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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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만찬' 노승일·박창진이 밝힌 국정농단·땅콩회항 [종합]

기사입력 2019.05.31 22:54 / 기사수정 2019.05.31 22:59

유은영 기자

[엑스포츠뉴스 유은영 기자] 노승일 씨와 박창진 씨가 국정농단, 땅콩회항 등에 대해 말했다.

31일 방송된 KBS 1TV '거리의 만찬'에 노승일 씨, 박창진 씨가 등장했다. 노승일 씨는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이자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국정농단의 핵심 증인이다. 박창진 씨는 땅콩회항 사건의 진실을 알린 피해 당사자로 현재는 노동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

노승일 씨는 독일에서 각종 자료를 모아 메모리 카드에 넣고 신발 밑창에 숨겨서 귀국했다. 이와 관련 노승일 씨는 "당시에 방법이 세 가지였다. 외장 하드와 USB, SD카드였다. 왜 세 가지로 나눴냐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한국으로 올 때 누군가가 몸수색을 할까 봐 두 개는 뺏겨도 하나는 지키고자 했다"고 말했다.

노승일 씨는 독일 생활 당시에 대해서 말했다. 그는 "증거 자료를 밤에 몰래 정리하는 거다. 말 관리사가 자거나 술 마시러 갔을 때 그때 몰래 스캔을 하는 거다. 메모리 카드에 집어넣어야 하니까. 스캔을 하면 소리가 나잖나. 그럼 이제 바깥 몇 번 쳐다보고 스캔하고, 스캔한 문서는 밖에 나가서 소각하고 그랬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거기가 얼마나 안전장치가 안 돼 있었냐면 자고 있는 옆의 유리가 엄청 얇았다. 그래서 머리 위에 식칼 하나 침대 밑에 식칼 하나를 두고 잤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노승일 씨는 검찰 조사에서 관련 이야기를 처음 털어놨다. 노승일 씨는 "검찰에 처음 갔을 때 거짓말로 일관했다. 검사가 내 편인지 아닌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열두시간 반 동안 검사님과 싸웠다. 싸우다가 검사님하고 담배를 피웠다. 한 개비가 아니라 연달아 다섯 개비를 피운 거다. 검사님도 같이 피우시더라. 그래서 '검사님 들어가시죠' 했더니 앉자마자 제가 검사님한테 그랬다. 검사님 조사 여기까지만 받겠다고. 지금부터 하는 말은 오프 더 레코드라고 딱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노승일 씨는 "처음에 검사님하고 앉아서 인사를 나눴을 때 검사님한테 제가 명함을 달라고 했다. 명함이 없다고 하더라. 제가 오프 더 레코드라고 하니까 서랍에서 명함을 꺼내더라. 나가서 이 명함을 보여주면 자기는 이 수사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명함을 받으면서 다시 한번 오프 더 레코드라고 하면서 네시간 반 동안 쭉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노승일 씨가 제출한 증거는 삼성이 사 준 말로 승마 연습하는 정유라의 모습, 삼성-코어 스포츠간 계약 당시 장면, 최순실이 증거인멸을 지시하는 통화 녹취, 청와대가 작성한 K스포츠재단 이사의 검찰 조사 대비 문건 등이었다.



박창진 씨는 1996년 대한항공 입사 3개월 만에 VIP 의전을 시작했다. 2005년 사무장, 2010년 팀장으로 진급했다. 2014년 12월,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하고 박창진 씨는 모든 책임을 떠안고 뉴욕 공항에 홀로 남겨졌다.

박창진 씨는 "그때 생각하면 살점이 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홀로 공항의 추위에 2시간씩 서 있다 보면 서럽다. 다시 호텔로 가야 하는데 예약이 안 돼 있으니까 주차장에서 무작정 혼자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꽤 난감했다. 그때부터 마음에 아픔이 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억측과 카더라통신 난무하는 가운데 박창진 씨는 KBS를 만나 당시 상황을 폭로했다. 회사에 계속되는 탄압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박창진 씨는 휴가와 병가를 내면서 퇴사를 고민했다. 2016년 복직을 결심하고 박창진 개인의 싸움을 넘어 동료들과 함께 직원 연대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노동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땅콩회항 당시 매뉴얼에 대해서 박창진 씨는 "저희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 오너 일가를 모시기 위해서 비행을 하게 되면 차출되는 순간부터 많게는 한 달 전부터 연습하거나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퍼스트, 이코노미 매뉴얼 교육들이 있다. 각 분야 수료를 다시 다 하고 현장에서 다시 점검을 받고 계속 연습을 한다. 연기자들이 대본 연습을 하듯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건 후 사내 보고 당시 '매뉴얼대로 서비스한 게 맞다'고 했지만, 나중에 사태를 무마시키기 위해 나왔던 답변에서는 '박창진 사무장이 매뉴얼을 몰랐다'고 했다. 땅콩은 봉지째 드리는 게 맞다. 알러지 생기는 분들이 있어서 봉지째 드리고 선택을 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박창진 씨는 당시의 진실을 알리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박창진 씨는 "열 수 있는 문이 없었다. 제가 그 당시 언론의 집요한 취재 때문에 밖에 나갈 수조차 없을 만큼 고립됐다. 그러다 밤 11시 넘어가면 공익 광고 방송 많이 하잖나. 국가인권위원회가 광고 많이 했다. 요청을 하면 적어도 도움을 주겠지 생각하고 요청했다. 연락이 왔는데, ' 민간기업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안은 인권위에서 관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세상에 내가 열 수 있는 문은 없구나, 내가 죽는 수밖에 없구나 느꼈다. 그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TV에 나와서 이야기를 한 거다"고 밝혔다.

박창진 씨는 이어 "TV 인터뷰 전 상황이 검찰에 불려가서 참고인 진술을 받는 거였다. '내가 가해자인가?' 혹은 '이 사건을 왜곡시키기 위한 조사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당신이 정말 맞은 게 맞아?'라는 질문을 하더라. 욕설을 들었다는데 무슨 욕설이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뭔가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겠다 싶더라. 검찰 측에서 당신의 비밀과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는 얘기를 듣고 나갔는데 가보니 대한항공 관계자와 변호사가 조사실 안에 와 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같은 자리에 앉혀 놓고 얘기를 하게끔 했다"고 했다.

이외에도 노승일 씨, 박창진 씨는 공익제보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enter@xportsnews.com / 사진=KBS 1TV 방송화면

유은영 기자 y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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