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6.03.05 14:58 / 기사수정 2006.03.05 14:58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것이 세상사이지만 생각보다 너무나 일찍 찾아온 운명의 순간이었다. 박규선, 박동혁, 김형범, 제 칼로. 1년이 되지도 않는 시간 만에 서로의 유니폼을 맞바꿔 입은 이들 네 명이 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슈퍼컵에서 친정팀들을 상대로 서슬퍼런 칼날을 갈았다.
겨울이적 시장이 한창이던 지난 1월 9일. 울산과 전북은 김형범+추가현금과 박동혁, 박규선의 맞트레이드를 발표했다. 현영민, 김정우의 이적으로 측면 미드필더와 수비자원의 보강이 시급했던 울산이었고 총체적인 부진을 보였던 지난 시즌에서 완전한 탈바꿈이 필요한 전북이었다.
각각 2002년과 2004년 전북과 울산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한 박동혁과 김형범은 프로에 발을 디딘 뒤 처음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네 시즌 동안 전북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 해 온 박동혁이나 두 시즌 동안 울산의 슈퍼 서브로 맹위를 떨친 김형범 모두 아쉬운 마음 가득했다. 특히 김형범은 지난 시즌 중반에 당한 무릎 부상으로 울산의 정규리그 우승에 함께 뛰며 기뻐하지 못했던 선수,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울산의 우승을 기원할 필요는 없었다.
박규선은 이적은 또한 이들과 다르다. 2000년 서울체고를 졸업하고 프로무대에 뛰어든 박규선이 처음 몸담았던 구단이 바로 울산이다. 2001년과 2002년 많은 경기를 출전하며 입지를 다져온 박규선이었지만 최성국, 이천수, 전재운, 정경호 등 유사포지션의 경쟁자들이 울산에 대거 등장하면서 결국 2004년 전북으로의 이적이 결정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적 후 박규선은 팀의 주전으로 급부상하며 올림픽 대표와 국가대표에까지 뽑히는 등 상승세를 이어갔고 결국은 새롭게 거듭난 모습으로 울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제 칼로의 이야기를 해 보자. 2004시즌 컵대회를 앞두고 울산에 브라질 특급 한 명이 영입되었으니 괴물용병 카르로스, 바로 지금 전북의 제 칼로다. 실로 가공할만한 득점력을 선보인 카르로스는 그해 출전한 19경기에서 14골을 터트리는 괴력을 선보였다. 당시 울산의 최전방을 지키던 또 다른 브라질 특급 도도가 카르로스와의 주전경쟁에 뒤처지며 결국 이듬 해 울산을 떠나야만 했다.
그 이듬해, 카르로스는 여전히 높은 골결정력을 과시하며 전기리그 시작까지 9경기 5골의 기록을 세워나갔다. 하지만 이 같이 빼어난 기량만큼이나 다혈질적인 성격과 그라운드에서의 매너 없는 플레이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2005시즌 울산과 서울의 전기리그 개막전, 카르로스는 이 경기에서 전반전에는 벤치의 지시를 어기고 고집스럽게 PK를 차서 실축을 하더니 후반전에는 상대를 가격하며 경고누적으로 퇴장까지 당하게 된다.
결국 이 경기가 울산에서 뛰었던 마지막 경기, 1년간의 임대기간이 끝나 재계약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브라질 구단과 카르로스가 터무니없는 몸값요구를 했고 울산은 깔끔하게(?) 카르로스를 포기하고 마차도를 데려와 우승을 일궈냈다.
전북과 울산에 얽힌 이 네 명의 사연은 또 있다. 지난 시즌 울산과 전북은 세 차례 맞붙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상대전적은 울산이 2승1무로 우세, 하지만 상대전적과 상관없이 재미잇는 것이 이들 네 명 모두가 지난 시즌 세 차례의 맞대결에서 상대팀의 골네트를 흔들었다는 점이다.
지난 3월13일 2:2 무승부를 거두었던 컵대회에서 전북은 박동혁이, 울산은 카르로스가 골을 터트리며 지금의 소속팀에 비수를 꽂았고 5월 22일 전기리그에서는 김형범이 1:0의 승리를 거두는 결승골을 뽑아내며 전북을 울렸다. 그리고 울산의 PO향방이 달려있었던 11월 9일 후기리그 최종전에서 전북의 박규선이 2:0으로 앞서는 두 번째 골을 터트리며 울산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인 바 있다. 다행이 울산이 3:2로 역전승을 거두며 극적으로 PO에 진출했지만 잘못했으면 박규선의 득점에 9년의 꿈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던 울산이었다.
그 때로부터 불과 몇 달이 지난 후, 운명의 장난처럼 서로의 유니폼을 맞바꿔 입은 이들 네 명은 나란히 울산과 전북의 슈퍼컵에 스타팅으로 나서 친정팀을 괴롭혔다. 공격 2선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준 박규선과 김형범, 창과 방패로 몸을 부딪친 제칼로와 박동혁. 이 날 경기에서 그 누구보다 매서운 몸놀림을 보여주었던 네 선수였다. 비록 어느 누구도 친정팀에 골이라는 비수를 꽂지는 않았지만 바뀐 팀에서 함께 어울리며 활약하는 모습은 그들의 새로운 출발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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