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8 06:07
자유주제

팬이 쓰는 격투기 '그곳에 내가 있다'

기사입력 2005.11.19 15:24 / 기사수정 2005.11.19 15:24

김종수 기자





▲ 한 격투기 체육관에서 관원들이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계가 없음)



언젠가 대본소 만화에 한창 빠져있을 때 자주 가졌었던 의문점이 하나 있다. 왜 국내 대본소만화들은 내용들이 한결같을까? 사랑, 배신, 음모 등등… 어찌보면 스토리구성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될 요소들이겠지만 수많은 작품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천편일률적인 이런 식의 전개에는 점점 식상함을 느껴가고 있었다.

다작 작가로 유명한 박봉성씨를 비롯해 주제 자체가 드라마적인 만화가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야구, 농구, 축구, 심지어는 격투기 등 전문성을 갖추어주었으면 하는 작품들까지 이런 방식을 따르다보니 마음속에는 알게 모르게 욕구불만 같은 것이 쌓여갔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필자가 전문주제를 갖춘 작품을 고를 때는 거기에 관한 지식이나 내용들을 실컷 접해보고자 하는 성향이 강했는데 대본소의 대부분 작품들은 드라마적인 요소에만 치중할뿐 해당주제에는 너무나도 무심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위안을 삼았던 '패왕(유도)' '쿵후소년 용소야(권법)' '타이거 마스크(프로레슬링)'등의 작품들 역시 후에 일본만화의 아류작이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깊은 실망감을 느꼈었는지 모른다.

소설 쪽으로 눈을 돌려보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무협과 판타지물 외에 특정 매니아층을 겨냥한 전문장르소설들은 찾아보기조차 어려웠다. 물론 현재도 스포츠, 격투기 쪽의 전문소설들은 흔하지 않은 상태이다.

만화도 좋고, 소설도 좋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해당주제만 충실하게 다뤄주는 작품은 없을까…?  좀처럼 해갈(解渴)될 줄 몰랐던 이런 갈증들은 얼마 후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일본만화들을 통해 조금씩 해소되어갔다.

매니아를 위한 작품들

필자라고 왜 국내만화가 싫겠는가? 필자 역시 한국인이고 같은 조건이면 외국작품보다는 국내작품을 선호하고 또 잘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매니아문화가 발달한 일본 쪽의 만화들 중에는 해당주제를 착실하게 다뤄주는 작품들이 많았고 자연스레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슬램덩크(농구)'를 필두로 '파이터 바키' '터프가이' '에어마스터(이상 격투기)' '캡틴 쯔바사(축구)' '나인볼의 황제(당구)'같은 작품들은 대본소 만화들의 전형적인 드라마적 공식들은 최소화한 채 해당분야의 내용에만 파고들며 전문주제에 굶주려있던 필자를 흥분하게 하였다.

이런류의 작품들이 인기를 끌자 국내에서도 점차 매니아형 작품들이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헝그리 베스트5'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드라마적인 요소들이 조금 약해지기만 했을 뿐 여전히 매니아형 만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해당주제에 대한 거창한 언급으로 시작하기는 하지만 결국 남녀간의 사랑, 친구의 배신 등으로 주축 스토리라인이 이루어지고 나중에는 원래 가졌던 주제는 흐지부지되기 십상이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출판사에서 그런 식으로 가기를 원해서, 작가자신부터 해당장르에 대한 지식이 일천해서…등등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일개 팬인 필자에게는 답을 내리기 너무도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언젠가 한 출판관계자 분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해보았고, 그분에게 들었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국내시장은 일본 등과 비교해서 너무 작다. 매니아층은 분명 존재하고있지만 소수의 그들을 위해서 작품을 내기에는 출판사입장에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매니아들을 만족시킬만한 작품이 나올지도 의문스럽지만 일단 시장성에서 출판자체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매니아층이 아주 커져서 어느 정도의 시장을 이루거나 외국시장까지 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져야만이 전문매니아형 작품들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야구가 보고싶으면 야구에 관한 만화나 소설을, 역시 격투기가 보고싶으면 격투기를 심도 있게 다룬 만화나 소설을 보고싶은 욕구는 국내작품들에게서는 채울 수가 없었고 대부분을 외국(일본)작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매니아가 쓰는 매니아를 위한 소설

그렇다! '그곳에 내가 있다'라는 격투기소설은 매니아를 위한 소설이다.

