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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으로 쌓은 '20승 금자탑'

기사입력 2006.03.18 22:28 / 기사수정 2006.03.18 22:28

윤욱재 기자

[프로야구 25년 특별기획 - 나의 몬스터시즌 15] 1997년 김현욱

 

‘벌떼마운드’의 돌격대장

 

전년도(1996) 프로야구를 들썩였던 쌍방울 돌풍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쌍방울은 김성근 감독의 용병술과 선수 육성이 빛을 발하며 1996시즌 정규리그 2위(최종순위 3위)를 마크, 만년 꼴찌팀이란 오명 탈출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쌍방울은 김기태, 김광림, 최태원 등이 이끄는 타선의 끈끈함이 돋보였다. 하지만 확실한 에이스가 없어 고전을 펼쳐야했고 이 때 김 감독이 내놓은 방안은 화제의 ‘벌떼마운드’ 운영. 97시즌에 돌입한 쌍방울은 치열한 순위다툼을 벌여야했고 4위를 차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난시즌 하위권을 맴돌던 LG와 삼성이 막강한 타선을 구축, 상위권으로 약진했고 OB도 에이스 김상진을 앞세워 3,4위 언저리에서 각축을 벌였기 때문. 물론 지난시즌 챔피언 해태는 말할 것도 없고.

 

쌍방울은 그래도 믿을 구석이 있었다. 선발과 마무리를 이어주는 허리 하나는 정말 튼튼했다. ‘중간계투’는 말 그대로 경기 중반에 나오는 투수로만 치부되던 그 시절, 김현욱의 등장은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김현욱은 선발투수가 위기에 몰리거나 경기 중반 승부의 향방이 결정되려는 순간 어김없이 등장했다. 꿈틀거리는 싱커와 커브, 그리고 눈에 띄게 성장한 완급조절과 코너워크는 타자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시즌 초반부터 다승 선두로 치고 나가더니 전반기 다승 1위(9승)를 마크, 생애 첫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감격도 맛봤다. 이 때 김현욱과 다승왕을 놓고 경쟁을 펼친 선수는 김상진, 정민철 등 각 팀들이 내로라하는 에이스들이었으니 가히 인생역전이라 부를만하다.

 

절묘한 변화구 구사와 경기 운영 능력도 뛰어났지만 사실 김현욱은 그라운드 밖에서 더 뛰어난 선수였다. 지독한 연습벌레로 통할 정도로 김현욱은 자기 관리에 충실했다. 연습량이 너무 많아 코칭스태프가 걱정할 정도였다. 말 그대로 김현욱은 ‘성실’이란 마구를 던지고 있던 것이다.

 

잠수함 열풍과 미들맨 전성시대 

김현욱은 97시즌을 한 눈에 보여주는 아이콘이었다. 유능한 잠수함투수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잠수함 열풍’이 일었고 이 중 김현욱이 대표주자였다. 김현욱은 팀 동료인 김기덕, 성영재와 함께 잠수함 열풍의 시발점이 되었고 이외에도 이상훈(LG)과 구원왕을 놓고 다퉜던 신형 마무리 임창용(해태)과 흔들리는 팀의 마운드를 짊어지던 조웅천(현대), 기대하지 않았던 루키 잠수함 전승남(LG) 등 새 얼굴들이 대거 등장하며 아직 한국 타자들의 변화구 대처 능력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게 해줬다. 

잠수함계의 대표주자 김현욱은 ‘중간계투 신드롬’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김현욱과 함께 중간계투 전성시대를 활짝 열은 선수로는 차명석(LG)을 꼽을 수 있다. 차명석은 천보성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을 듬뿍 얻으며 언제든 출격하는 마당쇠 역할을 충실히 했다. 

97시즌에서 특히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바로 무명들의 반란. 지난시즌부터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김현욱이었지만 사실 97시즌 전까지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김현욱과 동시에 무명의 한을 풀었던 선수로는 김용수와 선발 마운드를 이끌었던 최향남(LG), 개막 초 신데렐라로 떠오르며 일약 주전 2루수로 도약한 신국환(LG), 어려웠던 팀의 마운드를 ‘전천후’로 메웠던 박지철(롯데), 막강 타선의 도화선이었던 최익성과 신동주(이상 삼성)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렇듯 김현욱은 한국프로야구의 새로운 트렌드를 개척했고 비주류 선수의 도약은 결코 꿈이 아님을 몸소 보여줬다.

 

구원투수 최초 20승, 하지만 등 돌린 여론 

새로운 역사는 창조될 수 있을까. 세상에 미들맨이 20승에 도전하다니. 15주년을 맞이한 프로야구는 그만큼 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다. 김현욱의 도전에 든든한 후원자는 김성근 감독. 김 감독은 김현욱의 다승왕 만들기를 전반기부터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언론에선 ‘만들어주는 20승’으로 비춰지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논란도 적지 않았다. 

결국 9월 18일 삼성전에서 대망의 20승을 차지한 김현욱은 순수 구원승으로만 20승을 채웠고 14연승을 기록, 다승-승률-방어율 3관왕에 마침표를 찍었다.


누가 보아도 97시즌의 최고투수는 아니 최고선수는 김현욱이었다. 하지만 김현욱은 기록 만들기와 혹사 기용이란 논란 속에 여론의 점수를 잃었고 MVP는커녕 골든글러브 수상(각각 이승엽과 이대진이 수상)도 실패했다. 또 포스트시즌에서도 기대와 달리 부진, 팀의 탈락을 멍하니 바라만 봐야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쌍방울은 IMF 사태에 휘말려 모기업이 부도가 나자 국내 최고의 포수 박경완을 현대에 9억원 현금 트레이드를 해야 했고 이듬해 겨울 ‘우등생’ 김현욱도 김기태와 함께 부잣집 삼성으로 떠나야했다. 

김현욱은 비록 상복은 없었지만 혹사로 인한 주위의 우려를 씻고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중간계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김현욱 (1997) → 20승 2패 6세이브 방어율 1.88 


☞<알림> 인상적이었던 신인, 용병 선수들은 '2005년 손민한' 편에 이어 연재됩니다.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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