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미지 기자] 50년 전 음악에 대해 삼일 밤낮을 새고 치열한 고민을 나누던 대학생들은 70대 백발이 되어서도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70대의 가수도 힘든 세상에서, 이장희는 조원일, 강근식과 함께 흐트러짐 없는 연주를 해낸다.
1970년대 '콧수염 가수'로 유명했던 대한민국 포크 1세대 이장희는 은퇴 후 자신이 천국이라 명명한 경상북도 울릉도에 터를 잡고 일생 가장 행복한 취미였던 음악을 하면서 살고 있다.
1947년 경기도 오산에서 태어난 이장희는 명문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음악에 빠져 학교를 중퇴했다. 쎄시봉 멤버로 20대를 보내며 '겨울 이야기',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슬픔이여 안녕' 등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의 히트곡을 가졌다.
1976년 음악 활동을 중단한 이장희는 1980년대 초반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고 LA 한인 방송국 라디오코리아를 설립해 2003년까지 운영했다.
하와이의 작은 섬 혹은 알래스카에서 여생을 마무리하려던 이장희가 다시 대한민국 그것도 울릉도를 찾아 터를 잡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늘 자연을 좋아해 적잖이 여행을 다녔어요. 남극도 가보고 타히티섬, 잉카 제국도 가보고 알래스카도 가봤죠. 나한테 아름다움은 넓은 바다나 산 속의 호수 같은 것이었습니다. 1996년, 친구가 '울릉도에 가봤냐'고 물어 울릉도에 왔는데 이곳을 열흘간 걸어다니면서 평지가 없는 산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반했어요. 산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바다는 우리나라의 최고라고 봤어요. 정말 아름다운 곳이죠. 원래 알래스카에서 은퇴하려던 마음을 고쳐먹고 울릉도에 터를 잡게 됐습니다."
처음 울릉도에 와서는 농업부터 시작했다. 더덕밭을 심고 농약을 안 쓰고 작물을 키웠다고. 수없이 공부하고 짓던 더덕농사를 3년 만에 포기한 뒤 이장희는 캘리포니아 야생화를 심고 연못에 물고기를 넣어주면서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었다고.
그랬던 이장희에게 '울릉천국 아트센터' 건립을 제안한 것은 경상북도 도지사였다고. 처음에는 마뜩치 않아했던 이장희는 자신이 사놓은 땅 500평을 기증하면서 울릉도의 문화 저변을 확대시켰다.
이장희는 "미루어 생각해보건데, 내가 오랜 미국 생활을 하고 있다가 울릉도에서 산다고 하니 (도지사 입장에서) 따뜻하게 보였던 것 같다"며 "처음 아트센터 건립 제안에서는 마음이 이상했다. 여기서 평화를 얻고 조용히 살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릉군민의 입장은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땅을 기증했다"고 밝혔다.
'울릉천국 아트센터'가 개관하고 첫 공연은 지난 8일 열렸다. '만석'으로 첫 공연을 올린 이장희 울릉도 콘서트는 지난 15일 세 번째 공연까지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저는 대단히 만족했어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흡족해하는 것 같았고, 저도 제 친구들(조원일, 강근식)과 셋이서 같이 연습하고 무대에서 호흡하니까 두말할 나위 없이 좋았죠. 45년 전, 50년 전 어릴 때 음악친구 셋이서 함께 무대를 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실제로 세 번째 공연에서 만난 이장희 울릉도 콘서트는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강산이 다섯 번 변할 동안 함께한 친구들과 백발이 되어서 함께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이장희의 모습이 빛났기 때문. 70대에 다시 찾은 일생의 행복에 젖어 즐거움을 만끽하며 올리는 공연이었다.
"내 나이 칠십하고도 하나에 50년 전 음악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던 친구들과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내 일생 가장 좋아했던 음악을, 이 아름다운 울릉도에서 마지막까지 하고 싶습니다."
am8191@xportsnews.com / 사진=울릉천국
김미지 기자 am8191@xportsnews.com