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설리의 죽음에 ‘악플의 밤’도 영향을 끼쳤을까.
그룹 에프엑스 출신 배우 설리가 사망했다. 경찰은 1차 부검 결과 설리의 시신에서 외력에 의한 사망으로 의심할만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범죄 혐의점이 없다는 국과수로부터 구두소견을 받았다.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는 주변인의 진술 등을 토대로 설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결론 내리고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설리의 발인은 17일 서울 한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설리가 갑작스럽게 스스로 세상을 등져 충격을 준 가운데 그가 출연 중이던 JTBC 예능프로그램 ‘악플의 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악플의 밤’은 설리가 사망한 14일 설리가 연락되지 않자 김숙, 신동엽, 김종민만 참여해 녹화를 진행했다. 설리의 비보 후에는 애도를 표하며 예고편 송출을 중단하고 18일 휴방을 알렸다.
설리 사망 후 ‘악플의 밤’을 향한 폐지 요구가 거세졌다. 설리는 SNS를 통해 가식과 내숭 없이 평소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고 대중을 의식하지 않는 행보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한 악성 댓글을 받기도 했다. 설리가 생전 악플로 고통받은 사실이 잘 알려졌기 때문에 '악플의 밤' 역시 설리의 사망에 나쁜 영향을 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악플의 밤’은 스타들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악플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올바른 댓글 매너와 문화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설리는 첫 회에서 악플을 낭송하며 솔직한 입담을 뽐냈다. "나는 개관종이다. 관심 좀 달라", “노브라는 개인의 자유다. 어그로를 끌려는 게 아닌 틀을 깨고 싶어 계속 사진을 올렸다”, “마약 같은 범법 행위는 안 한다”라며 쿨하게 이야기했다. 이후 다른 연예인들의 고백에는 다른 MC들보다 더 공감하고 같이 분노했다. 대인기피증, 연예인으로서 이중적 삶의 고충도 진솔하게 털어놓아 호감을 얻었다.
하지만 밝은 겉모습과 달리 우울증을 앓던 설리 자신에게는 트라우마를 되새기는 일이었을 수 있다. 사회 문화가 된 악플을 당당히 마주하고 오해를 푸는 자리이지만, 상처를 준 악플을 다시 곱씹는 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보단 큰 상처가 될 법하다. 다른 연예인들에게 달린 악플도 매주 들으면 쉽게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다.
과거 할리우드 톱배우들이 트위터로 온 악플 메시지를 읽고 솔직하게 반응하는 영상이 공개돼 화제가 된 적 있다. ‘악플의 밤’도 이와 일맥상통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서에는 다소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 2016년 MBC에브리원 ‘쇼 챔피언’에 악플박스 코너가 있었는데, 수위조절이 안 된 악플을 읽는 걸그룹의 모습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 비판 받았다. 얼마 후 코너는 사라졌다.
악플에 대처하는 스타들의 솔직한 자세를 보여준다는 취지는 좋다. 이들의 쿨한 모습에 호감을 느끼게 된 팬들도 많았을 터다. 하지만 외모 비하, 인신공격, 욕설 등이 담긴 악성 댓글을 읽고 표정이 굳어지는 연예인을 보는 시청자의 마음은 편할 수만은 없다.
물론 설리의 죽음은 ‘악플의 밤’ 때문이 아니다. 원인은 ‘악플의 밤’이 아닌 악플 그 자체이며 악플 외에도 아무도 모르는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 이에 '악플의 밤'에 책임을 돌리는 건 무리수다. 하지만 좋은 기획 의도 뒷편에 출연자들의 심리 상태, 악플을 가볍게 보게 하는 부작용까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건 아쉬운 부분이다.
khj3330@xportsnews.com / 사진= JTBC 방송화면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