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고전에 담긴 낭만적인 감수성은 시간이 흐른 현대까지도 유효하다. 인간 본연의 순수한 감정과 열정, 사랑, 자존심까지 베르테르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괴테의 고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무대로 옮긴 창작 뮤지컬 '베르테르'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등 현악기 중심으로 편성된 실내악 오케스트라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무대, 은유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2000년 초연한 뒤 20년간 꾸준히 사랑받았다.
주인공 베르테르는 절대적인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남자다. 발하임으로 온 베르테르는 이곳에서 사랑스럽고 미소가 아름다운 롯데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하지만 롯데에게는 이미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었다. 롯데에 대한 사랑을 접지 못한 베르테르는 ‘자석산의 전설’ 속 부서지는 배처럼 결국 비극을 맞는다.
롯데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시작한 사랑이지만 자칫 불륜 막장 이야기로 변질될 수 있다. 하지만 베르테르는 계산된 것이 아닌, 가슴이 시키는대로 사랑을 불태운다. 이토록 깊은 외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열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그의 애잔한 사랑이 시종 드러나며 관객의 감성을 건드린다.
집착으로 보일 수 있을 만큼의 깊은 사랑과 고뇌는 인스턴트적인 사랑이 난무하는 현대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애끊는 감성을 전한다.
베르테르 외에도 미천한 정원사 카인즈가 등장한다. 주인집 여인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번민하다 살인을 저지르고 처형된다. 카인즈와 베르테르의 사랑은 닮아 있다. 카인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 베르테르는 그의 사랑을 독려한다. 처형 위기에 놓였을 때도 그를 위해 적극적으로 변론하지만 카인즈는 죽고 만다. 분신과도 같았던 카인즈의 죽음, 그리고 연이어 일어난 베르테르의 자살까지 극은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에 여운은 배가 된다.
인물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등장한다기보다는 베르테르라는 한 남자의 감성을 중심으로 극이 펼쳐진다. 그 감성이 절절해 숨을 죽이고 그의 감정선을 따라가게 만든다. ‘금단의 꽃’, ‘어쩌나 이 마음’, ‘사랑을 전해요’, '내 발길이 붙어 뗄 수가 없다면', ‘얼어붙은 발길’, ‘달빛 산책’, ‘하룻밤이 천년’ 등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운 실내악 선율이 더해져 서정적이면서도 비장한 분위기를 돋운다. 설렘, 좌절, 슬픔, 절망까지 베르테르의 질풍노도 사랑은 군더더기 없는 무대와 대비돼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베르테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은 해바라기가 쓰러지는 것으로 표현해 더 아련하다.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중요한 극이다. 카이는 수려한 외모와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청년 베르테르 역할을 소화하기에 이질감 없다. 롯데에게 첫눈에 반해 들뜬 모습부터 고뇌하고 절망하는 모습까지, 뛰어난 가창력과 섬세한 연기로 베르테르의 심리 변화를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이지혜 역시 해맑고 발랄한 아가씨 롯데 역할과 어울린다. 베르테르와 정신적으로 교감하고 큰 친절을 베풀지만 막상 그의 마음을 알자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 한 표정을 짓는다. 베르테르의 사랑을 인정하면서도 잘못된 길을 갈 수 없는 롯데라는 인물을 개연성 있게 그려낸다.
뮤지컬 ‘베르테르’는 11월 1일까지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한다. 155분.
khj3330@xportsnews.com / 사진= 베르테르 CJ ENM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