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인터뷰①에 이어) 중년 여성 4인방이 백화점에서 시원하게 수다를 풀어놓는다. 한물 간 연속극 배우, 성공한 전문직 여성, 전업 주부와 웰빙 주부까지 각기 다른 네 여자가 뮤지컬 '메노포즈'의 주인공이다. 백화점 란제리 세일 매장에서 만나 실랑이를 벌이는 이들은 살아온 배경은 달라도 공통된 고민을 지녔다. 바로 '갱년기'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 뮤지컬 '메노포즈'는 중년 여성의 고민인 우울증, 노화, 폐경 등 심각한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배우 황석정은 60년대를 동경하는 채식주의자로 귀농해 남편과 함께 살지만 불면증에 시달리는 웰빙 주부 역을 맡아 웃음을 선사한다. ‘베르나르다 알바’에 이어 또 한 번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에 출연 중이다.
“뮤지컬 도전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 들어왔어요. ‘베르나르다 알바’는 (정)영주가 ‘네가 이 역할 하면 괜찮겠다’해서 오케이 했어요. 작품을 모르고 한 거죠. 어떤 작품이든 무슨 역이든 상관없다고 했어요. ‘메노포즈’도 여자들만 나온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무슨 역이든 상관없었어요. 공교롭게도 여자만 나오는 작품을 연달아서 했는데 의미 있어요.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갑갑해하고 힘들어하는 여성이 자유롭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어요. 내게도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 했죠.
음악극 ‘천변살롱’도 여성의 입장에서 연기했거든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주르륵 그런 공연만 한 건 분명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변화의 시점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내게도 의미 있지만, 여성이라는 억압된 약자가 자기 소리를 낸다는 사회적인 의미도 있어요. 다양성을 인정 받지 않을까 해요. 여성이라고 하면 캐릭터가 정해져 있고 강요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이제는 인간으로서 독립된, 다양성을 인정받는 시점이구나 해요. ‘메노포즈’는 그런 마음을 먹을 때 온 작품이고 그럴 때 온 작품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전에는 이렇게 좋은 작품인지 몰랐던 거죠. 하하.”
드라마, 뮤지컬, 연극, 소설 등 보통의 여성을 조명한 작품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황석정은 “변화가 반갑다”고 이야기했다.
“여성 배우다 보니 직접 많이 부딪혀요. 작품의 내용이 단정적이고 여성 캐릭터가 많지 않아 폭이 좁아요. 외모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니 곤란한 적도 많았어요. 절망할 때가 많았죠. 나는 그 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선택권을 쥔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편견의 대상이었죠. ‘TV에 절대 못 나갈 거다’, ‘너 같은 애가 왜 이 역을 하냐. 뭐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제 캐릭터가 고분고분하지 않잖아요. 남자 동료 배우들도 그렇게 대하더라고요.
그 시대를 겪었기 때문에 이렇게 돼 반가워요. 하지만 다 지났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사고가 변하진 않거든요. 할수 없이 자유로운 척하지만 속에서부터 바뀌려면 뿌리부터 달라져야 해요. 어쨌든 이런 얘기를 소리내기 시작하는 시대로 접어들었고 자기 생각을 얘기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을 하면서 확신이 들어요.”
‘메노포즈’ 속 한물간 배우는 나이와 투쟁하며 자기 관리에 온 신경을 몰두한다. ‘나이 들수록 배역이 없어진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황석정 역시 여배우로서 공감한단다.
“젊은 친구들이 맡을 배역이 훨씬 많죠. 남자는 달라요. 나이든 남자들이 멋있어 보이는 역들이 많잖아요. 그것도 바뀌지 않을까. 그러려고 애를 써왔고요. 저도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자란 세대잖아요. 나이가 든다고 역할이 한정되는 일은 없어졌으면 해요. 요즘 느낀 건 여자가 나이 들어도 아름답다는 거예요. 열심히 사는 걸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원래 그녀들도 아름다웠고 멋있는데 그동안 아름다움에 편견을 갖고 있던 것 같아요.”
국내 외에서 여성 배우들은 남주인공을 서브하는 한정적인 역할 등을 주로 맡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주체성을 갖춘 여성 캐릭터, 또 여성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푸는 작품이 늘어났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전석 매진됐어요. ‘메노포즈’도 관객이 너무 좋아해요. 첫 선을 보인지 10년이 됐는데 남성 관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옛날과 달리 남자들끼리도 함께 찾아와 즐기는 분위기죠. 앞으로도 조금씩 변할 것 같아요.” (인터뷰③에서 계속)
khj3330@xportsnews.com / 사진= 윤다희 기자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