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7.09 11:45 / 기사수정 2009.07.09 11:45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일분일초의 상황이 빠르게 전개되는 요즘, 세상에서 같은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수많은 스타가 명멸(明滅)하고 변화의 속도가 빠른 스포츠계에서 한자리에 머무는 일은 더더욱 힘들다.
그러나 12년 동안 스포츠 현장의 생생한 감동을 단아한 목소리로 전해주는 이가 있다. 어느덧, MBC표준FM의 주파수를 타고 흘러나오는 '이은하의 I Love Sports'는 매우 친숙한 목소리가 됐다.
이 프로그램은 2002년 첫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도중에 중단된 적도 있지만 방송이 재개돼 고정 청취자들과 재회하기도 했다. 'I Love Sports'의 진행자인 이은하(38) MC는 12년 동안 '스포츠 방송'의 외길을 걸어온 스포츠 전문 MC이다. 처음에는 여성에게 낯선 영역이었던 스포츠 분야가 두렵기도 했었다. 그러나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전문 스포츠 방송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편한 목소리로 선수들의 땀 냄새가 물씬한 현장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이은하 MC는 "처음에는 이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하지만, 스포츠의 길이 제 운명인 것을 받아들이면서부터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죠. 지금은 하루도 스포츠 소식을 듣지 못하면 못 견디는 상황에 도달했습니다"고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스포츠와 열애한 지 12년, 고달팠고 행복했던 추억의 조각들
95년 MBC라디오 공채로 입사한 그녀는 98년부터 스포츠 방송에 발을 들여놓았다. 처음에는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강했다. 스포츠 방송이 어렵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고 여성 방송인에게 생소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소한 분야에 대한 도전 의식이 꿈틀댔다. 고생은 각오했지만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스포츠에 전념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취재를 모두 접기까지 했다. 나름대로 의욕적으로 도전했지만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야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초년생 시절, 프로보다 재미가 없었던 고교야구를 하루 동안 세 번이나 관전해야 했다. 또한, 야구 취재진들 중, 여성은 유일하게 자신밖에 없었다.
지방에서 경기가 벌어지면 홀로 자동차를 몰고 그곳까지 이동해야만 했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점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스튜디오에서 편하게 앉아 방송을 하고 있는 동료를 보면 서러움도 밀려왔다.
그러나 스포츠 방송 초기에 얻은 고생은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활동적이고 근성도 강했다.
"제가 체구는 작지만 운동은 꽤 잘하던 편이었어요. 활동적인 걸 좋아하고 근성도 있는 편이었는데 이런 점이 스포츠 분야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스포츠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지 3년차가 지나자 자신감이 생겼다. 이 일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면서 스포츠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스포츠는 단순히 '승리'를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포츠 현장에는 우리 내가 살아가는 삶의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오직 현장에 가서 느낄 수 있는 점들이 많았죠. 단순히 경기만 보려면 TV로 관전하는 것이 편하겠죠. 하지만, 현장에 가면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모습과 경기가 끝난 뒤의 리얼한 표정을 한눈에 읽을 수 있어요. 특히, 현장의 생생함이 물씬 풍기는 것은 선수들의 땀 냄새였어요"
스포츠에 대한 시선이 확장되자 선수들에 대한 애정도 싹텄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선수들을 바라보면서 질문의 폭도 늘어나게 됐다. 그리고 인터뷰란 '목적'만으로 선수들에게 다가서지 않고 '인간적'으로 다가서게 됐다.
12년 동안 스포츠 현장을 누비면서 수많은 선수를 만나 왔다. 그동안 만나 왔던 모든 선수들의 추억이 특별했지만 수영선수 박태환(20, 단국대)에 대한 추억은 남달랐다.
2002년, 스포츠 전문 MC로 활약하게 된 그녀는 선수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수영 유망주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우뚝 선 박태환에 대해 이은하 MC는 이렇게 대답했다.
"태환이는 어릴 적부터 쭉 지켜본 선수였죠. 유망주 시절엔 방송국도 구경시켜주고 밥도 사줬었어요. 이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성장했는데 어릴 때나 지금이나 늘 한결같아요. (웃음)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도 늘 성실하고 겸손한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아요"
박태환 말고도 애정이 넘치는 선수들은 무척 많다. 그 많은 선수 가운데 누구를 꼭 짚어 말하는 것은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늘 한결같이 다가오는 이승엽(33, 요미우리)도 매우 특별한 선수다.
