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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 Letter] 홍명보의 소신발언 '드래프트 제도'와 'J-리그 진출'

기사입력 2009.10.23 00:23 / 기사수정 2009.10.23 00:23

정재훈 기자



[엑스포츠뉴스=정재훈 기자] 표면적으로 이날 기자회견의 성격은 성공적으로 끝마친 FIFA U-20 월드컵에 대한 공식적인 축하와 3년 앞으로 다가온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팀을 맡게 된 홍명보 감독의 소감과 함께 감독으로서의 행보와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대회의실에서의 딱딱한 기자회견이 아닌 기자실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간담회를 생각했을 정도로 조촐하면서도 화기애애한 자리가 애초의 목적이었다.

멋들어진 회색 양복을 입고 나타난 홍명보 감독은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응원한 국민의 많은 관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라는 인사말로 운을 띄웠고 이번 U-20 월드컵 대회를 마친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대회를 마치고 느낀 아쉬움과 성과를 얘기하는 도중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대한 것으로 넘어갔다.

3년 뒤에 있을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진행하던 중 이제 관심은 이번 U-20 월드컵에서 뛰었던 대표팀 선수를 향했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지금 선수들의 발전 방향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답과 달리 홍명보 감독의 대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8강이라는 성적을 거둔 현재) 대표팀 선수들 대부분이 올림픽에 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은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도 세계 정상과는 벽이 있지만 3년 뒤에는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도 있다."라는 홍명보 감독의 이어진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J-리그'와 '드래프트제도'였다.

홍명보 감독은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현재 U-20 대표팀에는 4~5명의 선수가 일본 J-리그에서 뛰고 있고 4~5명의 선수가 J-리그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어린 유망주들이 K-리그를 배제한 채 J-리그를 선호하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이다."라며 어린 선수들에 대해 진심 어린 걱정을 털어놓았다.

이어서 홍명보 감독은 "유망주들이 해외로 나가 경기에도 뛰지 못하고 임대를 전전한다면 (올림픽이 있을)3년 뒤가 아니라 10년이 지나도 발전이 없다. (연맹에서) 폭넓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어린 선수들을 해외로 보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운동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의 걱정과 달리 현실적으로 어린 선수들의 해외 진출(특히 J-리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드래프트제도'와 J-리그와 달리 한국 유망주에 관심없는 K-리그 클럽의 태도 때문이다.

2006년 이후 자유계약 제도가 폐지된 현 상황에서 선수들이 프로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드래프트 제도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것마저도 바늘구멍이다. 매년 드래프트 장에는 선택받지 못한 수많은 선수가 고개를 떨어뜨리며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레 상대적으로 프로 진입이 용이한 일본 진출로 방향을 선회한다.

또한, 억만금을 싸들고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J-리그와 달리 국내 K-리그의 클럽은 선수 영입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물론 이것도 드래프트 제도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공들여서 키운 선수를 추첨에 의한 복불복으로 다른 클럽에 빼앗기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클럽팀 입장에서는 굳이 어린 선수를 공들일 필요가 없어진다.

게다가 J-리그 클럽이 제시하는 돈은 1순위로 뽑혀도 계약금 없이 연봉이 단돈(?) 5,000만 원에 불과한 K-리그와 달리 조건도 훨씬 좋기 때문에 선수의 입장에서는 더욱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한평생 축구에 목숨을 바친 선수의 입장에서는 시쳇말로 돈도 덜 주고 선택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드래프트 제도에 굳이 도전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을 뻔히 알고 있고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지만 드래프트를 고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자유계약 제도가 부활한다면 돈이 많은 부자 클럽이나 수도권 클럽이 좋은 선수를 싹쓸이하게 되고 선수의 몸값은 눈덩이처럼 부풀려지게 된다.

선수들 역시 수도권에 있는 대도시를 원하기 때문에 가난한 지방 시민구단은 상대적으로 선수 영입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연맹에서는 이런 양극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내놓은 대책이 드래프트 제도의 재도입이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상황에서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래프트가 가장 좋은 대책이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연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하지만, 기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이 문제의 드래프트 제도가 (없어질 경우 다소간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 축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장이 빠른 20세 안팎의 어린 선수들은 자신과 어울릴 수 있는 팀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본인을 원하고 잘 이끌어줄 수 있는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이 드래프트 제도는 오히려 한창 성장할 선수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드래프트에서 뽑힌 선수는 정작 본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팀이나 감독의 품에 안기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드래프트에서 선택받지 못한 많은 선수는 해외로 빠져나가게 되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많은 돈을 받고 소속팀의 주전으로 뛸 수만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선수가 후보에 머물거나 임대를 전전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외국 생활을 하는 것도 서러운데 경기에 나서지도 못하고 있다. 물론, K-리그에서 뛴다고 해도 주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농담을 곁들인 홍명보 감독의 말처럼 K-리그에서는 따뜻한 밥과 집이 보장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이번 U-20 월드컵을 통해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김민우(연세대)나 김보경(홍익대) 같은 대학생 선수들이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J-리그로 향한다면 누구를 탓할 것인가. 아니 J-리그로 가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J-리그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임대생활을 전전하다가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해 버린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확고한 신념이 있어서 J-리그로 떠나는 선수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드래프트 제도를 피하기 위한 도피책으로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 우리 축구의 소중한 보석을 떠나보내고 있다.

한국은 이번 U-20 월드컵에서 8강이라는 값진 성과로 미래의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많은 선수가 K-리그가 아닌 J-리그를 바라보고 있다.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홍명보 감독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소중한 발언을 했다. 홍명보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의 주역이자 감독 데뷔한 첫 대회에서 8강이라는 성적을 거두며 현 축구계에서 파워를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더군다나 무서운 네티즌들조차도 홍명보 감독을 지지할 정도로 그의 존재감이 크다.

가끔은 이런 큰 존재감을 갖춘 사람의 한마디가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친 것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곤 한다. 하루아침에 이런 제도적인 문제를 갈아 없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홍명보 감독의 발언을 기점으로 축구계의 인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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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명보 감독과 u20 대표팀 (C) 엑스포츠뉴스 DB]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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