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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구장으로 이어진 상암의 목소리

기사입력 2006.03.05 14:57 / 기사수정 2006.03.05 14:57

안희조 기자
 

문수구장으로 이어진 상암의 목소리


 지난 3월 1일 대한민국과 앙골라와의 평가전, 6만여 관중의 환호 속에 기분 좋은 1:0 승리를 거둔 이 날 경기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바로 검정이 되어 등장한 붉은 악마의 모습이었다. 프로축구 창단 원년멤버인 SK구단의 기습적인 제주도 연고이전에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연맹에 연고이전금지규정을 마련하라는 뜻을 담은 퍼포먼스였다. 

 써포터즈의 열정적인 응원석으로 자리매김한 골대 뒤편을 붉은 색이 아닌 검정색으로 물들인 것은 물론, 경기시작 10분 동안의 침묵시위를 펼치고 ‘연고이전반대’등의 구호를 외치며 그들의 뜻을 알리려 했다. 

 3월 1일 상암구장에 울려 퍼진 붉은악마의 목소리는 사흘 후인 3월 4일, 고스란히 슈퍼컵이 열린 울산 문수구장으로 이어졌다. 비록 경기장의 관중석은 가득차지 않았고 써포터즈의 목소리도 상암의 것과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연고이전의 부당함을 알리려는 그들의 의지는 다르지 않았다. 경기 시작 전, 자신이 응원하는 클럽의 써포팅 송을 부르는 대신 ‘연고이전 반대’를 소리내어 외쳤고 경기시작 10분 동안은 상암에서 그랬던 것처럼 침묵시위를 벌여 경기장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홈팀인 울산과 먼 원정길에 나선 전북 써포터즈 모두 다를 것이 없었다.


 비록 경기가 시작되고 서로를 상대하게 되면 그 누구보다 철전지 원수가 되는 그들이지만 그 이전에 K리그를 사랑하고 나아가 한국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의 한 명일 뿐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한 목소리로 ‘연고이전반대’를 외치며 동지가 될 수 있었다. 


왜 그들은 또 다시 외로운 절규를 하는가?


 지난 2월 2일 SK구단의 갑작스런 연고이전 발표 이후 FC서울을 제외한 K리그 12개 구단과 K2리그 구단, 붉은악마는 ‘연고이전반대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연고이전 반대의사를 표명하기로 나섰다. 이 연고이전비대위가 바로 3.1절 퍼포먼스를 계획했던 주체였다. 자연히 상암에서 외친 붉은악마의 목소리가 여러 구단 서포터즈로 옮겨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연고이전비대위에 함께한 많은 클럽 써포터즈들은 상암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를 자신들의 연고지 클럽까지 가져왔다.


 또한 각 구단 써포터즈들이 연고이전 반대에 발 벗고 나선 이유는 단순히 부천SK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함을 넘어선다. 연고이전으로 인한 부천의 아픔은 언제든 자신들의 아픔이 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로 2005년 2월 2일, 안양에서 서울로 홈그라운드를 옮긴 GS의 연고이전 이 후 불과 2년 만에 SK의 연고이전이 터져 나왔고 이제는 시민구단을 제외한 어느 구단도 연고이전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연고이전의 퍼포먼스 역시 SK의 부천 회귀가 아니라 더 이상의 연고이전이 없도록 명문화를 시키는 것에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가시밭길이나 다름없다. 상대는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이고 주류 언론들은 이들의 목소리를 크게 귀담아 듣지 않는다. 게다가 앙골라전 퍼포먼스를 통해 무작정 연고이전 반대를 외칠 경우 함께해야 할 다른 많은 팬들의 반감을 살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그들만의 외로운 절규가 된 것이다.


 이 같이 외롭고 힘든 노력이 작금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연고이전을 반대하는 축구팬들의 자위행위로 그쳐서는 안 된다. 월드컵에 4강의 기적, 6회 연속진출의 위업, 끊임없이 등장하는 뛰어난 선수들 모두 K리그가 밑바탕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연고지 정착은 그런 K리그를 유지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팬들은 붉은악마의 퍼포먼스를 보고 ‘축제 분위기에 흥을 깬다.’, ‘특권의식에 빠진 채 순수성을 잃어버렸다.’고 까지 비판했다. 하지만 붉은악마들은 그날 역시 한국축구을 써포터 할 뿐이었다. 그들은 K리그가 있었고 K리그를 찾아주는 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표팀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 K리그의 근본이 될 수밖에 없는 연고이전이 축구를 상업적 기업논리로만 계산하는 한 대기업에 의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에 개탄하고 그 부당함을 알리려는 것 뿐. 붉은 악마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써포터이기 이전에 한국축구의 자체의 발전을 기원하는 단체이다.


 축제의 자리에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나고, 붉은 악마를 비롯해 연고이전의 피해를 입지 않은 다른 써포터까지 목청 높여 ‘연고이전반대’를 외치는 이유는 결코 먼 데 있지 않다. 많은 팬들이 원하는 한국축구의 발전,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왜 그들이 이렇게 힘겨운 길을 걷고 있는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그러길 위해 그들은 또 ‘연고이전반대’를 외치는 것이니까.





안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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