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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박스] 맨유전의 '굴욕'은 K-리그에겐 '기회'다

기사입력 2009.07.28 09:18 / 기사수정 2009.07.28 09:18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FC서울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친선 경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한국의 축구팬들은 잉글랜드에 가지 않고도  '세계 챔피언' 맨유의 기량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상암에는 오랜만에 축구 축제 분위기가 펼쳐졌다. 맨유는 50억 원가량으로 추산되는 수익을 남겼고, 스폰서 기업조차 300억 원대의 홍보효과를 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맨유의 방한에 맞춰 프로축구연맹이 K-리그 정규리그 일정까지 변경하고, 서울의 홈경기장을  6만 5천 명이 운집해 박지성의 이름을 부르고, 루니의 플레이에 열광하며 전광판에 비친 퍼거슨의 모습에 환호하는 맨유의 '팬 미팅' 장소로 전락시켰다는 것에 대해 K-리그의 '굴욕'이란 표현까지 사용했다.

어떤 이들은 서울이 맨유를 상대로 비록 패배했지만  '펠레 스코어'의 좋은 경기 내용을 펼친 것을 칭찬했지만, 그 반대에선  맨유가 1.5군으로 나선데다 경기를 설렁설렁 뛰었기 때문일 뿐이라며 비교 자체를 거부했다.

하지만, 맨유전의 '굴욕'은 오히려 서울, 나아가 K-리그가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서울의 분전이 K-리그에 주는 깨달음

서울은 다시 패배했지만 2년 전처럼 무력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멋진 경기를 펼쳤다. 퍼거슨 감독조차도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 같다"며 칭찬했고, 박지성도 예상 외로 강한 전력의 서울에 "당황했다"는 표현을 썼다. 'K-리그 1위 팀' 서울로서는 K-리그의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경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이 이날 경기에서 잃은 것은 승리뿐이었다. 팀의 어린 유망주들에는 축구 인생에 도움이 될 경험을 선사했고 서울에 대한 축구팬들의 인지도 면에서도 큰 이득을 얻었다. 경기를 지켜본 상당수의 평범한 축구팬들은 서울과 K-리그의 경기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얻었을 것이다.

이날 경기 후 기자에게 맨유를 상대로 한 서울의 플레이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대표팀이나 유럽 축구에는 관심이 많지만 K-리그는 잘 모르던 이들이었다. 특히 이날 맹활약한 데얀과 아디, 이승렬 등 국가대표팀 경기만 봐서는 알기 힘든  K-리거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서울의 선전이 정말로 맨유가 성의없이 뛴 결과일 뿐이었다면, 오히려 10만 원짜리 입장권을 사고 들어온 관중에게 강팀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축구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서울의 플레이가 훨씬 값진 것이었다는 반론의 근거가 더 탄탄해지는 셈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객관적인 입장으로 경기를 바라봤을 때 그날 경기장의 분위기는 온전히 맨유쪽으로만 쏠렸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맨유 뿐 아니라 서울의 멋진 플레이나 골이 나올 때에도 큰 환호성과 박수가 나왔다. 데얀이 두 골을 넣은 뒤엔 그가 공을 잡을 때마다 함성이 터져나왔고, 아디가 개인기로  루니와 안데르손을 제치는 장면, 기성용의 날카로운 슈팅이나 김승용의 빠른 발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그날 경기장에 모인 대다수가 맨유의 팬이기 이전에, 재밌는 축구경기 즐기러 온 '평범한' 축구팬이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꿔 말하자면 K-리그가 하지 못했던 (서포터즈가 아닌) 평범한 축구팬들을 경기장에 모으는 일을 맨유가 했을 뿐이라는 얘기다. 

솔직히 말하자면 K-리그의 서울과 맨유전의 서울은 약간 차이가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이날 서울 선수들의 플레이는 흡사 월드컵에서 뛰는 대표팀과 같았다.  악착같은 수비와 집중력을 가진 공격, 패기 넘치는 플레이 등은 마치 맨유가 프리미어리그 정규시즌을 치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주었다.

그러나 K-리그에서의 서울은 과연 그 정도였을까? 대답은 '아니다.' 그렇게 수비를 열심히 하고 패스와 슈팅에 혼신을 다하며 '한 차원 높은 축구를 구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서울은 정말로 오랜만에 봤다. 무려 K-리그 1위 팀인데도! 불행히도 이 얘기는 서울뿐 아니라 K-리그 모든 팀에 해당된다.