물론 매니아가 아닌 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격투기라는 전문성이 강하게 내포되어있는 작품인 만큼 해당주제를 좋아하는 매니아일수록 더욱 열광할 수 있을 것이다.

격투기 광팬을 자처하는 원투쓰리라는 네티즌에 의해 격투기카페에서 연재되고있는 이 작품은 폭팔적이지는 않지만 꾸준한 독자층을 확보하면서 식지 않는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온 어느 고교생이 어느날 문득 실전이라는 단어에 의구심을 품게되면서 겪게되는 수많은 사건들, 그 속에서 주인공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마침내 강인한 파이터로서 완성되어 간다.

주인공을 둘러싼 여러 가지 복잡한 인과관계나 사랑 등도 없다. 오직 격투기에 격투기의 격투기를 위한 일직선식 구성으로 뚫고 들어갈 뿐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평면적이고 간단한 스토리라인일 수 있겠으나 마크 꼴면(마크 콜먼), 맞고 커(마크 커), 케빈 낸들면(케빈 랜들맨), 세르게이 타크타노프(세르게이 하리토노프), 놀슨 그레이시(힉슨 그레이시) AJ 펜(BJ 펜)등 실존인물들을 패러디한 캐릭터들에 Arm Bar(암바), Triangle Choke(트라이앵글 쵸크)등 풍부한 격투기 지식이 포함된 생생하다못해 정교하기까지한 다양한 격투신은 격투기매니아들을 한껏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물론 전문적으로 글을 쓰거나 작가지망생을 꿈꾸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미흡한 면도 있다. 일단 전형적인 기승전결구도가 아닌 모든 것을 주인공의 성장위주로 끌고 나가는 이른바 일직선식 쏟아내는 구조라 소설적인 부분만 놓고 봐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교가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비슷한 작품으로 '슬램덩크'라는 만화가 있다. '슬램덩크'에서는 드라마적인 스토리를 끌고 나가기보다는 강백호라는 주인공을 필두로 다양한 캐릭터들의 개성에 초점을 맞추고 더불어 농구라는 주제하나로 주구장창 밀고 나간다.

하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순간 순간의 장면조합으로 인해 매니아층은 물론 비 매니아층 독자들까지 몰입시켜버리는 쾌거를 이룩했다.

순간 순간 살아있는 단문의 유희(遊戱)

앞서 말한 것처럼 '그곳에 내가 있다'라는 작품은 상당히 투박하다. 격투기라는 특정장르를 떠나서도 문체자체가 일반적인 소설들과 비교했을 때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맛은 확실히 떨어진다.

하지만 일체의 사족도 허락지 않는 간결한 스토리라인에 순간 순간 번뜩이는 단문에서는 작자자신의 힘이 실려나옴이 느껴지기도 한다. 짧은 두 문장만 소개해본다.

먼저 '착각일까?...........무릎은 웃고 있었다'라는 부분.

실전에 목말라있던 주인공이 격투기도장 관장이 수련에 의미에서 감행했던 태클을 막아내면서 무릎공격을 시도해버린다. 의도했던 바가 아닌 다분히 반사적인 반격이었을 뿐이지만 덕분에 관장은 피투성이로 병원에 실려가야만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순간적으로 멍해진 주인공, 그러나 이내 파이터의 피가 끓어오르는지 관장을 실신시켜버렸던 자신의 무릎을 쳐다보게 되고, 바로 이 부분에서 위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그리고 '문이 닫히고 스르르 감기는 눈에 오늘을 포기하는 나였다'라는 부분.

사고를 치고 교도소로 들어가게 된 이후 의문의 교도관으로부터 모진 트레이닝을 받아야만했던 주인공, 거듭된 실전으로 인해 몸과 마음은 그야말로 녹초가 된다. 단 하루 아니 일분 일초도 제대로 긴장을 풀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교도관은 강력한 로우킥의 소유자로 한방만 맞아도 다리가 아파 며칠을 고생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수련에 수련을 거듭한 주인공은 교도관의 무릎공격을 처음으로 제대로 견뎌내게 된다. 그때서야 주인공은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교도관이 철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피곤에 젖은 주인공은 처음으로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게된다.

작품은 현재 수련중심의 1부 '나는 싸움을 하였네'까지 연재되어있고 앞으로 2부부터 본격적인 파이터로서의 행보가 이어질 예정이다.

격투기소설 '그곳에 내가 있다!'

매니아가 쓰는 매니아를 위한 격투기소설의 강한 파괴력을 계속해서 기대해본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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