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11.10 12:46 / 기사수정 2009.11.10 12:46
[엑스포츠뉴스=신철현] 사람의 마음이란 묘해서 특별한 연고가 없는 한 보통 약자를 응원하게 된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강한 자는 좀 얄밉다. 우리가 그저 보통의 사람이라서일까
그런데 예외도 있기는 하다.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 수줍은 듯 웃는 선한 미소, 볼록 나온 배까지. 그저 옆집 아저씨 같은 평범함 속의 비범함으로 우리를 매료시키는 사람.
바로 '60억분의 1'로 불리는 격투황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33,러시아)이다. 완벽한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얄밉지가 않다.
그에게는 완벽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있다. 완벽해 지기 위해 매번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이 아닐까
지난 8일(한국시간)미국 시카고 시어스센터 아레나에서 열린 '스트라이크포스'에서 표도르는 브렛 로저스 (28,미국)와 피할 수 없는 한판을 벌였다. 로저스의 경우 신예라고는 하지만 10전 전승에 8승은 1라운드에 끝낸 핵주먹의 소유자에다가 표도르보다 한참 더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상대이다.
경기를 보려 하니 가슴이 뛴다.
일부의 표도르 팬들이 시합마다 말하는 '이번 경기를 끝으로 표도르는 이제 경기를 그만하고 전설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이해가 되기도 하는 순간이다.
저 무패의 황제가 지는 모습은 못 볼 것 같고, 경기장도 링이 아닌 철망에서의 첫 시합이라 내 마음도 불편하다.
1라운드가 시작되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선제공격을 시작한 표도르지만 로저스의 잽공격에 콧등이 찢어지며 출혈이 생긴다. 그러나 곧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며 표도르의 특기인 '얼음 파운딩' 공격으로 로저스에게 파운딩 지옥을 보여주는가 싶었는데, 예상외로 위기상황을 잘 극복하는 로저스였다.
그 후 표도르는 그라운드 상황으로 몰고가 기무라공격을 시도하였으나 로저스의 스윕으로 상위포지션을 내주며 도리어 파운딩을 허용하여 안면부에 많은 출혈을 보였다.생각한것 보다 로저스가 강하다는 느낌이었다.
2라운드에 들어서자 표도르는 로저스와 클린치공방을 벌이다가 어느 순간 엄청난 핸드스피드를 자랑하듯 짧은 순간 무려 14연타의 펀치 러시를 퍼부었지만 무위로 끝나버렸다. 그러나 도전자의 선전은 여기까지였다.
2라운드 1분40여 초가 지나는 시점. 로저스의 왼쪽 주먹이 나오려는 순간, 표도르는 한 템포 더 빠르게 체중을 실은 라이트 훅을 정확하게 상대의 턱에 명중시키며 TKO승리로 경기를 끝내 버렸다.
황제의 전설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매번 그랬듯 경기전 했던 긴장이 이번에도 사치였나 싶었다. 표도르의 이날 경기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경기에서의 침착성과 냉정함,그리고 위기관리 능력과 상대의 단점을 읽어내는 능력등, 그가 왜 ‘격투황제’라고 불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경기였다.
1라운드 초반에 시작된 출혈이 후반에는 얼굴을 덮을 정도였지만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무서울 정도로 동요됨이 없이 경기를 풀어나가는 걸 보면 그의 침착성과 냉정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보통 상대의 파운딩 공격을 허용하면 그 충격은 상당하다. 이날 표도르는 거구의 로저스에게 파운딩을 허용하였지만 정신을 잃지 않고 그 순간에도 암바기술을 시도할 틈을 노려 시도하는 걸 보면 생각보다 맷집도 좋고 위기관리 능력이 탁월 하다는걸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표도르의 최고 장점은 시합도중이라도 상대의 단점을 알아내고 그 약점을 파고들어 자신의 승리로 이끌어 내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표도르가 시합후 인터뷰에서 "1라운드를 보내면서 로저스의 약점을 알아냈다"고 한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영리한지 알 수 있다. 표도르의 경기가 끝나면 항상 소수의 격투팬들 사이에서 꼭 나오는 소리가 있다.
UFC의 파이터들과도 싸워서 최고의 강자라는 걸 증명하라는 일명 '표도르 검증론’이다. 현재 표도르는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격투선수들조차도 인정하는 최강의 사나이다. 미들급 정도의 체격을 가지고 강자들이 우글거리는 헤비급을 평정한 사나이에게 더 이상
무슨 검증이 필요할까? 자기관리를 게을리하지 않는 한, 황제를 이길 수 있는 건 세월뿐… 이날 브렛 로저스도 훌륭했다. 그러나 이 훌륭한 도전자가 한가지 잊은 것이 있는듯하다.
앞에 서 있는 상대가 '황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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