K-리그가 유럽리그와 비교를 당할 때마다 그 이유로 경기력 미달, 마케팅 및 승강제의 부재, 중계방송 횟수 부족, 카메라 앵글의 차이, 심판의 미숙한 경기 운영 등을 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전의 칼럼에서 밝혔듯이, 가장 내적인 문제는 선수들이 경기에서 자신들의 모든 것을 쏟아내지 않는다는 점, 즉 승리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최선'이란 말의 기준을 제시하자면, 월드컵이나 A매치에 선수들이 나설 때와 K-리그 경기에서 뛸 때의 차이를 말하고 싶다. 물론 선수들이 K-리그를 성의없이 뛴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경기에 대한 사명감(혹은 애국심)을 가지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내며 120%의 기량을 발휘하며 뛰는 선수들조차도 K-리그에만 오면 '그때 그 선수'가 맞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즉, 대표팀에서 뛸 때만큼의 사명감이 K-리그에선 온데간데없어 진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하위권으로 갈수록 극심해진다.

그러나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대표팀에서나 클럽에서나 동일한 자세를 유지하며 경기에 나선다. 오히려 클럽에서 더 열심히 뛰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프로로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즉, K-리그 경기가 재미없는 것은 수준의 문제보다 자세의 문제가 선행한다는 얘기다.

이런 K-리그의 문제점이 맨유를 상대로 한 서울의 선전으로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났다는 것은 상당히 역설적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의 맨유전 선전은 서울뿐 아니라 K-리그 전체에도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를 기회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서울-수원'슈퍼매치', 깨달음을 실천할 절호의 기회

FC서울과 수원 삼성은 K-리그 최고의 더비 매치다. K-리그에 관심이 없는 이들조차도 '서울과 수원의 경기는 볼만 하다'라는 인식이 깔려있을 정도다. 서울-수원 경기는 이제 라이벌전을 넘어서 한국 축구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8월 1일 수원 빅버드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서울-수원의 K-리그 18라운드는 맨유 방한 이후 한국땅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축구 경기다. 상암벌을 가득 채웠던 맨유전의 축구 열기를 K-리그로 고스란히 가져올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다.

하지만, 단순히 K-리그 최고의 라이벌전이란 사실이 흥행을 보장하진 않는다. 명성에 버금가는 명승부만이 K-리그에 대한 큰 관심과 함께 팬들의 인식의 변화까지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실례로 K-리그 최다관중 기록이 세워졌던 2007년 4월 8일 서울과 수원의 경기를 살펴보자. 이때 당시 무려 55,397명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으며 K-리그 최다관중기록을 경신했는데, 이를 가능케 했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앞서 3월 21일에 있었던 맞대결이었다. 그 경기에서 수원은 마토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이후 서울이 박주영의 해트트릭과 정조국의 쐐기골로 역전하며 서울의 4-1 승리로 끝난 바 있다.

점수 차는 컸지만 두 팀에서 총출동한 K-리그 최고 스타 선수들은 매 순간 감탄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격정적이고 '최선'을 다한 경기를 펼쳤다. 최근 몇 년간 K-리그 최고의 명승부로 꼽힐 만했다. 이 경기에 감명을 받은 축구팬들의 입소문과 언론의 재조명을 통해 바로 이어진 라이벌전이 K-리그 최다관중 신기록을 작성하게 된 것이다.

만약 이번에도 서울-수원 라이벌전이 기대 이상의 명승부로 치러진다고 생각해보자. 당일 경기장을 찾았던 이들은 큰 기쁨과 감동을 받고 다시 경기장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경기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며 서로 친구들을 K-리그 경기장으로 데려갈 것이고, 뉴스에선 서울-수원전 하이라이트를 틀어대고 기자들은 이 빅 매치를 칭찬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K-리그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이는 잘만 활용하면 8월 8일에 있을 조모컵으로까지 이어갈 수 있다.

조모컵에서도 J리그 올스타를 상대로 K-리그 올스타가 국가대표 한일전 수준의 멘탈(경기를 대한 진지한 자세의 접근법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정신력'이 아니다)과 경기력으로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준다면 이는 K-리그의 경기력에 대한 그 어떤 마케팅과 언론의 집중조명보다도 좋은 홍보가 될 것이다.

따라서 맨유전을 치른 서울과 그들의 라이벌 수원은 자신들의 이번 맞대결이 단순한 더비 매치를 넘어서 K-리그에 중대한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으리란 사명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은 그들에게 빅클럽으로서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K-리그의 문제점은 경기력이 아니라 '자세'다.

작은 계기가 커다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맨유전에서 보여준 서울의 인상적인 경기력이 K-리그 전반으로 그 영향력을 퍼뜨릴 수 있다. 그를 위한 열쇠는 순전히 K-리그 자신에게 달려있다.

[전성호의 스카이박스] 대한민국 축구를 가장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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