기세는 파죽지세였다. 2003년 리그 2연패에 성공하더니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파라과이 리그 4연패(2008년부터 파라과이 리그는 전후기로 개편)를 이룩했고, 2010년 전기리그 4위를 제외하고 이기간 모든 대회에서 2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었다.
비록 지난 전기리그에서 4위의 '부진'을 겪었지만, 1경기를 남겨놓은 이번 후기리그에서 세로 포르테뇨를 제치고 다시금 1위 자리로 복구했다. 파라과이 대표팀의 주축 미드필더 빅토르 카세레스, 카를로스 보넷 등이 주요 선수이다.
[사진=인데펜디엔테의 황금기 1970년대, 리카르도 보치니, 알바로 레코바(C) 인데펜디엔테 홈페이지, 보치니 팬 사이트, 다누비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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