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6.03.10 08:16 / 기사수정 2006.03.10 08:16
K-리그 개막이 코앞 앞으로 다가왔다. 14개 K-리그 팀 선수들이 이번 시즌 화려한 비상을 위해 막바지 구슬땀을 흘리고 있지만, 유독 한 선수만은 리그 개막에 집중할 수가 없다. 바로 이적과 관련해 몸살을 앓고 있는 이동국 선수이다.
이적을 원하는 이동국과 이적 불가를 외치고 있는 포항과의 대립이 쉽사리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동국은 7일, 구단 홈페이지에 또다시 이적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포항 구단 역시 이적 불가 방침만 재천명했을 뿐이다.
시즌 전, 이러한 선수와 구단 간의 줄다리기는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선수는 더 나은 조건과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도전이고, 구단으로서는 팬들의 입장까지 대변해야 해 프렌차이즈 스타일 경우 쉽사리 이적에 동의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동국 이적설, 누가 먼저?
이번 이동국 이적 파장은 지금까지 흔히 볼 수 있었던 이적 관련 시나리오가 아니다. 지난달 28일 이동국이 포항의 홈페이지에 이적을 원한다는 글을 남겼고, 3일 포항 구단이 이적 불가를 선언했었다. 선수가 원하고 구단이 반대하는 양상이었다.
ⓒ 엑스포츠뉴스 박효상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하지 않았다. 사실 포항은 내년이면 FA 자격을 획득하는 이동국이란 존재에 대해 부담을 느껴왔다. 물론 구단이 가장 잃고 싶지 않은 것은 이동국 선수겠지만, '자립형 시민 구단'을 향해 달리고 있는 포항으로서는 30억 이란 현금에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이동국 선수가 FA가 되면, 구단으로서는 원하는 만큼의 이적료를 챙기기 힘들다. FA(Free Agent), 말 그대로 선수 스스로가 이적할 수 있는 자격을 땄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해외로 진출한다면 더 난감해진다. FA 자격으로 해외에 이적 선수에게는 이적료 없이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동국에게 구단이 가질 수 있는 욕심은 이적료이다. 이는 프로에서 구단이 당연히 가져야 할 욕심이고 논리이다. 더군다나 완전한 자립형 구단을 추구하고 있는 포항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해 지난 대표팀 전지훈련 기간 중에 이동국의 이적설이 흘러나왔다. 구단이 먼저 움직였던 것이다. 당시 포항 구단은 이동국의 이적설과 관련하여 이적 불가를 선언하지 않았었다. '선수가 원한다면'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사실상 이적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면서 포항이 이동국을 원하고 있는 국내 팀들과 이미 접촉하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했으며, 구체적인 팀 이름과 금액까지 거론되며 이동국의 이적은 기정사실화 되는 듯했다. 이동국도 내심 이적에 관한 욕심이 있었는지, 반발 없이 타 팀이나 해외로 이적해 새로운 도전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헌데 지난 3일, 이적을 추진하리라 생각했던 구단이 말을 바꿨다. 국내 팀으로는 절대 이적 불가 방침을 통보한 것이다.
▲포항 스틸러스, 민심이 무서웠다.
그렇다면 포항은 왜 돌아선 것일까? 구단 측에서는 이동국에 대해 계약 규정을 들며 원칙적인 답변으로만 일관하고 있지만, 포항이 이동국의 이적을 반대하고 나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민심' 때문이었다.
포항 스틸러스의 주주인 포스코는 한국 축구팬들에게 매우 좋은 평가를 들어왔다. 포항과 전남에 두 개의 축구팀을 지원하고 있고, 두 개의 전용 구장을 가지고 있으며, 끊임없이 축구에 묵묵히 투자하고 후원하는 기업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얼마 전 SK의 연고지 이전 사태 때, 포스코는 반사이익을 받으며 축구팬들에게 더 많은 박수를 받았었다. 실리를 쫓지 않는, 그야말로 축구를 서포터 하는 기업이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었다.
간판 골키퍼였던 김병지를 서울로 이적시킨 포항은 이동국의 이적설까지 흘러나오자 지역 팬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고, 이동국의 이적설에 힘을 잃고 말았다. 자립형 시민구단이라는 포항은 구단을 운영하는데 실질적인 금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지역 시민 즉 팬들의 응원과 관심도 절대적이다. 이런 포항이 돈 때문에 민심을 잃는다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축구를 사랑하는 기업이란 평가를 받아왔던 포스코에도 좋지 않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었다.
결국, 구단의 가까운 미래를 위해서는 이동국을 이적시켜야 했지만, 더 멀리 보니 이동국의 이적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특히 구단의 이미지와 민심이 그랬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자, 포항은 이동국이 구단 홈페이지에 '이적을 희망하니, 팬들의 양해를 구한다.'라는 글을 올린 지 4일 만에, '이적 불가'란 방침으로 방향을 선회했던 것이었다.
물론, 포항이 마음을 바꿔 먹긴 했지만 포항의 변심은 유죄가 아닌 무죄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포항으로서 힘든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이번에도 포항은 실리를 쫓지 않고, 팬들과 포항의 축구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처음부터 심사숙고하지 않고 내린 결정의 후유증이 선수를 통해 새나오고 있는 것에 있다. 현재 이동국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적을 결심했던 상황에서 뒤늦게 구단이 이적 불가를 선언하면서 모든 것이 뒤엉켜 버렸다.
지난 7일, 이동국은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다시 한 번 이적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포항의 사정은 잘 알지만 이만큼 틀어져 버린 일을 다시 처음으로 돌리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포항 구단도 이동국에게 강한 압박을 사용하지 못하고, 기다리며 회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으레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구단은 '임의탈퇴선수'로 공시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 일쑤인데 포항은 조용하다. 되려 이동국에게 매달리는듯한 인상까지 풍긴다. 이렇게 포항의 태도가 온순한 이유는 바로 이동국의 이적을 놓고 먼저 움직인 쪽이 포항 구단이기 때문이다.
이동국은 포항이 국내 타구단으로 놓아주지 않을 경우, 포항에서 이번 시즌을 뛰던가, 아니면 계약 조항을 이용해 해외로 진출하는 수밖에 없다. J-리그의 몇몇 팀이 꾸준한 오퍼를 보내오고는 있다지만, 유럽 리그 외에는 큰 매력을 느끼고 있지 못한 터라 그도 쉽지 않다. 현재 분위기라면 '무적선수'가 될 가능성마저 있다.
잔류나 이적이냐, 아니면 임의탈퇴선수로 남느냐. 꽁꽁 얼었던 만물이 깨어나는 이 봄에, 이동국과 포항의 마음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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