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우려가 현실로 일어난 경기였다.
13일 오전3시30분(한국시간) 루스텐버그 로얄 바포켕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미국의C조1라운드 경기에서 '2% 부족한 우승후보' 잉글랜드의 가장 큰 고민이 그대로 드러났다. 바로 지난 몇 년간 해결하지 못한 주전 골키퍼 문제다.
과거 데이비드 시먼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은퇴한 이후 잉글랜드의 수문장에는 지난 몇 년간 붙박이 주전이 없다. 유로2004와 2006 독일월드컵 때는 데이비드 제임스(포츠머스)와 폴 로빈슨(블랙번)이 번갈아가며 골키퍼 장갑을 꼈지만, 항상 중요한 길목에서 믿음을 심어주지 못했다.
그 후 로빈슨이 부진에 빠지고 제임스의 노쇠화가 진행되면서 벤 포스터(버밍엄), 조 하트(맨체스터 시티), 로버트 그린(웨스트햄) 등이 나섰지만 확실한 신임을 받은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스페인 출신의 아스널 수문장 마누엘 알무니아의 귀화설까지 나올 정도. 결국, 이번 대회 본선을 앞두고도 특별한 해법을 찾지 못한 잉글랜드와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기존 선수 중 하트, 그린, 제임스 3명을 선발했고, 이 중 그린에게 미국과의 조별예선 첫 경기 주전 골키퍼 장갑을 맡겼다.
이날 미국과의 경기는 잉글랜드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경기였다. 1950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미국에게 당했던 0-1 패배의 수모를 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총력전을 펼쳤다.
당시 잉글랜드의 패배는 언론들의 오보로 잉글랜드 팬들이 처음에는 미국을 10-0으로 이긴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으니, 패배의 충격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된다. 그만큼 60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미국을 다시 만난 잉글랜드는 설욕을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뜻밖에 경기는 쉽게 풀리는 듯했다. 전반 4분 에밀 헤스키(애스턴빌라)의 도움을 받은 스티븐 제라드(리버풀)가 일찌감치 선취골을 터뜨린 것. 당시 분위기만 보면 단순한 승리가 아닌 큰 점수 차의 완승을 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엉뚱한 곳에서 일이 꼬였다. 전반 40분, 골키퍼 그린이 상대편 클린트 뎀시(풀럼)의 특별할 것 없는 프리킥을 제대로 잡지 못해 몸을 맞고 골문 안으로 굴러들어 가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잉글랜드로서는 본선을 앞두고 데이비드 베컴(AC밀란), 리오 퍼디낸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가레스 배리(맨체스터 시티)가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되거나 복귀가 늦어지면서 전력에 차질을 빚고 있는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가장 외면하고 싶던 잠재적 문제까지 발생한 셈이었다.
사실 잉글랜드의 골키퍼들은 메이저 대회에서 종종 실수를 저지르며 중요한 순간 팀의 발목을 잡았다. 잉글랜드가 자랑하던 수문장인 시먼조차 2002년 한일월드컵 브라질과의 8강전에서 지나치게 골문 앞쪽으로 나와 있다가 호나우지뉴의 크로스 같은 슈팅에 어이없이 결승골을 내주며 팀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던 적이 있을 정도.
그린의 실수로 동점을 허용한 잉글랜드와 달리 미국은 팀 하워드(에버턴) 골키퍼가 상대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는 선방을 여러 차례 선보이며 결국 C조 최강팀인 잉글랜드를 잡아내는 데 성공, 16강 진출에 청신호가 켜졌다.
반면 잉글랜드와 카펠로 감독은 당장 다음 경기부터 어떤 골키퍼를 주전으로 내세울지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너무나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며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의 그린을 다시 한번 믿어보기가 쉽지 않다. 또한, 40세의 노쇠한 제임스나 경험이 일천한 23세의 하트도 불안하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루니의 공격 파트너 문제나 수비진의 백업 부족 등 다른 우승 후보에 비해 2%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잉글랜드. 그 중 가장 우려되는 골키퍼 문제를 앞으로의 조별리그와 16강 이후에서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가 관건이다.
전성호 기자 press@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