"2008 베이징올림픽 때는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풀타임으로 뛰어야 했어요. 매우 피곤한 스케줄이었지만 우리 선수단의 낭보가 들어올 때, 피로가 싹 풀렸었죠. 그 중에서도 가장 짜릿한 경기는 야구 준결승전이었어요. 한일전이었는데 극적인 홈런을 때린 이승엽 선수가 눈물을 흘릴 때, 정말 가슴이 뭉클했어요. 이승엽 선수는 국내에 있을 때부터 최고의 위치에 있는 선수였지만 겸손하고 다정한 모습은 늘 변치 않았어요"
스포츠와 여성의 궁합, 알고 보니 너무나 잘 맞더라
현재, 여성 진행자가 공중파 방송에서 스포츠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에는 이런 모습이 흔치 않았다.
스포츠는 여성들이 도전하기 힘든 영역이란 편견을 이겨낸 이은하 MC는 "저도 처음에는 스포츠란 분야가 여성들에겐 낯선 영역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 생각의 기준이 바뀌게 됐죠. 오히려 여성들의 활동이 매우 필요한 분야라는 것을 실감하게 됐어요. 스포츠 현장에서 물씬 풍겨져 나오는 ‘인간미’를 잡아내는 부분은 여성들의 시선이 적절하다고 생각하게 됐죠. 또한, 선수들을 상대할 때, 여성만이 지니고 있는 부드러움과 섬세함이 효과적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야구장에는 여성 관중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스포츠 방송과 언론 매체에 지망하는 여성들 중, 스포츠를 좋아해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분야로 들어오기 전, 스포츠와는 거리가 멀었다.
"제가 이 일에 전념하기 전, 솔직히 스포츠팬이 아니었어요. 경기장에 처음 들어선 것도 순전히 직업적인 일 때문이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저도 모르게 스포츠에 빠져들게 됐어요. 중독성이 매우 심해서 이제는 스포츠가 생활의 전부가 되어버렸죠. 스포츠는 직업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전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려서부터 운동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야구나 축구 같은 종목을 일일이 챙겨보지는 않았다. 방송 일을 하면서 우연하게 발을 들여놓은 스포츠는 '운명'으로 다가왔다. 또한, 2006년에 결혼한 평생의 반려자도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한 스포츠전문 케이블 방송사에서 야구와 농구 경기를 중계하는 정지원 캐스터의 아내이기도 한 그녀는 ‘스포츠 부부’로서 느끼는 행복감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아무래도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니 스포츠에 대한 얘깃거리는 끊이지 않아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척 재미있고 흥미진진하죠. 보통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아내와 스포츠를 가지고 '수다'를 떠난 모습은 흔하지 않은데 저희는 둘 다 스포츠 방송을 하다 보니 유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우리 딸아이는 체력이 굉장히 좋은데 무슨 운동을 시킬지 고민이 돼요"
피겨의 매력에 빠진 그녀, "저도 승냥이에요"
'I Love Sports'를 진행하면서 가장 알찼던 경험은 다양한 종목의 매력에 푹 빠졌던 점이다. 인기 종목인 야구와 축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종목이 주는 재미를 한껏 느껴본 그녀는 최근 피겨 스케이팅에 중독돼 있다.
'피겨 여왕' 김연아(19, 고려대)도 박태환만큼, 오래전부터 지켜본 선수였다. "김연아 선수의 연기는 언제 봐도 질리지가 않아요. 연기의 요소 하나하나가 정말 생동감이 넘치고 우아하기 때문이죠. 김연아 선수도 어릴 적에 만나서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는 너무 수줍음이 많아서 인터뷰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말도 잘하고 자신의 의견을 일관적으로 펼쳐내기 때문에 인터뷰하기가 매우 편해졌죠. 김연아를 보면서 느끼는 점은 '정말 대인배 김선생이다'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요. 침착하고 신중한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거든요"
실제로 이은하 씨는 김연아가 어려서부터 연기한 프로그램들을 줄줄 외우고 있었다. '죽음의 무도'와 '세헤라자데', 그리고 '박쥐',와 '미스 사이공' 같은 작품들은 몇 번을 돌려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또한, 최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고인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김연아의 갈라 프로그램이었던 'Ben'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이은하 MC는 김연아가 2007년도에 참가했던 아이스쇼인 'Dream on Ice2007'의 캐스터를 맡기도 했다. 예전부터 새롭게 도전하고 싶었던 영역인 '스포츠 중계'에 첫발을 들여놓은 순간이었다.
12년 동안 현장 리포터와 라디오 MC로 활약한 그녀는 '스포츠 캐스터' 분야에도 도전하고 됐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에요. 제 남편의 경우, 오래전부터 스포츠 캐스터를 해왔는데 옆에서 지켜볼 때마다 무척 매력적인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중계하고 싶은 종목은 피겨 스케이팅이에요. 최근 피겨라는 종목에 깊숙이 빠져있고 이번에 중계를 막상 해보니 무척 흥미진진했어요. 피겨 스케이팅은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특징이 있다고 봐요. 또한, 몰입 도도 장난이 아니죠.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를 만끽할 수 있는 점이 피겨의 매력이라고 봅니다"
지난 4월 달에 벌어진 '페스타 온 아이스2009'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경험도 특별했었다.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도 피겨 스케이팅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오래도록 'I Love Sports'라고 외치고 싶다
스포츠를 중계하는 채널이 늘어나고 많은 인력이 몰려들면서 여성들의 비중도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은하 MC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방송을 진행하는 위치에 도달해 있다. 많은 후배의 '롤 모델'로 자리 잡은 그녀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제가 제 이름을 내건 방송을 한다는 이유로 어떤 우월 의식을 지녔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희 라디오 방송국 내에 대단한 선배님들이 매우 많이 계셨기 때문이죠. 방송 일을 오래하셨고 '진짜' 살아 숨 쉬는 전파를 내보내는 분들을 보면서 저절로 고개를 숙일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스스로 대단하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었죠. 이은하 하면 'I Love Sports'란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하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방송을 진짜 잘하시는 분들을 보면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젊은 후배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여러 방송국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읽는다. 또한, 인터뷰의 내용과 방향 등도 참고해 둔다. 이런 점을 일일이 조사하면서 느낀 결과는 "요즘 후배들 정말 잘하는구나"라는 감탄사이다.
방송국이 허락만 한다면 오랫동안 'I Love Sports'라고 외치고 싶은 게 그녀의 솔직한 심정이다. 현재 MBC 라디오에서 전문 스포츠 프로그램은 'I Love Sports'가 유일하다. 이 명맥을 지속적으로 이끌고 가고 싶은 것이 그녀의 목표이다.
장수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꾸준함'이 가장 필요하다. 그래서 '매너리즘'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항상 긴장의 끈을 바짝 쥐고 있다. 청취자들의 방송 참여도를 높이려고 애쓰고 있으며 선수들이 정감 있게 대화를 할 수 있는 '터'를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스포츠 방송을 맡은 이후, 그녀는 지금까지 세 번의 올림픽대회에 다녀왔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시작해, 2004년 아테네, 그리고 2008 베이징까지 세 번 동안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점이 매우 뿌듯했다.
그녀에겐 네 번째 경험인 2012년 런던올림픽에 다녀오는 것이 소망 중 하나이다. 또한, 남편인 정지원 캐스터와 함께 '스포츠 토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인생의 파노라마'와 같은 스포츠 현장을 누빈지도 어언 12년이 흘렀다. 그러나 스포츠에 대한 애정은 아직도 초기처럼 뜨겁다고 털어놓았다.
"스포츠와의 열애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스포츠는 '직업적'으로 해야만 하는 의무적인 계기로 첫 만남이 이루어졌죠. 하지만, 어느덧 스포츠는 운명처럼 다가왔어요. 그리고 지금은 매일 스포츠에 푹 빠져 살고 있습니다. 제가 스포츠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외치고 싶어요. 'I Love Sports'라고 말이죠"
브랜드 테마 소개 - '조영준의 엑츠 워너비(xts wannabe)'는 '여성 중심'의 신개념 스포츠 브랜드 테마입니다. 스포츠 현장에서 직접 뛰는 여성들의 이야기와 여성들이 선호하는 선수 소개, 그리고 뷰티와 다이어트 등의 다양한 코너를 지속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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